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산업' 된 언론, 소통 실패가 위기 더 키웠다

'뉴스룸 내부 커뮤니케이션' 분석대상 삼은 최초 연구서 나와
박영흠 언론재단 연구위원 등 집필… 신문기자 40명 사례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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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협회보 자료 이미지.

언론(인)은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보편적 수단인 말과 글을 매개로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집단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 기자상(像)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많은 기자가 자신이 쓴 기사를 통해 세상을 바꾸거나 선한 영향을 미치는 데 관심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언론이 정작 언론 내부의 문제, 뉴스룸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고 바꾸는 데는 관심이 없다. 언론계만이 아니다. 학계에서도 저널리즘과 관련한 수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뉴스를 생산하는 기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는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 ‘내부 문제’는 사소하고 “한가한 담론”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바로 그 소통의 문제를 외면한 결과가 어땠나. 21세기도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폭언과 욕설 등 “후진적 조직 문화”가 몇몇 언론사에 남아 있고, 반대로 수평적인 조직 문화가 자리 잡은 언론사에서도 냉소와 회의주의가 팽배한 게 현실이다. 여기에 사회 전반이 당면한 세대 갈등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뉴스룸 내 소통을 가로막는 벽은 더욱 단단해졌고, 분명한 갈등 상황조차 제때 대처하지 못하고 방치해 뒀다가 나중에 곪아 터지고 나서야 화들짝 놀라는(혹은 그런 시늉을 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런 조직 문화를 견디지 못한 기자들은 단순히 퇴사를 결심하는 게 아니라 언론계를 아예 떠나고, 뉴스룸의 활력은 점점 떨어진다. 저널리즘의 위기를 걱정하는 이들이라면 뉴스룸 내 위기의 본질을 반드시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최근 발간한 ‘뉴스룸 내부 커뮤니케이션 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 표지.

이런 상황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최근 내놓은 ‘뉴스룸 내부 커뮤니케이션 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는 더없이 반갑다. 박영흠 언론재단 선임연구원이 책임연구를 수행한 연구서는 “처음으로 뉴스룸 내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본격적인 분석 대상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조직 내부의 문제점에 대한 진단을 바탕으로 실질적으로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실천적 대안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자 출신이기도 한 연구자(공동연구자 포함)는 언론사 조직 논리에 대한 이해와 광범위한 사례 연구를 통해 뉴스룸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왜 실패했고, 그 결과가 뉴스룸은 물론 저널리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핀 뒤,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를 위한 해법까지 꼼꼼히 제시했다. 지금 우리는 “‘저널리즘의 위기’가 ‘저널리스트의 위기’로 이어지고, 이 ‘저널리스트의 위기’가 다시 ‘뉴스룸의 위기’로 진화한 상황”을 목격하고 있으며, 따라서 저널리즘 회복을 위한 “질 높은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는 게 연구진의 결론이다.

‘중앙집중형’ 동아일보와 ‘분권자율형’ 한겨레

연구진은 사례 연구 대상으로 동아일보와 한겨레를 정하고, 각각의 신문사에 재직 중이거나 재직 경험이 있는 기자 20명씩 총 40명을 인터뷰했다. 보고서에선 두 신문사의 실명을 밝히지 않고 각각 ‘명성신문’, ‘정론일보’란 가명으로 칭했는데, “연구 대상이 된 언론사가 어디인가의 문제는 연구 결과를 독해하는 데 있어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뉴스룸 내 소통의 결함은 모든 언론이 겪는 보편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각각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두 신문은 이념 성향뿐 아니라 많은 면에서 다르다. 대표적인 게 지배구조다. 동아일보는 사적 소유 기업으로 사주 가문이 4대째 대를 이어 경영 중이다. 반면 한겨레는 민주화 흐름 속에 ‘국민주 신문’이라는 독특한 지배구조로 탄생했으며 3년에 한 번씩 선거를 통해 대표이사를 뽑는다.

