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태일재단 '노동시장 이중구조' 협업, 노동계 불편한 시선 공존

창간 104년 조선, 비정규직 현실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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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창간 104주년 공동기획으로 전태일재단과 협업해 노동 문제를 다룬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사진은 첫 기획이 나간 지난 5일자 조선일보 1면에 실린 ‘12대88, 쪼개진 노동시장을 바꿔야 한다’ 기사.

조선일보가 창간 104주년 공동기획으로 전태일재단과 협업을 통해 노동 문제를 다루고 있다. 대표적인 보수매체와 대표적인 진보단체의 공조 배경, 기획 의미 등을 두고 노동계, 언론계에서 분분한 말이 나온다.


조선일보는 창간기념일인 지난 5일부터 노동시장의 정규직, 비정규직 이중구조 문제를 조명한 <12대88의 사회를 넘자> 기획을 진행 중이다. 특별취재팀(6인)은 그간 ‘정규직 용접공 8700만원, 하청 4500만원…위기 때마다 하청만 깎여’(5일자 지면 4면), ‘구두거리엔 아직 70세 전태일이 있다’(7일자 1면), ‘노동법 밖의 노동자, 프리랜서 400만명’(9일자 1면) 등 보도를 내놨다. 12일 현재 5회까지 진행됐지만 영세사업자나 비정규직 현실을 조명하는 등 매체의 과거 노동보도와 견줘 말들이 나왔다. 특히 조선일보-전태일재단의 공조가 화제가 됐다.

편집국장 “협업, 공명 키울 수 있어… 독자 설득 고민, 외연 확대 의미로”

앞서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에 대한 김윤덕 선임기자의 인터뷰(‘‘전태일 정신’ 지키려 민노총이 던진 돌 기꺼이 맞았다’-1월29일자)가 편집국장의 기획주문 계기가 됐다. 선우정 조선일보 편집국장은 “인터뷰 내용이 좋아 제안을 했다. 노동구조 이원화는 중요 사안이지만 조선일보에 대한 노동계 인식이 좋지 않아 현장에서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데 도움을 받자 싶었다”며 “각자 보수와 진보 상징성이 있는 만큼 공동기획이 공명을 키울 수 있다고 봤다”고 했다. 이어 “노동문제에서 조선일보 외연을 넓힌다는 측면도 있는데 현재 10회로 계획했다”고 덧붙였다.


40년간 노동운동에 헌신한 한 사무총장은 지난해 3월 노동부 상생임금위원회 참여로 파장을 일으킨 인물이다. 당시 노동계에선 노동개혁을 명분 삼아 ‘노조 부패 척결’을 선언하고, 정규직·비정규직 등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바꾸겠다며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 임금위에 그가 참여한 것을 두고 반발, 사퇴요구가 나왔다. 그는 ‘하위 50% 노동자의 사회적 임금 의제화를 위한 결심’이라며 맞섰고, 한 달 후엔 “진보라는 외투를 벗겠다”고 밝혔다.

한 사무총장은 “인터뷰 게재 당일 요청이 왔고, 이 문제를 세게 의제화 할 수 있다는 판단에 이사장 등과 논의 끝에 응했다. 역대 정부 노력에도 지난 30년 간 이중구조 문제는 심화됐다. 노조나 진보만으론 해결이 어렵고 보수, 노사정, 나아가 전 사회가 나설 사안이고, 진보·보수지를 가려선 안 된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어 “왜 조선일보냐는 마음도 이해하지만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봤으면 좋겠다. 달은 이중구조 아랫단에서 꿋꿋하게 노동을 하고, GDP에 기여하고, 삶을 일구는 불안정노동자들의 삶”이라며 “미싱사, 시다 처우 개선을 위해 진영, 정부, 신문을 가리지 않았던 전태일이라면 찬성하지 않았을까”라고 부연했다.


구체적인 협업 과정에서 전태일재단은 인물섭외 등을 지원했고, 기획내용도 같이 논의했다. ‘원청·하청 비교는 하되 민주노총 등 조직된 노동, 정규직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입장도 전했다. 선우 국장은 “노동운동도 법테두리 안에서 하란 게 그동안 주장의 골자였는데 전태일재단과 하는 시리즈 안에선 가급적 이 ‘조선일보스러움’을 억제하고 한도를 지키는 부분에서 실무팀장이 고생하고 있다”며 “댓글 논조를 지배하는 완고한 독자 반응도 걱정됐는데 현재로선 50대50으로 극복되는 듯 하지만 마무리까지 계속 설득하는 게 지고 갈 고민”이라고 했다.

전태일재단 “노동 불안정 의제화… 진보·보수 넘어 사회가 나설 사안”

보도 이후 기획에 대한 평가, 협업 정당성 등을 두고 분분한 반응이 나왔다. 특히 노동계에선 비당파적으로 포장된 협업 결과물이 결국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을 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개인 페이스북 계정에서 “조선일보의 기획이라기보다는 정부가 ‘상생임금협의회’의 결론에 사회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하는 사전 작업”이라며 결국 ‘상생협의체’와 ‘직무급제로의 임금체계 개편’을 정부 등이 제안할 것이라 평가했다. 2022년 이후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강조, 원인을 ‘노-노 간 착취’로 봐왔는데 결국 착취자로 규정한 ‘대공장 정규직’의 기득권 해체를 위한 군불때기란 것이다.

조선일보가 창간 104주년 공동기획으로 전태일재단과 협업해 노동 문제를 다룬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사진은 첫 기획이 나간 지난 5일자 조선일보 5면에 실린 전태일재단의 제안.


노동자역사 한내는 지난 6일 “전태일재단은 ‘조선일보 사태’를 계기로 역사적 선을 넘었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이들은 전태일이란 이름의 역사성, 사유화 불가를 거론, “조선일보는 오랜 시간 동안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성을 왜곡하고 노동자 간의 갈등을 부추겨 온 대표적인 언론사다. (중략) 하물며 그런 언론사의 창간을 함께 기념하는 것도 모자라, 공동사업을 기획하는 일은 두고만 볼 수는 없는 일”이라며 협업 중단과 사과, 관계자 책임 등을 요구했다. 반면 지역청년공 출신의 천현우 작가는 기획이 “큰 줄기에서 틀린 말은 보이지 않았다. 양극화를 해결하려면 원청 업체뿐만 아니라 원청 노동자들의 양보 또한 필요하다”며 “전태일재단이 어떻게 조선일보랑 콜라보하느냐 이런 접근은 이치에도 맞지 않고, 노동자들 삶을 나아지게 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노동계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 포석”

기획은 ‘노동의 불안정화’란 오랜 문제를 정규직 노조, 양대 노총 등이 해결하지 못해 가능했던 만큼 노동계와 함께 진보언론에 과제를 남긴다. 보수언론이나 경제지는 친기업, 진보언론은 친노조 관점에서 노동보도를 해온 언론 전반 행보를 돌아볼 지점도 있다. 노조와 자본을 각각 대변하는 언론이 서로를 정당화하며 공존하지만 사회적 합의나 제도개선은 이루지 못해온 현실에서 이번 협업이 전향적 사례란 점은 분명하다. 앞서 국내 노동보도가 매체에 따라 사용자나 일방의 관점만 반영하는 경향을 드러낸 연구결과를 지난 1월 토론회에서 공개한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최소한의 원칙으로 기계적 중립을 제언, “노동 이슈에 ‘악마’가 있다면 그 악마도 기사를 통해 말할 수 있게 하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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