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아무리 보도해도 역부족… 기자, '청년 이장' 되다

[지역 속으로] '청년 이장이 떴다!' 취재기
박현우 전북일보 디지털뉴스부 기자

2월28일 ‘청년 이장이 떴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화정마을에 전북일보 식구들이 찾아와 함께 비료를 나르고 있다. /전북일보 제공

소멸, 사라져 없어진다는 의미다. 여기에 지방이 붙어 ‘지방소멸’이라는 무서운 단어가 만들어졌다. 지방생존이라고 부르자는 이들도 있었지만 현실을 설명하기에는 지방소멸만한 절박한 말도 없다.


중앙부처와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는 수년간 지방소멸을 막아보려 애썼지만 사람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언론도 일자리, 마트, 교통 문제 등 표면적 이유를 열심히 보도했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겉으로 보이는 것 말고 안에서만 알 수 있는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싶었다. 지역 뉴스를 전달하는 지역 언론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청년 이장이 떴다!>였다. 1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 12번에 걸쳐 32편의 기획 기사를 보도했다.


본사(전주)에서 차로 30분, 버스로 1시간20분 거리에 있는 완주군 고산면 화정마을, 35가구 55명이 사는 작은 농촌 마을에서 3개월간 주민과 부대꼈다. 평균 연령 80대 주민들과 20대 기자들의 불편한(?) 듯 즐거운 동거가 시작됐다.


용기는 없었지만 의욕은 넘쳤던 기자들은 옛날 마을회관을 무상으로 임대했다. 거미줄이 덮이고 장판은 울고 창문은 삐걱거렸다. 손수 청소하고 장판을 깔고 벽지를 보수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청년이장 아지트에서 열린 그림 교실에서 어르신이 손수 그린 그림에 색을 칠하고 있다. /전북일보 제공

10년 만에 옛 마을회관을 찾은 주민들은 반가움에 각자 추억을 꺼내 놓았다. “나 진짜 10년 만에 왔네. 그때 생각 나네, 성님도 글치?”, “아따, 잘도 꾸몄다”, “진짜 옛날 생각 나네잉” 등 제각각 반응을 보였다. 우리는 ‘아지트’라고 불렀지만 주민들에게는 그냥 옛 마을회관으로 불렸다.


이미 새 경로당이 있어 옛 마을회관으로 모시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일단 친해지는 게 우선이었다. 경로당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작은 네일아트 숍도 열고 국수도 대접했다. 실력은 부족했지만 마음은 진심이었다. 하루하루 가까워지는 것을 느낄 정도로 빠르게 친해졌다.


점점 옛 마을회관에도 사람이 모였다. 그동안 할머니들에게 접수된 민원 중 하나인 영어 강좌를 열었다. 시작은 “나도 꼬부랑 간판 읽고 싶어서 그려!”였다. 눈이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고 손도 굳었지만 학구열만큼은 고3 교실을 방불케 했다.


영어를 시작으로 미술·필라테스 강좌 등 평생 마음의 한처럼 쌓아둔 ‘공부’를 시켜드렸다. 어느 날은 회사 내 20·30대 기자 10여 명을 모아서 ‘농활(농촌 봉사활동)’도 했다. 단순 ‘프로그램’보다는 직접 노인 보호 체험 기구를 착용하고 몸소 불편을 체험해 보는 등 실감 나는 기획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매주 마을 이야기를 신문 한 면에 담았다. 전시회를 같이 열고, 마을 주민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전화도 오고, 완주군수도 마을에 놀러 오고, 방송 프로그램 섭외도 왔다. 짧지만 바쁜 3개월을 보냈다.


물론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너무 큰 세월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소통의 오류가 있었던 적도 많았다. 그래도 우리의 기억은 ‘행복’으로 가득 찼다. 우리의 기획이 지방소멸을 막는 데까지 못 미쳤을지 몰라도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분명하다.

2월11일 화정경로당에서 화정마을 어르신들이 차정환·백진선 선생님의 필라테스 수업을 듣고 있다. /전북일보 제공

3개월 전만 해도 마을의 일상은 늘 똑같았다. 전기장판 위에 멍하니 앉아 있거나 오후 2시에 모여 화투를 치는 게 일상이었다. “늙으면 죽은 목숨”이라고 말했던 주민은 “희망을 찾았네”라며 즐거워하셨다.


우리는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생존을 넘어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려는 사람들. 농촌에는 그 흔한 구멍가게를 비롯해 아무것도 없는 게 사실이지만 그 안에는 더 큰 게 있었다.

◇“에! 선상님들! 승진혔어?”
우리의 이름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이장님부터 아가씨, 기자 양반, 선상님, 아가까지. 프로젝트가 끝난 후 마을에 놀러 간 우리에게 주민들은 오랜만이라는 인사보다도 성공과 승진 여부를 먼저 물었다. 당시엔 ‘이달의 기자상’ 결과가 나오지 않았던 터라 “아직요”라고 답했다.


며칠 후 발표가 났다. 제416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을 받았다. 회사 창간일과 대통령 선거 등으로 아직 마을을 다시 찾지 못했지만 이젠 말할 수 있다. “저희 상 받았어요!”라고. 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에도 기쁨보다 먼저 떠오른 건 주민들의 얼굴이었다.

2월5일 화정마을 아지트에서 열린 청년 이장과의 영어 수업에 참여한 한 할머니가 영어 노트에 알파벳을 쓰고 있다. /전북일보 제공

이렇게 모르는 사이였던 우리가 서로의 행복과 행운을 빌어 주는 사이가 됐다. 그리고 목표했던 ‘농촌 활력’도 달성했다.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다.


기획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멀리 있는 건 잘 보면서 너무 가까워서 바로 옆 이웃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던 것은 아닐까. ‘나’ 스스로를 반성하면서도 깨닫고 다짐했다. 지역 언론이 1번으로 해야 하는 일은 이웃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청년 이장은 이만 물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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