퀴어축제 '찬반' 보도가 가리고 있는 것들

[언론 다시보기]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퀴어문화축제 관련 취재와 보도를 위해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2011년 제정한 인권보도준칙을 활용해 '언론 취재, 촬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인권보도준칙 제8장의 2항 나목, “성적 소수자를 에이즈 등 특정 질환이나 성매매, 마약 등 사회병리현상과 연결 짓지 않는다”라는 항목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차차(X @ScarletChaCha)는 14일 연구모임 POP와 함께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에 전달한 수정 요청과 위원회의 답변을 공개했으며, 조직위원회 측에서도 해당 가이드라인의 한계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애초 이 항목은 아마도 성소수자와 관련된 온라인 발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소수자를 비난하기 위해 AIDS나 성매매를 활용하는 문제를 언론이 확산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일 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어떤 구조적 맥락과 성소수자의 현실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고찰은 부족했다. 언론이 사회적 공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 한 걸음 더 앞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차별을 재생산하지 않는 것은 물론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탐사하고 문제제기하고 해결책에 대한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14일 서울 종로와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성소수자 관련 언론 보도 최악의 헤드라인 투표를 벌였다. /한국기자협회

이러한 맥락에서, 인권보도준칙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그저 특별한 '고려' 사항으로 성소수자를 언급할 때의 주의사항을 단순 제시한 인권보도준칙이 가진 일정한 한계가 드러난 것이며, 이제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 성소수자에 대한 보도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걸 보여주었다.


사실상 올해도 관련 보도에서 큰 개선 사항을 찾기는 어려웠다. 몇몇 진보 언론들이 의미 있는 보도를 했지만 다수 언론에서 언제나 퀴어문화축제를 보도하는 방식은 “퀴어문화축제가 도심에서 열렸고(즉 교통 혼잡 문제가 예상되고) 이에 대한 반대 집회도 열렸다”는 내용을 단순 갈등 구도로 프레이밍하는 것이었다. 참석자들이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증언한 바와 같이 소위 '반대집회'의 규모가 축소되었다는 것은 전달됐어야 할 정보였다. 하지만 여러 언론이 신고 인원을 기준으로 균등한 세력이 갈등하는 양 보도했다. 무엇보다 이것이 병렬적인 찬반 구도로 전달되어도 되는 문제인지에 대한 고민은 올해도 없었던 듯하다.

기계적인 중립 혹은 기계적 갈등 구도는 우리 언론이 대부분의 보도에서 취하는 태도로 비판을 받아왔다. 형식적 공정으로도 불리는 이러한 관행은 결국 "누구에게 공정한가"라는 질문을 피하면서 언론의 책임을 외면하는 방식에 불과하다는 지적은 한국에서는 물론 서구 언론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문제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에서 "성소수자 존재를 찬반의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는 준칙을 제시한 것은 인권 관련 주제에서 누가 무엇을 중심으로 누구와 갈등하는가를 보도할 때 그 보도가 주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다수 보도가 퀴어문화축제가 열렸고 반대집회가 열렸다는 병렬 구도를 제시했을 때 단순 나열된 찬반이라는 구도 속에서 이렇게 존재를 부인하는 차별적 발화와 행위들이 실제 어떤 효과를 내고 있는지의 문제가 사라진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찬반'이라는 형식적 공정 구도가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전화가 쇄도한다"는 중립적 문장을 통해 혐오표현 규제를 위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서 성적 지향을 빼고 발의한다는 시도를 가능하게 한다. 물론 개인들은 다양한 이유로 어떤 무엇이건 간에 반대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 반대가 사회적 차별을 만들고 강화하는데 기여한다면 도대체 왜 민주사회가 이를 지속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말일까?

늘 언급되는 '사회적 합의'란 전원일치된 합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는 것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인가에 대한 합의를 해가는 가정을 말하는 것이다. 성소수자를 특별한 고려 대상으로 보는 보도 준칙을 넘어, 우리 사회의 소수자를 위한 보도가 어떤 사회적 가치를 갖는지 그리고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간 저널리즘 원칙과 인식론을 만들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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