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6년 일한 청소노동자 하루아침에 해고… 사측 "용역업체 소관"

[해고자 3명, 최근 결성된 노조 집행부]
EBS노조 "경영적자가 해고 이유면 그 대상자는 현 경영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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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20분.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각 층에서 일하던 미화노동자들이 작업복 위에 코팅된 종이를 걸치고 1층 로비로 향한다. 두 뼘 크기만 한 종이엔 빨간색과 검정색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다. ‘미화노동자도 사람이다. 일방적으로 인원감축하는 EBS 규탄한다.’


이들은 인원감축과 부당 해고에 반발하며 점심시간을 이용한 피켓시위를 3주째 이어오고 있다. EBS가 이달 초 새 업체와 청소용역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기존 노동자 3명이 해고됐기 때문이다. 특히 해고된 3명이 최근 결성된 노조 집행부여서 ‘표적 해고’ 논란이 일고 있다.

EBS 미화노동자들이 인원감축과 부당해고에 반발하며 EBS 일산 사옥 1층 로비에서 피켓시위를 3주째 이어오고 있다. 이들은 식사도 거른 채 EBS의 인원감축이 노조 간부에 대한 부당해고로 이어졌고 노동조건이 더 나빠졌음을 EBS 구성원들에게 알리며 ‘원청’인 EBS가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EBS는 지난달 청소용역 업체 신규 입찰을 하며 연간 사업예산을 지난해보다 3억4000만원가량 줄어든 금액으로 공고를 냈다. 청소 인력도 오후 조를 3명 줄이고, 근무시간도 주간·오후 각각 1시간씩 줄였다. 시급 노동자들에게 근무시간 감소는 급여 삭감을 의미했다. 인력도 줄고, 받는 돈도 주는데 업무범위는 그대로였다. 같은 업무를 적어진 인원으로 하려면 업무 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노동조건 악화를 예감한 미화노동자들이 뜻을 모아 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경기지역지부 EBS분회)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 8일 분회장과 부분회장, 사무장 등 집행부 3명이 선출됐다. 다음날인 9일 밤, 이들 3명은 새 용역 업체로부터 문자로 해고(고용승계불가) 통보를 받았다. EBS 일산 사옥이 건립되고 입주청소부터 시작해 6년을 일해온 이들은 “잘릴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EBS에서 만난 이들은 “우리는 6년간 경위서 한 번 쓴 적이 없다. 오히려 경위서를 많이 쓴 사람이 아직도 일하고 있다”며 “일만 열심히 한 사람을 노조에 들었다는 이유로 해고한 건 부당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매일 출근투쟁을 하며 점심시간엔 남은 동료들과 함께 EBS 로비 1층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남은 노동자들 역시 “너무 힘들다”고 호소한다. 오후 조 5명이 하던 일을 2명이 하게 되면서 다음날 오전 근무자들이 넘겨받는 업무 부담이 그만큼 커진 탓이다. 주말 근무도 없앤 탓에 월요일에 출근하면 “쓰레기가 산더미”다. EBS측은 “좀 지저분하더라도 참고 우리(직원)가 치우며 지내면 된다”고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EBS는 인원감축은 경영적자로 인한 불가피한 결정이며, 해고 대상자 결정은 용역 업체의 소관으로 자신들은 무관하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EBS는 매출액의 약 10% 규모인 256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국고보조금이 급감하고,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교재 판매 수입 역시 해마다 줄고 있어 자본잠식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EBS는 연간 비용을 300억원 줄이는 것을 3년 내 목표로 잡았다. 청소용역 예산 3억여원을 줄인 것도 전체적인 비용 절감의 차원이며, “계약만료 시점에 맞춰, 사회적 약자란 점을 고려해 ‘최소한’으로 줄였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해고된 노동자들은 “여기(EBS)는 공영방송이니까 노동자를 보호하고 고용을 승계해야 하는데 취약계층인 미화노동자부터 건드렸다”며 “이렇게 하면 절감되는 비용이 얼마냐. 우리를 그렇게(해고) 해서 적자가 흑자로 돌아서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정규직 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도 힘을 보태고 나섰다. 이들은 지난 11일 성명에서 “경영 적자가 비용 절감을 위한 해고의 이유라면, 해고 대상자는 묵묵히 일해온 미화노동자가 아니라 회사의 재정을 이 지경까지 이르게 한 경영진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EBS지부는 ‘(해고 통보는) 용역 업체의 소관’이라며 선을 긋는 회사의 태도에 대해서도 “EBS 내부의 문제이며 대외 이미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반박한다. 3억원 남짓 비용을 줄이려고 공영방송이자 교육방송인 EBS가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게 ‘소탐대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태봉 EBS지부 부지부장은 “EBS가 대학 청소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해 다큐멘터리나 ‘지식채널e’, 기사 등으로 엄청 많이 방송했다.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가치, 선한 이미지와 책무가 이번 일로 손실될 수 있음을 느낀다. 단지 연대하는 것을 넘어 우리 회사가 위기라는 문제의식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EBS지부는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EBS가 직접 나설 것을 촉구하며 언론노조, 공공운수노조 등과 함께 다음 달 8일 EBS에서 기자회견과 집회 등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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