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컴백한 김백… "악당 살아 돌아오는 영화 같다"

주총서 김백 이사 등 선임, 오후 이사회선 사장 선임 예정
라디오 진행자 교체부터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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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십시오. 그리고 돌려놓으십시오.”

김백 사내이사 선임을 막아달라는 YTN 사원 주주들의 연이은 호소에도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YTN은 29일 오전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최대주주 유진이엔티가 제안한 김백, 김원배 사내이사 등 이사 6명을 새로 선임했다. 9명 중 6명이 유진측 인사로 꾸려진 이사회는 이날 오후 서울 한 호텔에서 이사회를 열고 김백 이사를 새 사장에 선임할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9월까지 임기가 남은 우장균 사장과 김용섭 상무는 이날 주총을 끝으로 사의를 표명했으며, 우 사장은 주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29일 YTN 주총장 앞에선 현 경영진에 반대하는 소수노조 YTN방송노조와 새 경영진에 반대하는 언론노조 YTN지부의 피켓시위가 동시에 열렸다. /김고은 기자

이날 주주총회가 열린 상암동 YTN뉴스퀘어 1층 YTN홀 앞에선 시작 전부터 김백 사내이사 및 사장 선임에 반대하는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와 우장균 사장 등 현 경영진 사퇴를 촉구하는 YTN방송노조가 각각 항의 집회를 열면서 혼란이 빚어졌다. 상반된 구호가 뒤엉키면서 발언 내용을 제대로 듣기 힘들 정도였다. 두 노조와 조합원들 사이에 신경전도 있었으나, 물리적 충돌까진 벌어지지 않았다.

“김백 이사 선임하면 YTN 가치 하락할 것” 호소했지만…

YTN지부 조합원들은 사원 주주(우리사주조합) 자격으로 주총에도 참석해 김백 사내이사 선임에 반대하는 손팻말 시위를 이어갔다. 유진이엔티가 제안한 김백 사내이사 선임 건 등을 의안으로 상정하자 발언권을 얻어 줄줄이 반대 목소리도 냈다.

고한석 YTN지부장은 “YTN 최악의 암흑기에 김백이 있었다”면서 “보도국장에서 상무까지 자리를 차지해가며 권력 비판 보도를 ‘입틀막’하고 YTN 신뢰도를 떨어뜨린 장본인이다. YTN을 나가서도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국민의 걱정을 비과학적이라 폄훼하고, 디올백 보도는 스토킹이라며 정권 비호에 앞장섰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도의 생명은 신뢰도다. 정치 권력을 비호하던 인물이 친권력적 인사로 보직을 채우고 편향적 보도를 일삼으면 YTN 신뢰도와 기업가치는 추락한다”며 “사내이사 선임은 주주로서 절대 피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고한석 YTN지부장이 29일 YTN 정기주주총회에서 김백 이사 등 선임 안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히고 있다. 사진 맨 오른쪽 아래가 김진구 유진이엔티 대표. /김고은 기자

송병준 YTN지부 부지부장은 “(유진이) YTN을 인수할 때 혼란스럽긴 하지만 작은 기대감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수 직후 들리는 각종 소문에 기대감이 절망감으로 바뀌었고, 그런 소문들이 실제 일어나는 걸 보며 과거 나쁜 악당이 다시 살아 돌아오는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디어전문가를 사장에 임명하랬더니 고작 그런 인물을 데려오나? 미디어전문가가 그렇게 없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눈물 보인 구성원들…“새 부대에 왜 흙탕물을 담나”

