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제보를 접했습니다. 민원에 시달린 젊은 공무원의 죽음이었습니다. 이어 취재한 내용은 더 무참했습니다. 김포시청에서 포트홀 보수공사 업무를 담당하던 고인의 신상이 인터넷 카페에 노출된 것도 모자라,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비난과 모욕의 타깃이 됐던 것입니다. 첫 보도부터 ‘좌표찍기’란 용어를 붙였습니다. 익명 뒤에 숨은 다수의 폭격에 시달리다 공무원이 숨진 것은 그동안 알고 있던 악성민원의 무게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보도 방향은 ‘악성민원 문제’를 큰 줄기로 잡고, 나아지지 않는 공무원들의 근무 여건을 짚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취재를 거듭할수록 공직사회가 악성민원에 곪을 대로 곪아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자책이 들었습니다. 기자로 일하며 맞닿는 직업이 공무원임에도, 갖가지 민원을 어디 털어놓지도 못한 채 제 스스로 삭이는 목소리를 하나둘 접한 뒤에야 문제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최초 보도 이후 일주일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악성민원 대응 범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꾸렸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발 빠르게, 합동 대응책을 찾겠다고 나선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광역·기초 지자체들은 앞다퉈 악성민원 실태조사와 함께 자구책 마련에 돌입했습니다. 좌표찍기에 따른 피해를 막기 위해 공무원의 신상정보를 비공개 조치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포항과 인천, 화성, 용인 등 공직 현장에서 만난 공무원들은 자신과 동료들이 겪은 악성민원 경험을 어렵사리 꺼내주었습니다. 이들의 목소리가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한 실질적 보호책 마련에 촉매가 되길 바랍니다. 선배 김우성, 동기 변민철이 함께여서 지난 한 달을 이 사안에 쏟을 수 있었습니다. 믿음의 지원군인 수원과 인천의 조영상·임승재 사회부장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경인일보는 정부 대책이 공무원 개인이 아닌, 기관의 역할을 강화하는 법·제도 변화로 이어지도록 계속 취재하고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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