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츠펜터처럼 진실 알리는 소수가 세상을 바꿉니다"

[인터뷰] 제3회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수상자 바실리 콜로틸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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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잔디와 따스한 햇살. 여유롭게 드러누운 사람들, 부모와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 평화로운 유럽 같은 분위기가 펼쳐지지만 전쟁이 한창인 러시아 내부의 모습이다. 러시아의 프리랜서 기자이자 영화 제작자인 바실리 콜로틸로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전쟁터가 아닌 러시아 안에서 취재해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전쟁이 시작됐을 때는 물론 전쟁터로 가서 취재하려고 했죠. 하지만 러시아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또한 중요한 취재라고 깨달았어요.” 콜로틸로프가 만든 1시간 길이 다큐멘터리 제목은 <인사이드 러시아: 푸틴의 국내 전쟁>이다. 그의 눈에 전쟁은 국경에서뿐만 아니라 국경 안 깊은 곳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인사이드 러시아: 푸틴의 국내 전쟁' 중 한 장면. 다큐멘터리는 푸틴 정권의 대내 선전과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큐멘터리에는 러시아 전국 각지에서 전쟁에 반대한 러시아인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명단은 숨긴 채 전사자 수를 축소해 발표하는 정부에 맞서 죽은 군인들의 이야기를 찾아 나선 기자 두 명, 가격표처럼 생긴 반전 스티커 다섯 장을 마트에 붙였다가 구속된 시위 참여자와 영국에서 공부할 때 구한 유심카드로 검열을 피해 SNS에 반전 영상을 올리는 시민, ‘전쟁 반대’라는 표현이 불법인 줄 모르고 SNS에 올렸다가 벌금을 내고 해고된 경력 20년의 법학 교수. 이들의 이야기가 뛰어난 영상미와 함께 교차해 가며 다큐멘터리는 전개된다.


지난 8일 제3회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시상식에 앞서 국회도서관에서 만난 콜로틸로프는 “해외 언론과 인터뷰만 해도 처벌된다”며 “법이 금지하는 내용이 너무 모호하고 범위가 넓어서 뭐가 됐든 정부가 원하는 대로 감옥에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푸틴은 국영TV로 잘못된 정보와 애국심을 섞은 선전물을 내보내 왔다. 사람들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먼저 공격했다고 생각할 정도가 됐다.

제3회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대상 수상자인 바실리 콜로틸로프가 시상식이 열린 지난 8일 국회 도서관에서 기자협회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

“전쟁이 시작되고 표현의 자유와 언론을 억압하는 법안이 무더기로 만들어졌어요. ‘특별군사작전’이라면서 전쟁을 전쟁이라고 부르기만 해도 처벌받아요. 군과 국방부에서 발표한 ‘참된 정보’가 아니라 부차 학살 같은 전쟁범죄를 보도해도 ‘가짜뉴스’를 퍼뜨렸다며 감옥에 가야 하고요.”


콜로틸로프를 비롯한 취재팀 4명은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대상인 ‘기로에 선 세계상’을 받았다. 전쟁이 벌어지자마자 진실부터 통제한 러시아의 상황은 한국의 5·18민주화운동과 닿아 있었다.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은 광주에 잠입해 5·18을 세계에 알린 독일인 고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이름을 딴 상으로, 제2, 제3의 힌츠페터를 찾아 격려하고 5·18의 정신과 가치를 알리기 위해 제정됐다. 5·18 기록영상 대부분이 힌츠페터가 촬영한 것이기도 하다.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시상식 참석을 위해 방한한 바실리 콜로틸로프(왼쪽)와 알렉산드라 오디노바(오른쪽). /5·18기념재단 제공

“광주는 잘 알고 있었어요. 상을 받기 전에 힌츠페터에 대해서는 자세히 몰랐었는데, 진실을 갈망하는 진정한 언론인의 표상이라고 생각해요.” 콜로틸로프는 이 상의 의미에 대해서도 말했다. “광주의 이야기는 언론인들에게 영감을 줘요. 영화 ‘택시운전사’처럼 한 사람이나 두세 사람 정도라도 진실을 알리는 소수가 세상을 실제로 어떻게 바꾸는지 일깨워 주잖아요. 그런 의미를 알려주는 상이라고 생각해요.” 그의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얼굴을 드러냈고, 처벌을 감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5·18기념재단과 한국영상기자협회가 공동주최하는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시상식은 올해가 세 번째다. 매년 경쟁 3개 부문, 비경쟁 1개 부문을 공모하는데 올해는 영국과 독일, 미국, 한국 등 13개 국가에서 23개 보도가 출품됐다. 한국의 유일한 국제보도상이다. 수상자에게는 부문별로 차등 없이 1만달러(한화 1300여만원)가 상금으로 주어진다.

'인사이드 러시아: 푸틴의 국내 전쟁' 중 한 장면. 왼쪽에 바실리 콜로틸로프, 가운데는 반전 스티커를 붙인 혐의로 구속된 친구를 만나러 법정에 가는 다큐멘터리 속 등장 인물이다.


콜로틸로프와 함께 한국을 찾은 알렉산드라 오디노바는 “이름을 드러낼 수 없는 분들께 감사하다”고 수상소감을 말했다. 취재팀은 언론탄압 위험이 커지자 취재 도중 러시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영상 기자 한 명만 러시아에 남아 촬영을 계속했다. 가족 때문이었다. 영상을 전송하면 나머지 팀원들이 영국에서 편집해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콜로틸로프는 언제 다시 러시아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망명도 아니고 비자를 발급받아 머물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위험이에요. 공항은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몇 주 전에 입국한 어느 기자는 일주일 만에 집 안에서 체포되기도 했어요.”


그러함에도 계속해야 한다고 콜로틸로프는 수상소감에서 전했다. “힌츠페터가 일하지 않았으면 광주가 세계에 알려지지 않았을 겁니다. 저희가 이런 상을 받음으로써 권위주의적인 악행들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노고가 더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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