눈물을 보인 이들도 있었다. 홍성노 YTN 기자는 “보고 싶지 않았던 ‘민영방송 YTN’이란 글자를 보게 됐다”며 한동안 울먹였다. 그는 “이젠 부정할 수도 없고, 새 부대에 새 술을 담길 바랐다”면서 그러나 담긴 건 김백이라는 ‘흙탕물’이라고 했다. 이어 “새 부대에 담긴 흙탕물을 저희 손으로 다 끄집어낼 수 있다. 하지만 깨끗해지진 않을 거다. 다 퍼내고 새 술을 담으려면 또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다”고 눈물을 보이며 “간곡히 부탁드리건대, 흙탕물로 더럽혀지기 전에 여기 계신 주주들이 YTN을 지켜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YTN이란 브랜드와 기업가치의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나연수 우리사주조합장은 “YTN의 펀더멘탈은 맨파워에 있다”면서 “지금 YTN을 가장 사랑하는 직원들이 눈물을 보이고, 직원의 75%인 YTN지부 조합원들이 일할 의욕을 잃고 다시 긴 싸움을 준비하고 있는데, 어떻게 펀더멘탈과 올해 흑자전환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주영 기자도 “이후 YTN 뉴스가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YTN 주식 가치는 떨어질 것”이라면서 “김백이 돌아오는 게 내 돈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지, 실제 우리 돈을 똥으로 만들어버릴지는 여러분 결정에 달렸다”며 주주들을 향해 김백 이사 선임에 반대표를 던져줄 것을 호소했다.

YTN 구성원들이 우리사주조합 조합원 자격으로 주총장에 차참석해 김백 이사 선임 거부 의사를 전하고 있다. /김고은 기자

그러나 이변 없이 과반의 찬성으로 김백 이사 등의 선임은 승인됐다. 우리사주조합 지분은 0.2%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김백 이사는 2016년 주총을 끝으로 YTN 상무에서 퇴임하며 YTN을 떠난 지 꼭 8년 만에 돌아오게 됐다. 이날 주총에선 YTN이 지난해 8년 만에 93억원의 영업적자를 내며 적자 전환한 상황에서 왜 사내이사를 추가로 선임하고 보수 한도도 상향 조정했는지 일반 주주 등의 문제제기와 이유를 설명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으나, 주주제안을 한 유진이엔티 측은 답하지 않았다.

이제 유진 쪽이 다수를 점한 YTN 이사회는 이날 오후 김백 이사와 김원배 이사를 각각 사장, 전무에 선임하고 이후 조직개편 등 보직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YTN라디오는 전날(28일) 정기 주총과 이사회를 열어 현 경영진에 반대해 온 김진호 사내이사를 선임하고, 같은 날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의 진행자 박지훈 변호사에 하차를 통보한 바 있다. 후임 진행자로는 우파 유튜버로 유명한 배승희 변호사가 낙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 YTN 민영화 아닌, YTN을 파괴하라는 권력의 명령 수행”

90여 언론·노동·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은 이날 주총 직후 YTN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백씨는 사장으로 취임해 권력을 비판하는 YTN을 ‘입틀막’하고 정권의 나팔수로 개조하려 할 것”이라고 성토했다.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이 주총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고은 기자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이건 절대 YTN 민영화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민영화라면 기업이 잘 경영되도록 좋은 경영자를 선임하는 게 상식”인데, 과연 김백 이사가 그런 인물이냐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건 민영화가 아닌 정경유착에 의한 언론 파괴이며, 시민의 언론 보도채널을 강탈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유진그룹이 김백을 사장으로 임명한다는 건 그들의 인수 목적이 다른 데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그들의 진짜 목적은 YTN을 파괴하라는 권력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고, 공적 언론인 YTN을 철저히 유진기업의 사적 도구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주총 결과보다 참혹했던 것은 언론계에 수십년씩 몸담았던 선배라는 작자들이 권력과 자본에 영혼을 팔고 주총장 앞에서 잔치판을 벌이고 있었다는 점”이라고 탄식했다. 그는 “오늘 이 시간 이후로 YTN 노동자들은 더 큰 고난을 겪게 될지도 모르겠다. 잔치판을 벌이던 상식 이하의 인사들이 YTN 인사와 경영, 보도를 통제하고 여러분의 양심을 짓밟는 시간이 다가올 것”이라며 “그러나 모든 일탈은 순리에 의해 바로잡힐 것”이라고 했다.

YTN지부는 예정대로 김백 이사가 사장으로 선임되고 3월1일부터 YTN 출근을 시작하면 출근저지 등으로 반대 투쟁에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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