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 다시 모인 촛불… "세월호 10주기 다큐 방영하라"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준비위, 4·16연대 등 주최 '세월호 10주기 다큐 방영 촉구 시민촛불'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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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준비위원회와 4·16연대, 4·16재단 주최 '세월호 10주기 다큐 방영 촉구 시민촛불' 집회가 열렸다.

21일 저녁 7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 인도는 120여명의 인파로 메워졌다.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멘터리를 6월 이후로 방영 연기 결정한 KBS 사측을 규탄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준비위원회와 4·16연대, 4·16재단이 주최한 이날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박민 KBS 사장에게 당초 예정된 방영 날짜인 4월18일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를 방송하라고 촉구했다.

설상가상 촛불집회 시작 몇 시간 전, 이제원 제작1본부장의 사실상 제작 중단 지시로 ‘세월호 10주기 방송-바람이 되어 살아낼게’(가제)는 결국 방영마저 취소됐다. 해당 다큐멘터리 연출을 맡은 이인건 PD는 이날 집회에 참석해 “오늘 오후 이 방송은 더 이상 제작이 불가능하고 방송도 낼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이 자리에 계신 많은 분들께 정말 죄송한 마음”이라며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 PD는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는 단원고 생존자 A씨의 지난 10년간의 시간과 현재에 관한 이야기다. A씨를 중심에 놓고 다른 시공간에 4명의 사람들이 출연하며 자신들의 삶과 지난 10년을 입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며 프로그램 내용을 소개했다.

그는 “총선 이후 방영되는 방송이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제작본부장의 발언을 정말 많이 곱씹어 봤다. 그리고 이 발언의 동의 여부를 수많은 PD들에게 물었지만,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며 “이게 지금 KBS 시사교양국이 처한 참혹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21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준비위원회와 4·16연대, 4·16재단 주최 '세월호 10주기 다큐 방영 촉구 시민촛불' 집회가 열렸다.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이인건 KBS PD가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어 “(제작본부장의 방영 연기 지시에도) 제가 4월18일에 이 방송을 내려고 노력한 이유는 간단하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KBS가 또다시 상처를 줄 수는 없으며, 이로 인해 우리가 다음 10년을 살아내지 못하고 다시 과거의 10년에 갇히게 되는 게 너무나 싫었다”며 “올해 하지 못한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는 11주기, 12주기 아니면 그 언제라도 4월에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21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성명에 따르면 이날 이제원 본부장은 시사교양국장과 세월호 10주기 방송 관련 회의를 했다. 이제원 본부장은 “사측에서 4월 방영은 불가능하다고 하니 출연자들이 참여 거부 의사를 밝혔고, 그러면 4월 방송은 제작 중단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해당 입장을 전달 받은 연출 PD가 담당 부장에게 “4월 방송 제작 자체를 그만하라는 게 회사의 지시인지” 재차 묻자, 부장은 “그렇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진다.

앞서 지난 15일 이제원 본부장은 4월18일 방영 예정이던 세월호 10주기 방송을 제작진 반대에도 6월 이후로 방송 연기하고, 프로그램 내용도 다른 재난들과 엮으라고 최종 통보해 KBS 안팎의 큰 반발을 샀다. 당초 지난해 12월 제작본부 차원의 결정으로 ‘다큐인사이트’ 제작진은 해당 프로그램 제작에 착수했고 촬영은 40% 정도 이뤄진 상황이었다.

KBS본부는 성명에서 “4월 방영을 끝끝내 반대한 것도 모자라, 출연진이 참여를 거부해서 제작을 못하겠다는 식으로 제작 무산의 책임을 출연진에게 전가하는 이제원 제작본부장의 무책임한 태도에 분노를 금치 못한다”며 “이런 무책임하고 편향적 인사를 KBS 프로그램의 제작을 총괄하는 본부장에 앉힌 것도 모자라, KBS를 망치고 있는 제작본부장의 부적절 결정을 묵인 방조하며 바로 잡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낙하산 박민 사장도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밝혔다.

21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준비위원회와 4·16연대, 4·16재단 주최 '세월호 10주기 다큐 방영 촉구 시민촛불' 집회가 열렸다. /언론노조 KBS본부 제공

이날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도 사측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현식 민주언론시민연합 회원은 “흔들리는 KBS를 바라보면 비통한 심정이 밀려온다”고 말했다. 이어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를 능욕하고 시청자를 우롱하며 분노하게 만든 박민 사장과 이제원 본부장에게 묻는다”며 “왜 부역자로 사나, 힘겹게 성취한 공영방송 존립을 파괴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며 시청자는 왜 안중에도 없나”고 반문했다.

박미정 민언련 시민회원도 촛불집회에서 “세월호 다큐 방송이 4월10일 총선에 영향을 준다면 지금 KBS에서 이뤄지는 모든 시사방송은 지금부터 다 멈춰야 되지 않겠나”며 “KBS 사장과 경영진은 국민들에게 방송을 돌려주고 물러나야 맞다. 제발 더 이상 세월호와 재난 문제를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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