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휴직자 인사 발령문에서 해당 직원이 이태원 참사 피해자임을 드러내 인권 감수성 결여라는 내부 비판이 나온다. 모든 직원이 볼 수 있는 업무 공지 게시판에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의한 휴직’이라는 인사 시행문을 게시했다는 이유다. 해당 직원인 A씨는 이 같은 조치가 개인정보 공개 위반, 명백한 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와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조사를 진정했다. 사측은 불가피한 업무 처리였으며 악의적 의도는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이번 사례를 두고 휴직 처리 과정에서 참사 유가족, 피해자에 대한 세심한 고려가 없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5월15일 KBS는 사내망인 코비스 업무 공지 게시판에 인사발령문을 올려 A씨가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방발지를 위한 특별법 제60조 제1항에 의거해 휴직’한다고 공지했다. 앞서 ‘이태원 참사 피해 구제 심의위원회’로부터 이태원 참사 피해자로 인정받은 A씨는 4월29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명시된 ‘근로자의 치유휴직’ 조항에 따라 KBS 인력관리실에 휴직원을 제출했다. 이에 KBS는 특별인사위원회를 구성해 A씨에 대한 휴직을 승인했다. 특별인사위원회는 인사 사유가 기존 KBS 인사규정에 해당되지 않을 때 꾸려지는 조직이다.
A씨는 사측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휴직 사유로 전체 직원에게 공지해 재난 피해자라는 민감한 개인 정보가 본인의 동의 없이 공개돼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됐고, 정신적 고통과 부정적 낙인 효과까지 유발하게 됐다고 호소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도 11일 성명을 내어 “인사규정엔 휴직 사유로 ‘기타 일신상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경우’를 명시하고 있다”며 “회사는 엄연히 인사규정이 규정한 사유로 휴직을 허가할 수 있음에도 굳이 개인의 민감정보가 드러날 수 있는 특별법명을 휴직 근거로 밝힌 것”이라고 지적했다.
KBS 인력관리실은 인사규정상 ‘일신상 부득이한 사정’은 해당 휴직의 요건이 되지 않고, 국가로부터 지원금 신청 등 후속 조치가 필요해 업무상 불가피하게 해당 특별법을 휴직 사유로 공지했다는 입장이다. KBS 인력관리실 관계자는 “발령 인사는 무조건 다 공지를 하게 돼 있다”며 “인사규정에 있는 일신상의 부득이한 사정 휴직은 그 사유에 해당하는 요건이 따로 있다. 지원금(고용유지비용) 신청 등 후속 조치들이 이뤄지고 있는데 휴직, 보수 지급 등의 조건을 충족할 근거를 제시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업무 처리가 불가피했는데 본인이 그렇게 느낀 부분에 대해선 저희가 조금 더 세심하게 챙겼어야 했다는 아쉬움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A씨는 사측이 5월16일 개인에게 따로 보낸 인사 시행문엔 ‘직원 치유휴직 승인’이라고 명시돼 있었다는 점을 들어 전체 공지에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밝힌 건 부적절했다고 반박했다. 또 사측이 휴직 승인 통보를 하며 치유휴직시 대우에 보수를 제외하고 가족돌봄휴직과 동일하게 대우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휴직 기간을 축소시킨 경우라고 비판했다.
A씨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 시행령엔 최대 휴직 기간이 6개월이고, 가족돌봄휴직의 경우 4개월”이라며 “당초 2개월 휴직 신청을 했지만 연장이 가능한데 사실상 연장을 승인해도 4개월에 준한다는 얘기이고, 더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A씨는 인력관리실로부터 휴직신청과 동시에 복직원 사전제출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휴직 승인이 아직 안된 상태에서 인사부에 문의하니 승인이 될 것 같지만, 단 조건으로 오늘(해당일) 내 복직원을 내야 한다는 얘길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력관리실 관계자는 “실무진에선 강요하거나 그런 사실이 없다”며 “복직을 희망할 경우에 언제까지 내야 된다라는 규정이 있는데 그걸 안내드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A씨는 4일 국가인권위와 이태원참사특조위에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를 진정했다. 그는 “이런 회사의 업무 처리를 보며 저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이런 식으로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봤다”며 “참사 피해자들의 문제를 회사가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선례를 남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진정 이유를 밝혔다.
A씨는 휴직 신청 이후 실무 과정에서도 많은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휴직 조건을 이렇게 정한 경과를 알려달라 했지만 답이 없었고 특별인사위원회에선 논의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내용을 요청했으나 일주일째 묵묵부답인 상황”이라며 “제가 쉬는 동안 대체 근로자에게 급여를 주는 지원 혜택도 있는데 그 내용은 회사가 파악도 제대로 못해 오히려 참사지원단에 제가 확인하고 고용센터에도 정정해가며 연결까지 시켜줬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일로 분노도 있지만 좌절감이 다시 몰려온다. 참사 이후 반년 넘게 상담을 계속 받다 이제는 진상규명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만뒀는데 이번 일을 겪으며 다시 상담을 시작했다”며 “이태원 참사 특별법 가장 첫 번째 내용이 피해자 권리 보장이다. 회사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상식선에서도 가 닿지 않는 모습을 보며 고의라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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