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한다. “영남에 맛있는 요리가 있어?” 때론 이런 말도 덧붙인다. “거긴 한국에서 제일 먹을 게 없는 도시들이야.” 과연 그럴까? 호남에서 4년, 서울에서 18년, 나머지 시간을 영남에서 살고 있는 필자로선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뭔가 말하고 싶은 열망에 몸이 들썩거린다.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은 그런 이유에서 발원한 졸고다. [편집자 주]
한강 아래에선 가장 큰 수산물 집산지로 지목되는 경상북도 포항 죽도시장엔 문어를 사고팔며 잔뼈가 굵은 50대 중반의 사내 권순찬씨가 산다. 그를 만나서 들은 이야기 한 토막.
“문어가 커봤자 얼마나 크겠습니까?” 심드렁하게 내가 물었다.
“살아있는 걸 본 문어 중 가장 큰 게 42kg 아입니까. 단순히 무게만 들으니 실감이 안 나지예? 그놈이 8개 다리를 쫙 펴고 바다 위에 둥둥 떠 있으면 6인용 텐트를 펼친 것만 합니더. 내가 겁이 없는 사람인데, 아주 가끔 그런 거물(巨物)이 그물에 걸려 당겨질 때면 두려운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아마 심장 약한 분들이 무서워서 비명을 지를낍니다.”
대한민국. 동해에는 살 색깔이 붉은 피문어가 살고, 남해엔 바닷가 돌 틈에 돌문어가 서식한다. 돌문어가 많이 잡히기에 그것만 먹어본 남쪽 바다 사람들은 동해안 피문어의 크기를 쉽게 짐작하지 못한다.
피문어를 달리 부르는 명칭은 ‘대문어’. 말 그대로 무지막지하게 큰 문어라 그렇다. 앞에 언급한 베테랑 문어장수 권씨는 30kg이 넘어가는 거대한 문어를 드물지 않게 보고 살았다. 어지간한 초등학생 몸무게에 육박하는.
한국에선 문어가 싼값에 자주 맛보는 먹을거리가 아니다. 꽃처럼 예쁜 모양으로 정성스레 삶은 문어가 차례상에 올라가는 명절이 다가오면 가격이 금값은 아니지만, 은값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는다.
시간을 맞춰 잘 삶은 문어는 구수한 향기에 쫄깃한 식감이 소고기나 양고기를 훌쩍 뛰어넘는다. 식혀서 얇게 썰어낸 차가운 문어수육은 미식가들의 고급 술안주로도 손색이 없다. 맞다. 우리나라에선 비싸서 그렇지 없어서 못 먹는 게 문어다.
그런데 재밌다. 문어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나라도 없지 않다. 이건 내가 직접 겪은 체험이라 거짓말이라고 타박받을 이유가 없다. 인도와 캄보디아가 그런 나라 중 하나다.
2005년 인도의 바르칼라 해변과 2011년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바닷가. 던져놓은 어부의 그물에 문어가 걸려 올라오면 징그럽다는 듯 재빨리 떼어내 다시 바다로 던져버렸다. 그 광경이 이상스럽고 놀라웠던 내가 물었다.
“왜 버려요? 저 맛있는 걸.”
별 해괴한 사람을 다 보겠다는 눈망울로 인도와 캄보디아 어부가 답했다.
“야, 너는 크라켄 몰라?”
아… 크라켄. 결국은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사람들 사이에 생겨난 어쩔 수 없는 ‘차이’였구나.
비단 문어를 먹는 행위만이 그런 게 아니다. 베트남 여행에서 만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게알을 티스푼으로 맛있게 떠먹는 날 보며 ‘대체 저런 괴이한 걸 왜 먹지’라는 뚱한 표정으로 바라봤으니.
크라켄은 고대 유럽 설화에 등장하는 괴물이다. 끈적이는 8개의 거대한 다리로 범선(帆船)을 휘감아 깊은 바닷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그곳 바다에도 인간의 상상력을 위협하는 커다란 문어가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실제로 세계 곳곳에선 몸의 길이가 10m를 넘나드는 문어나 오징어의 사체를 본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거기에다 유럽에선 오래전부터 문어 같은 두족류를 혐오하고 무서워하는 경향이 강했다.
인도와 캄보디아도 북유럽처럼 바다에 인접한 국가다. 그러니, 누구도 그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캄캄한 심해, 거기 사는 거대한 문어를 터부시했던 게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공포는 상상력에서 잉태된다.
뭐 그건 어째도 좋다. 한국은 북유럽, 인도, 캄보디아와 달리 문어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 그러니, 잘 삶아 큼직한 접시 위에 올린 말랑말랑 쫄깃쫄깃한 문어의 몸통과 머리, 다리를 거부할 이유 또한 없다.
문어는 500년 전 조선시대 때도 고관대작이 즐기던 별미였다. 모친 상실의 콤플렉스를 피와 살점이 튀는 끔찍한 살육으로 되갚음 했던 연산군 이융(李㦕·1476~1506)은 취식 스타일이 독특했는데, 그가 금덩어리처럼 여겼던 게 문어와 사슴 요리였다.
기이하게도 사슴의 혀와 꼬리, 갓 삶아내 당장 꿈틀거릴 듯한 문어를 연산군의 수라상(水剌床) 올렸다는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남아있다. 그렇다. 한국에선 문어의 맛이 왕도 매혹했던 것이다.
[필자 소개] 홍성식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 연재를 이어갈 홍성식은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고교 시절.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라는 교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김지하와 이성부의 시를 읽으며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드나들었다. 그 기질이 지금도 여전해 아직도 스스로를 ‘보편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착각하며 산다. 노동일보와 오마이뉴스를 거쳐 현재는 경북매일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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