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러와 공생하는 포털·언론, 책임도 함께 져야"

[책과 언론] 우리 모두 댓글 폭력의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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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인 사건·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우리는 신음하듯 이 말을 토해낸다. ‘얼마나 더 죽어야 하는 걸까?’ 잊을 만하면 터지는 인재(人災), 참담한 아동학대 사건 등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왜 분노는 누가 죽어야 타오르는가.’


악성댓글(악플)에 시달리던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끝내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을 접할 때도 그렇다. 언론 등은 ‘악플, 이대로 괜찮은가’ 식의 기사와 칼럼을 쏟아내며 악플러들을 근엄히 꾸짖지만, 정작 그 기사에 어떤 악플이 달리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악플이 죽음을 부르고, 죽음이 또다시 악플을 부르는 악순환. 그렇게 댓글창은 ‘사회적 살인’의 현장이 됐다.

사진=개마고원


이 ‘살인’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만이 아니라 다수의 목격자가 있다는 게 특징이다. 구경꾼들이 모여든 틈에 한몫 잡아보려는 장사꾼들도 넘쳐난다. 누구든 한 번쯤은 최소한 방관자였을 거란 의미다. 따라서 이 사회적 살인의 공범은 우리 사회다. 책 <우리 모두 댓글 폭력의 공범이다>(개마고원)가 던지는 묵직하고도 도발적인 화두다.


책의 저자인 정지혜 세계일보 기자는 그 자신이 댓글 공격의 피해자였다.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여성 혐오에 대항하는 기사와 칼럼을 쓰면서 “웬만한 악플 종류는 다 경험”했고, 7년차 기자이던 2021년엔 유명 유튜버에 의해 소위 ‘저격’을 당하면서 “사이버테러 행위로서의 댓글을 적나라하게 마주”했다. 모르면 몰랐지, 알게 된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악플을 피하기보다 오히려 더 챙겨보며 댓글 문화의 실체를 까발리는 여정에 나섰다. “단언컨대, 이건 우리 모두의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난해 7월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 팬카페에서 시작된 박지현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아동 성추행 의혹이 확산하는 과정을 통해 공론장이 어떻게 타락하는지를 보여준다. 먼저 프로보커터(provocator·선동가)가 “추측과 썰 풀이에 기반한 그럴듯한 음모론”을 내놓으면, 분위기에 휩쓸려 악의적 댓글을 달거나 후원 등으로 힘을 보태는 이들(트롤)이 등장한다. 언론은 본질이나 맥락을 파악하기보다 이를 단순 중계하며 이슈 팔이에 나선다. 그리고 이런 기사엔 당연히 악플이 넘쳐난다. 악플러들은 뉴스를 열심히 보고 댓글 활동도 열정적이기 때문에 언론 입장에선 “필요악”이다. “악플러와 언론은 그렇게 서로를 먹여 살리는 공생 관계”가 된다. 그 대가는 물론, 땅에 떨어진 언론 신뢰도다.


하지만 당장 눈 앞의 조회수와 광고 수익이 더 커 보이는 한, 언론은 싸움을 붙이는 “콜로세움”으로서의 역할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 이처럼 “게임화되는 뉴스와 댓글이 재미와 흥행에 몰두할 때” 혐오와 폭력의 타깃이 된 이들의 피해가 조명받을 길은 없다. 온라인상에서 특히 여기자들을 향하는 여성 혐오적 공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순기능을 기대하기 힘들어졌다면, 댓글을 폐지하는 게 답일까. 저자는 그보다 플랫폼과 언론의 책임을 강조한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이용자에게도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며, 룰을 지키는 이들에게만 공론장을 사용할 권리를 부여하자고 제안한다. 예로 든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 해외 언론의 댓글 정책을 보면 댓글 실명제에 가깝게 운용하고, 관리자 검토를 거쳐 댓글을 노출하며, 댓글 수정과 삭제에 대한 언론사의 권리를 강조하는 게 최근의 추세다. 기자에 대한 공격에 회사 차원에서 엄격한 대응을 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반면 CNN과 로이터통신, BBC 등은 과감히 댓글창 없이 가는 쪽이다. 이들 매체는 게시판이나 SNS로만 독자 의견을 받는다. “극히 일부 방문자만 댓글을 달아 댓글의 대표성이 떨어지거나 댓글이 온라인 여론을 왜곡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미국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용자 1%가 전체 분쟁의 74%를 일으킨다는 분석도 있었다.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국민일보가 지난해 네이버 댓글 사용자를 분석한 결과 전체 국민의 0.31%, 즉 1000명 중 3명만이 댓글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풀려진 비시민성의 기세에 속아 상식적인 다수의 활동이 위축되고 눈치를 보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극단적으로 대표되는 소수의 의견이 여론인 양 휘둘리거나, 반대로 무대응·무반응으로 일관하는 것은 공론장을 망가뜨리는 지름길이다. 저자는 “혐오·조작 세력이 활개치는 동안 우리 모두는 공론장 파괴에 따른 직간접적인 피해를 본다는 것을 인지하고, 동료 시민으로서 함께 들고일어날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 “댓글창에 자신의 동조 세력이 조금만 줄어들거나 상식적인 시민의 피드백이 늘어나면 악플 부대의 공격은 눈에 띄게 감소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기자들은 위축되지 않고 꿋꿋이 필요한 기사를 써나가는 것만으로도 점진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저자 스스로 진부한 결론이라고 했지만, 어쨌든 답은 하나, “댓글창을 어떤 공론장으로 만들 것이냐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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