사주가 있고 없고는 뉴스룸 조직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연구진은 강력한 오너십이 작동하는 동아일보는 ‘중앙집중형 뉴스룸’으로, 한겨레는 ‘분권자율형 뉴스룸’으로 특징을 요약했다. 동아일보 뉴스룸이 ‘유사 가족’으로서 가부장적 공동체를 이룬다면, 한겨레는 ‘유사 사회운동 조직’의 ‘동지적’ 관계라는 점도 분명한 차이점이다.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최대의 효율성 추구”

하지만 차이점보다 주목할 건 공통점이다. 우선 “뉴스 생산 시스템이 상명하복의 엄격한 위계서열 질서 속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수평적 조직 문화를 가진 한겨레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여러 정보를 수집해 정해진 시간 안에 기사 마감을 해야 하는 뉴스 제작의 특성상 수직적인 문화는 불가피하다고 인터뷰에 참여한 기자들은 입을 모았다.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최대의 효율성을” 내기 위한 선택이란 것이다.

/pixabay

이처럼 공적인 업무에선 수직적인 위계 구조 탓에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나 단절이 발생하지만, 동시에 사적 공간에선 “가족이나 동지를 지향하는 공동체적 친교집단이 형성”된다는 게 뉴스룸 문화가 가진 독특함이다. 뉴스 제작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나 불만을 술자리에서 풀거나 선배가 후배를 다독이는 것으로 대신해온 것이다.

하지만 인간적 친밀함으로 부족한 커뮤니케이션을 보완하려는 시도는 한계가 뚜렷하다. 연구진은 “인간적 친밀성과 의리, 온정에 기초한 공동체성은 조직의 위기 극복과 비전 제시 등 뉴스룸이 당면한 구조적 이슈를 분석하고 구성원 간의 이견을 조정하며 진지하게 문제에 대응하는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며 “기자들이 대체로 회의와 토론을 통해 조정과 합의를 해나가는 작업에 서툰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두 신문의 젊은 구성원들 사이에는 조직에 대한 냉소주의와 회의주의가 팽배하다는 공통점도 있었는데, 이 역시 “뉴스룸 문화의 질곡이 형성한 커뮤니케이션의 계속된 실패가 ‘어차피 이야기해봤자 소용없다’는 좌절감을 반복해서 주입한 결과”다.

‘회사원화’ 된 기자들? 직업관도 변화

언론이 이런 ‘낡은 뉴스룸 문화’를 고집하는 동안 세상은 크게 변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고, 회식 등 술자리는 줄었으며, 경력기자의 증가로 기존의 가족 같고 동아리 같던 ‘동질적 뉴스룸’은 해체되고 있다. 뉴스룸 구성원들의 배경이 그만큼 다양해졌고, ‘동아스러움’ ‘한겨레스러움’처럼 뉴스룸이 추구해 온 특정 가치나 방향성을 공유하기도 전보다 어려워졌단 의미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저널리즘의 위기’가 불러왔다. “언론의 미래가 불투명해지면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기자들의 전략적 대응이 뉴스룸의 지각 변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연구진은 인터뷰에 참여한 기자들의 응답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으로 ‘직업관의 변화’를 꼽았다. 기자라는 직업을 바라보는 관점과 스스로를 규정하는 정체성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뜻인데, 이를 시니어 기자들은 ‘회사원화’라는 말로 설명했다.

기자들이 ‘워라밸’을 따지고 시간외 근무를 거부하거나 그에 대한 보상을 꼼꼼히 챙기는 모습을 보며 선배 그룹은 “이거는 기자가 아니다”라고 혀를 찬다. 그렇게 ‘노동의 권리에 대한 주장’이 강해진 반면, 회사의 지시에는 더 순응적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과거에는 언론사를 회사로 생각하지 않았고 기사 쓰는 것을 회사 업무가 아닌 ‘내 일’로 생각했기 때문에 상사의 지시를 거부하며 싸우는 일도 많았는데, 지금은 명확히 조직은 회사가 되고, 기자는 회사원이 되다 보니 지시를 군말 없이 따르는 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불만이 있어도 “직접적 대화와 논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저연차 기자들 간의 사적 관계 속에서의 성토로 끝날 뿐”이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언론 시장의 물적 토대가 붕괴되고 전통적 저널리즘의 미래가 불투명해진 뉴스 미디어 환경의 변동”이 자리잡고 있다. 저널리즘 사업이 사양산업이 되고, 과거의 권위는 간데없이 ‘기레기’라는 멸시와 혐오만 남은 상황에서 “선배들이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며 변화를 거부하고 이렇다 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젊은 기자들은 조직에 대한 좌절 못지않게 미래에 대한 불안과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이제 ‘평생 직업’, ‘평생 직장’은 실현 불가능한 개념이며, 조직 내에서의 승진과 보상도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됐다. 연구진은 “직업적 효능감을 잃어버린 이들은 퇴근시간을 엄격히 지키고 복지와 처우를 꼼꼼히 따지는 것으로 별도의 보상을 받고자 한다”며 “젊은 기자들의 ‘회사원화’는 이처럼 저널리즘의 위기라는 외부 맥락과 연결지어 해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지금의 뉴스룸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된 방향성을 잃은 상태다. “뉴스룸이 하나의 공동체로 유지될 수 있도록 만드는 핵심적 가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참여한 한 기자는 “우리가 공동체로서 이 일을 하면서 ‘이게 우리 일의 핵심이야. 이게 우리 일의 고갱이야. 이것만은 지켜야 돼’라고 하는 핵심적인 어떤 것이 모호해졌다”고 말했다.

