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재원 45%가 수신료… 돈줄 쥐고 공영방송 시스템 흔드나

2008년 헌재 "수신료는 시청료와 달라… 공영방송사업 위한 특별부담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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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이 지난 9일부터 국민제안 홈페이지를 통해 ‘TV수신료 징수방식 개선’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듣겠다고 나섰다. 대통령실은 수신료와 전기요금을 통합 징수하는 현행 방식에 대해 “소비자 선택권 및 수신료 납부거부권 행사가 제한된다는 지적 등이 꾸준히 제기됐다”면서 관련해 2006년 헌법소원심판이 청구된 적이 있고, 최근 프랑스와 일본 등에선 수신료를 폐지하거나 인하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수신료 분리 징수와 통합 징수를 각각 지지하는 견해를 소개하며 수신료 제도 전반에 대한 의견을 달라고 했다.


일견 균형감 있게 정보를 제공하며 판단을 구하는 듯 보이나, 여기엔 중요한 맥락이 빠져 있다. 바로 2006년 제기된 헌법소원에 대한 판결이다. 2008년 헌법재판소는 수신료의 법적 성격에 대해 “공영방송사업이라는 특정한 공익사업의 경비조달에 충당하기 위하여” 실제 시청 여부나 정도와 관계없이 부과되는 특별부담금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앞서 1999년 있었던 헌재의 판단을 재확인한 것이다. 또한, 월 2500원의 수신료 액수 등을 고려할 때 “공영방송사업의 재원 마련 나아가 공영방송의 독립성 및 중립성 확보라는 입법목적에 비하여, 수상기 소지자가 입게 되는 재산상의 불이익은 크지 않다”고도 했다.

사진=뉴시스


다시 말해 수신료는 TV 시청의 대가로 유료방송 등에 지불하는 ‘시청료’와는 다르며, “공영방송이 국가나 각종 이익단체에 재정적으로 종속되는 것을 방지”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취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대통령이 나서서 ‘공영방송을 보지도 않는 국민까지 수신료를 내는 것이 맞느냐’고 하더니 국민제안을 구실로 여론 수렴에 나선 것이다.


국민제안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제안을 채택해 국민 참여 토론에 부치는 일은 행정청, 즉 정부의 몫이다. 이번 여론 수렴을 두고 “아래로부터의 회초리인가, 위로부터의 탄압인가”(강성원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장)란 의문이 나오는 이유다.


2022년 기준 KBS 수신료 수입은 6934억원으로 전체 재원에서 45%의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전력에 위탁해 전기요금과 수신료를 함께 징수하는 제도는 1994년 도입됐는데, 이를 계기로 이전 53%에 머물던 징수율은 99.9%로 올랐다. 반대로 생각하면 다시 분리 징수로 돌아갈 경우 KBS 수신료 수입은 절반 혹은 그 이하로 줄어들 수 있다. 이는 단순히 KBS라는 방송사의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넘어 수십 년을 유지해 온 공영방송 제도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을 의미한다. KBS와 한전은 3년 단위로 위탁 징수 계약을 갱신하는데, 현 계약 기간은 2024년 만료되어 올해 말부터 재계약 협상을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수신료 분리 징수 문제를 꺼내 들었으니, KBS로선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이처럼 재원을 통제해 기존의 공영방송 시스템을 흔드는 시도는 지난해 ‘TBS 폐지 조례안’ 처리 과정에서 현실화됐다. 수신료 징수 문제가 대통령실의 국민참여 토론 2호 의제가 된 것처럼 TBS에 대한 서울시의 예산 지원 근거를 없애는 폐지 조례안은 국민의힘 서울시의원들의 2호 의안으로 발의됐고, 단 4개월 만에 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은 이를 “시민의 뜻”, “시민의 엄중한 심판”이라고 했다. 이와 별개로 오세훈 시장은 2022년에 이어 2023년 TBS 예산에서도 서울시 출연금을 대폭 삭감하면서 “재정 독립이 진정한 의미의 독립”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TBS의 재원 다양화 방안이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시의 예산 삭감은 역설적으로 시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고, TBS의 존속과 출연금 확보를 위해 서울시와 시의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2020년 2월 독립 재단으로 출범하며 표방한 ‘지역 공영방송’으로서의 가치도 덩달아 시들해졌다.


공기업이 최대주주인 ‘준공영방송’ YTN의 지배구조를 25년 만에 수술대에 올린 것도 이 정부다. 앞선 정부 때도 YTN 공기업 지분 매각이 물밑에서 검토된 적은 있었지만, 윤석열 정부는 출범 반년도 안돼 바로 이를 실행에 옮겼다. 사기업의 보도채널 소유에 따른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으나, ‘공공기관 혁신’과 ‘자산 효율화’란 명분이 모든 걸 압도했다.


언론단체들은 일련의 과정에서 대통령과 여당의 “공공성에 대한 무지”가 드러난다고 비판한다. “대통령과 국민의힘에게 공영방송은 오직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평가하고 통제해야 할 확성기로만 보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언론노조는 21일 성명에서 “윤석열 정권의 일관된 미디어 공공성 파괴”를 우려했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도 “공영언론에 대한 이 정권의 탄압은 너무나 다양한 형태로 치밀하게 진행 중”이라며 “전례가 없을 정도”라고 꼬집었다. 이완기 새언론포럼 회장은 “특정 언론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시청자, 시민의 문제”라며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전부 나서 시민사회와 연대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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