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칙 제정, 툴 개발, 이용비 지원… 언론사들 AI 실험 박차

챗GPT 마중물로 다시 '실험의 시대'
"뉴스룸 업무방식 개편 고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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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인공지능(AI)의 가능성과 맞물려 국내 언론계에서 이용준칙 제정, 업무지원 툴 개발부터 이용비 지원까지 다각도에서 디지털 관련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10여년을 지속하며 다소 정체기에 접어들던 디지털 혁신 움직임이 챗GPT 등의 잠재 영향을 마중물로 다시 ‘실험의 시대’를 맞은 모양새다.

한국일보 AI 서비스 '하이(H.AI)' 내 'AI 이미지 만들기'에서 명령어를 입력해 이미지를 생성한 모습. /한국일보 제공

한국일보는 18일 챗GPT를 기반으로 자체 개발한 생성형 AI 서비스 ‘하이(H.AI)’를 내부에 공개하고 다음날 알림을 냈다. 한국일보 통합 콘텐츠 제작 시스템(CMS) 허브(HERB)에 추가된 ‘하이 뉴스룸 도우미’를 통해 구성원들이 AI 도구를 업무에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제작에서 기사 요약, 이미지 생성, 제목 추천, 키워드 자동추출 등을 지원한다. 편집 및 유통에선 이용자에게 정확히 가닿는 검색 최적화(SEO) 제목 및 연관기사 추천 기능을 쓸 수 있고, 페이스북·엑스·인스타그램·스레드 등 각 플랫폼에 최적화한 제목 및 요약도 제안 받을 수 있다. 하반기엔 70년 역사의 자사 뉴스 데이터를 학습시킨 자체 언어모델 개발에도 도전한다.


지난 4일 국내 언론 중 처음으로 ‘생성형 AI 활용 준칙’을 제정한 연장선에서 한국일보는 ‘AI 도구개발’과 신기술 ‘활용기준 마련’을 병행한 노선을 걸었다. 김민성 한국일보 미디어전략부문장은 “기술 없는 가이드라인은 공허하고, 가이드 없는 기술은 위험하기 때문에 내부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며 “이 두 바퀴의 자전거를 굴리는 이유는 저널리즘이란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선데 그러려면 일단 기자들의 연습이 필요하다. 뭐가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직접 배우고 느끼려면 많이 써봐야 하기 때문에 CMS에 넣었다. 다시 실험과 학습의 시간이 열린 것”이라 설명했다.

동아일보의 기사 검색지원 서비스 '애스크동아(AskDonga)' 작동 예시 화면. /동아미디어그룹 사보

동아일보는 1월 말부터 편집국 기자들이 자사 기사를 더 ‘똑똑하게’ 검색할 수 있는 ‘애스크동아(AskDonga)’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DX본부(디지털 담당부서)와 동아닷컴이 개발한 AI 검색 서비스는 챗봇형 프롬프트에 대화하듯 질문을 입력하면 동아미디어그룹 계열사 기사 중 가장 연관도 높은 기사 3개를 내용 요약과 함께 추천해준다. 예컨대 “간 수치가 높다는데 어떻게 관리해야 해?”라고 물으면 자사 전문기자의 관련 기사를 인용하며 답하는 식이다. 지난해 3월 자사 사이트 방문 독자에게 맞춤형으로 뉴스를 추천하는 알고리즘을 자체 개발해 적용한 매체는 최근 동아닷컴 개편을 통해 사이트를 ‘모두의 뉴스’ ‘나만의 뉴스’로 이원화하고 ‘나만의 뉴스’를 클릭할 경우 이용자별 취향, 구독상태에 따라 다른 사이트가 보이게 했는데, 여기 AI가 맞춤 추천한 뉴스(‘오늘의 추천 뉴스’)를 배치하기도 했다.


업무지원 툴 개발과 별개로 일부에선 구성원들의 기술 적응도, 조직 근간의 경험치를 높이기 위한 비용지원 사례도 나온다. 매일경제는 1월부터 기자들이 챗GPT, 미드저니, 딥엘 등 생성형 AI 유료 서비스 구독 시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이용신청 후 영수증을 제출하면 100% 비용을 보전해주며 매월 50여개 구독계정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한국경제도 3월 6명이 비용을 돌려받는 등 이용 수가 느는 상황이다. 현재 편집국 기자들이 참여한 생성형 AI TF에 참여한 이상은 한국경제 사회부 차장은 “(업무 담당자가 아니어도) 기자들이 써보고 영수증만 제출하면 회사가 비용을 전액 주고 있다. 기자들이 익혀서 조직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어학비 지원 같은 교육지원 성격, 나아가 업무 효율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목적을 겸한다”고 했다.