“저널리즘 회복 초점 맞춘 새로운 뉴스룸 문화 구상해야”

이처럼 낡은 뉴스룸 문화는 한계에 이르렀는데, 새로운 뉴스룸 문화는 아직 구상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연구진은 “뉴스룸 공동체가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상황에서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고품질의 저널리즘을 구현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을 조성하고 언론사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증진시키는 새로운 뉴스룸 문화를 구상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뉴스룸 내 독립적 저널리즘 논의기구의 상설화 △관리자 트랙의 분리와 체계적 훈련을 통한 리더십 육성 △각 부서 데스크의 소통 업무 전담과 이를 위한 업무 범위 재설정 △대면 커뮤니케이션의 복원 등을 제안했다.

먼저 “자사 보도의 전반적 논조나 편집 방향, 개별 기사의 구체적 내용, 뉴스룸의 운영 방식, 디지털 혁신 전략 등에 관한 자유로운 대화와 토론”을 하는 상설적인 논의기구가 필요하며, 노동조합이나 기자협회가 그 구심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노조의 공정언론위원회 같은 기구의 기능을 복원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실제로 동아일보와 한겨레에서도 이 같은 기구의 활동이 무력화되면서 “기자들의 의견과 불만은 수면 아래에서 파편화된 채 익명 앱 등을 통해 왜곡된 형태로 유통되기 시작”했고, 한겨레의 ‘조국 사태’에서 보듯 침묵 속에서 “불만이 누적돼서 빵 터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사 잘 쓰는 기자가 좋은 리더 될 거란 착각 버려야

리더십 양성을 위한 인사관리 시스템의 개혁도 주문했다. 연구진은 “언론사들은 그간 기자 일을 잘했던 자원이 관리자 역할도 잘 해낼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 기초한 인사를 고집해 왔고, 이런 낡은 관습에 따른 인사는 필연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를 초래했다”면서 “리더에 필요한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갖춘 기자를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리더를 육성하는 섬세한 인사관리 제도”를 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일부 언론사에서 시행했던 ‘1인 소통데스크’ 제도는 한계가 크다며, 각 부서에 최소한 한 명씩 둘 것을 제안했다. 필연적으로 이 업무를 맡을 가능성이 큰 차장 등 데스크 업무를 분산시키고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코로나19로 줄었던 대면 커뮤니케이션도 복원해야 한다고 했다. 연구진은 “스킨십 부재는 단순한 구성원들 간의 친목 차원을 넘어 생산성의 하락으로도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면서 “비대면과 전통적인 대면 소통의 ‘황금비율’을 찾는 노력”을 주문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궁극적 목표는 뉴스룸이 담당하는 업무의 본령인 저널리즘을 회복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언론사들이 이처럼 해묵은 커뮤니케이션의 경화 현상을 계속 방치한다면, 콘텐츠 품질의 하락뿐 아니라 구성원들의 업무 만족도 및 사기 저하 등으로 조직의 지속가능성 자체가 위협받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며 “뉴스 이용자들은 더 이상 불통의 조직이 만들어낸 불만족스러운 콘텐츠를 인내할 용의가 없기 때문”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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