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기자들 "이재명 정부 언론소통, 초심 잃지 말길"
[대통령실 기자들 기대·우려 공존]
브리핑 횟수·시스템 등 대폭 개선
이 대통령, 민감한 질문 안 피하고
추가 질문 허물없이 받는 모습도
브리핑 때 출입기자 생중계 발표
기자 개인 압박으로 이어질 수도
새 정부 출범을 두고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에겐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취임 첫날인 4일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인사 발표와 질의응답을 진행했을 때만 해도 ‘소통’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전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그 장소였다. 6개월여 동안 잠겨 있다 다시 열려 오랜만에 취재진으로 꽉 찬 이날 브리핑룸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는 기자, 외신 기자의 민감한 질문을 피하지 않고, 허물없이 추가 질문도 받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소통 의지가 보인다”,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는 기자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 대통령 취임 닷새째인 8일,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날 브리핑 시스템을 개선한다며 카메라 4대를 추가 설치해 질문하는 기자의 모습을 중계하겠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 식 언론 대응 기조”라는 평가와 함께 “기자 개인에 대한 부당한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중이다.
“기자 얼굴도 공개” 새 브리핑 방침에 의구심
그동안 대부분의 백브리핑이 대통령실 실장·수석급이 익명 인용을 요구하며 비공개로 진행돼 왔다는 점에서, 기자들은 질의응답 전 과정을 공개한다는 대통령실의 방향성엔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다만 기자들이 주목하는 건 질문하는 기자의 얼굴을 중계한다는 대통령실의 의도다.
지난 정부서부터 대통령실을 출입하고 있는 신문사 A 기자는 “마치 그동안 기자들이 숨어 있었던 것처럼 묘사되는 상황”이라며 “비공개 질의응답에서도 당연히 기자들은 소속 매체, 이름을 밝히고 질문을 해왔다. 백브리핑은 기자단의 요구가 아니라 관계자들이 실명으로 나가는 부분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통령실의 필요에 의해서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얼굴을 비춘다는 행위는 의미가 다르다고 보는데, 사실상 신상 털기, 인신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소통을 늘리겠다는 차원에서 기자들의 얼굴을 공개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인신공격이 목적이 아니라면 그만큼 가치가 있는 건지 의구심을 가지는 기자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8일 밤 취임 첫 X(옛 트위터) 게시글에서 해당 브리핑 개선 방침 발표를 언급하면서 “우연히 댓글을 통해 접한 제안이 의미 있다 판단해 실행에 옮겼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 후보 시절 마크맨이었다가 대통령실 출입을 하고 있는 방송사 B 기자는 “굳이 과거와 연관 짓고 싶진 않지만 경기도지사 당선 직후 불편한 질문이 나오자 생방송 인터뷰를 일방적으로 중단시켰던 일이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대통령이 인터넷 커뮤니티 글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알고 있다”며 “지지자들에겐 ‘기자들 질문 똑바로 해라’는 의미로 전달될 텐데, 브리핑을 공개한다고 해서 기자들의 불편한 질문이 없진 않을 거다. 다만 표현을 가다듬어야 할 필요는 있겠다, 조심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우려했다.
언론관 우려도… “야당 대표 때와 달라야”
민주당을 출입하며 이 대통령의 대선 과정을 취재했던 기자 대부분이 이제는 대통령실 출입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간 이 대통령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기자들은 대선 기간 단 한 차례도 기성 언론과 인터뷰하지 않고, 야당 대표 시절 언론을 ‘검찰의 애완견’이라고 발언한 일 등을 두고 이 대통령의 평소 언론관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대통령실을 출입하고 있는 종합일간지 C 기자는 5월25일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국회에서 진행한 마지막 기자간담회를 떠올렸다. 그는 “당시 한 기자가 언론 개혁 관련 질문을 했는데 ‘중요하지 않은 질문이니 그냥 넘어가죠’라며 답을 아예 안 했다. 기자들에게 소탈하게 대하며 농담도 치다가도 조금 불편한 질문이 나오면 ‘여기까지만 하겠다’는 모습들을 종종 발견했다”고 전했다. 이어 “당 대표는 어떤 진영을 대표한다지만 지금은 진영 전체를 아우르고 통합해야 하는 자리에 있다”며 “매체도 유튜브만 선호할 게 아니라 기성 매체를 통해서도 본인의 국정 운영을 잘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해 줬으면 한다. 취임사에서 약속한 것처럼 중립적이고, 갈라치기 하지 않는 올바른 정치를 위한 모두의 정부가 되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빠른 피드백 등 전 정부와 비교… 기대감도
다만 기자들이 새 정부에 거는 기대는 분명히 있다. 임기 내내 ‘불통’이라는 평가를 받아오던 윤석열 정부 때보다는 브리핑 횟수가 확 늘어났고, 소통 시스템도 개선됐다고 보고 있다. 현재 대통령실에선 ‘브리핑은 가급적 많이, 시간을 가리지 않겠다’ ‘언제든 설명하겠다’는 기조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통령은 4일 브리핑에서 기자들을 향해 “여러분은 국민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대리인”이라며 “여태 그랬던 것처럼 바른 정보를 잘 전달하고, 비판할 건 비판하고 정론직필하는 본연의 역할을 잘해 달라”고 말했다.
이전 정부부터 대통령실을 출입하고 있는 신문사 D 기자는 “윤석열 정부 때 특히 지역 언론에 대해선 형식적 접촉조차 없었다. 지역 기자들 사이에서 이렇게 단절된 경우는 보기 드물다는 평가가 이어졌다”며 “이전 정부와는 분명 다르다. 윤석열 정부 초기엔 오늘 찍은 사진이 다음 날 오후에나 공유됐던 반면, 지금은 단톡방을 통해 비교적 빠르게 공유되고 서면브리핑도 언제까지는 내겠다는 식으로 피드백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매체 E 기자도 이전 정부 대통령실 분위기에 대해 “비판 언론에 대해 적대적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고 그냥 관심조차 없고, 아예 벽을 치고 상대를 안 했다고 보면 된다”며 “브리핑도 일주일에 두 번이면 많았는데, 명색이 대통령실인데 이렇게 기자들한테 브리핑을 안 할 수가 있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고 말했다.
대통령 기자회견만큼은 정례화가 필요하다는 요구도 나온다. 무엇보다 허니문 기간이 끝나더라도 언론과의 소통 의지가 끝까지 유지되는 게 중요하다고 기자들은 전했다. B 기자는 “역대 대통령마다 제각각이었는데, 이번엔 취임 초기부터 앞으로 얼마에 한번은 하겠다는 식으로 약속하면 좋을 것 같다”며 “대통령은 국민의 평가를 받는 자리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고, 기자들도 그 시점에 맞춰서 잘 준비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C 기자는 “윤 전 대통령도 그랬고, 그 어떤 대통령도 처음 허니문 기간일 때는 기분 좋게 약속을 하다가 나중에 틀어졌다”며 “초심을 끝까지 유지해 소통을 하겠다는 약속을 지켰으면 한다”고 말했다.
D 기자는 “일방적인 형식에 얽매이기보다 기자들과의 접점을 꾸준히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본다”며 “예컨대 대통령실 기자실을 수시로 찾는다든지, 비정기적 간담회를 여는 방식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했다.
박지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