'조선 AI 기사 작성 어시스턴트'를 사용해 출고된 조선일보 기사 리스트를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모습. /조선닷컴

지난해 12월 조선일보가 발제문, 보도자료 등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기사를 만들어 주는 AI 기사 작성 어시스턴트를 도입, 실제 기사로 송고하면서 AI의 뉴스룸 등장이 본격 가시화된 분위기다. 11일자 조선노보에 따르면 시기는 미정이지만 조선일보는 교열 기능이 있는 AI 기술을 외부 업체와 개발, CMS 적용도 검토 중이다. 다만 초기 ‘반짝’ 이용 후 내부에서 기사작성 툴 사용이 급감하며 또 다른 고민이 부상한 상태다. 21일 기자협회보 조사결과 지난해 12월(21일~31일 기간) 이 툴을 활용해 출고된 기사 수는 20개였고 올해 1월 151개까지 늘었지만, 2월 79개, 3월 28개, 4월(1일~21일) 4개 등으로 주는 변화가 있었다.


조선일보 한 기자는 “편집국에 이용 후 피드백을 달라는 요청이 내려와 초기엔 그럭저럭 써봤지만 쓸모를 못 느꼈다. 저연차들은 기사가 안 는다는 이유로 못 쓰게 했고, 이상 연차들로선 ‘여기 입력을 하느니 내가 쓰는 게 나은데 굳이’란 생각에서 안 쓴다. 향후 AI의 가능성을 볼 때 신문물을 써본 경험은 남았지만 당장의 쓸모엔 의문이 있다”고 했다.

뉴스타파가 개발한 '김건희와 주가조작' 챗봇 서비스. /뉴스타파

콘텐츠단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한 시도는 ‘챗봇’ 포맷에 집중돼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통해 지난해 동아일보(경제경영 전문 AI 비서 ‘애스크비즈’), SBS(정치인 이슈 요약 AI 서비스 ‘폴리스코어’)가 현재 그룹 내 플랫폼에서 챗봇을 운영 중이다. 최근 뉴스타파는 자사의 누적된 기사를 바탕으로 영부인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대해서만 다루는 챗봇 서비스 ‘김건희와 주가조작’을 오픈하기도 했다.


이 서비스를 기획·개발한 변지민 뉴스타파 데이터개발팀 기자는 “뉴스 수용자들이 원하는 걸 찾아서 보고 있지만 특정 정보를 찾으려면 상당 노력이 필요한데 그런 분들을 위해 아주 좁은 영역에서 구체화된 대답을 양방형 형태로 전하고자 했다. 기존 시사 관심층보다 젊은 층을 겨냥한 실험도 염두한 것”이라며 “장기적으론 뉴스타파 모든 콘텐츠를 챗봇으로 전할 수 있으리라 본다”고 했다. 이어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AI를 사용하고 있다. 매년 3~4월 국회의원 정치자금 수입지출 내역을 정보공개 청구해 보도하는데 컴퓨터가 읽지 못해 사람이 일일이 입력했던 PDF 파일을 AI가 파싱해 데이터화 시키는 업무구조를 완성했고, 시간·비용을 10분의 1로 줄인 게 대표적”이라고 부연했다.


현 과도기의 성패는 결국 생성형 AI가 뉴스룸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기존 업무방식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답을 찾는지 여부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AP통신은 미국과 유럽의 언론사 대표·기자 등 29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결과(Generative AI in journalism)를 통해 이미 뉴스룸 직원 약 70%가 콘텐츠 제작에 생성형 AI를 사용하고 있고 AI가 뉴스룸 역할과 워크플로우를 이미 재편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는데 이는 AP통신조차도 현재 구체적인 활용이나 전략수립을 위한 과정임을 드러내서다.


한 언론학자는 “생성형 AI를 써서 기존 3분의 1의 시간으로 같은 성과를 내는 연구자별 격차가 학계에서도 나타난다”며 “언론계야말로 하던 대로 하는 게 심한데 기자 개인이 자신의 업무에 어떻게 써먹을지 맞는 방식을 찾고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한 때다. 조직은 기자들과 협력을 통해 프롬프트 개발 등 경험과 접점을 넓히고 당장 성과가 안 보이더라도 밑단의 작업에 계속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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