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보도준칙, 여러 한계에도 노력 수반된다면 희망은 있다

기자협회·언론재단 주최,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본 재난보도준칙' 토론회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드러난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재난보도준칙이 만들어진 지 8년이 지났다. 재난보도준칙은 그동안 수많은 자연, 인적, 질병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호명됐고, 최근 이태원 참사라는 큰 사회적 재난을 마주하며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이번 재난 상황에선 준칙의 역할에 대한 평가가 양면적이었다. 재난보도준칙 덕분에 세월호 참사만큼의 언론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며 희망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현장에서 준칙의 역할은 미미하다며 수정과 보완을 통해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지난 14일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다시 본 재난보도준칙’ 토론회에서도 이 같이 다양한 평가와 의견들이 나왔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재난보도준칙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되짚어보면서 우리 재난 보도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또 준칙이 어떤 방식으로 수정돼야 하는지를 심도 깊게 논의했다.

발제를 맡은 서수민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실제 현장에서 재난보도준칙이 적용되는 데 여러 한계가 있음을 지적했다. 서수민 교수는 “이번 참사 때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났던 부분은 초기의 혼란과 무차별적인 취재 경쟁, 그 과정에서의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인권 유린”이라며 “재난보도준칙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을 해결할 수 있는 ‘재난현장 취재협의체(준칙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도록 현장 데스크 등 각사 대표가 참여하는 협의체)’인데, 이번 참사 초기엔 제대로 구성되지 않았다. 현장 기자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해가 뜰 때까지도 컨트롤타워가 부재해 기자들끼리 뭘 만들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통상 관료들은 정보 제공으로 자신들의 역할이 끝났다고 볼 때 그 이후에도 언론사들이 서로 소통하기 위해 이런 준칙이 있는 것이지만 이번 참사로 돌아가 보면 제대로 된 정부 브리핑조차 한참 후에 이뤄졌다”며 “정부의 문제와 함께 데스크와 언론사들의 문제 또한 있다. 언론사에서 가장 젊은 인력으로 운영되는 사회부 시스템에 잦은 순환근무까지 있으니 집단적인 재난 문해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다시 본 재난보도준칙’ 토론회가 지난 14일 서울 중구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원에서 열렸다.

실제 이번 참사를 취재한 기자들도 준칙과 현장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고 토로했다. 송재인 YTN 기자는 “준칙 제13조에 유언비어 방지 부분이 있는데 이 대전제에 반대할 기자는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현장에서 나의 일이 됐을 때 솔직히 장담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예를 들어 당시 마약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든가 연예인이 있어서 사람들이 몰렸다는 목격담이 있었는데, 수사기관 등 당국이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지 않는 이상 이런 내용을 일체 전하면 안 되는 건가란 생각을 했다. 왜냐면 당시 현장에서 사람들이 느꼈던 내용을 전하는 게 현장성을 지키는 제 1의 기준일 수도 있는 것이라 그렇다면 어디까지 현장을 전해야 하는 건가 고민이 들었다”고 말했다.

송 기자는 또 “선정적, 반복적 보도에 대해서도 이번 참사를 계기로 얘기가 많이 나왔던 것 같다”며 “그러면 우리는 24시간 보도를 하며 당시 화면을 일체 쓰지 않아야 하는 건가, 그러면 어떻게 뉴스를 할 수 있지, 예컨대 이태원역 출구 그림 중심으로 가야 되는 건가란 생각을 했다. 일부 조항들이 추상적으로 느껴지는데, 가능하다면 좀 더 고민을 해서 구체적인 내용들이 준칙으로 담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유진 경향신문 기자는 재난보도준칙을 지킬 여유가 언론사들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준칙 중에서 취재협의체 운영이 가장 눈에 띄었는데, 사실 데스크나 안에 있는 관리자들은 데일리한 업무를 수행해야 되고 지면을 구성하느라 현장에 투입되는 기자들 개개인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며 “참사에 걸맞은 인력과 자원 투입도 한 달 반 정도 지나고 돌이켜봤을 때 굉장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저연차 기자들이 계속 그 현장을 마주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인력이 투입돼 다른 각도로 상황을 봤어야 하는데 저 역시도 자책감을 느끼는 부분”이라고 했다.

이 기자는 “한편으로 너무 유족들에게 접근해서 2차 피해를 입힌다는 지적이 있는 반면 외신에선 실명으로 유족 인터뷰가 나오는데 한국 언론은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는 양립하는 비판이 나오면서 억울한 부분도 있었다”며 “지금 입사하는 후배들은 인권 감수성도 높고 하지 말아야 될 행동은 오히려 굉장히 잘 알고 있다. 준칙으로 이렇게 해선 안 된다, 이런 건 자제해야 된다는 얘기는 많은데 재난 상황에서 이러한 보도를 해야 된다는 가이드라인은 언론계가 공유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고, 우리 사회가 좀 더 얘기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참사에선 이미지를 둘러싼 고민도 컸다. 서수민 교수는 “속보 초기 국내 언론사는 현장 사진에 모자이크를 해도 굉장히 큰 비난을 받았지만 외신의 경우 오히려 모자이크를 안 한 시신 사진도 많이 나왔다”며 “언론 윤리와 독자들의 감수성이 문화마다 맥락마다 다르기 때문에 준칙으로 확립되는 것이 어렵다는 견해들이 많이 있었다. 게다가 한국은 제도적으로도 초상권에 엄격하기 때문에 보험 차원에서 모자이크 처리를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언론법 전문가인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실제 해외에 비해 한국이 초상권을 과도하게 보호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민정 교수는 “미국의 경우 초상권 자체보다는 초상의 침해가 있은 후 구체적으로 침해되는 법익이 있을 경우 제재를 받게 된다”며 “그러니까 초상의 사용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가 무엇인지 명확해야지만 초상의 사용이 금지된다는 것이다. 독일도 당사자의 정당한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경우 시사적인 영역에서의 초상의 사용은 허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내에선 초상권을 두고 소송이 반복되다보니 언론사 입장에선 그냥 가리는 게 가장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고,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서도 기계적인 적용이 있었던 것 같다”며 “지난달 22일에 열린 유가족 기자회견을 보도하며 영정 사진이나 유가족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 방송사 관계자들이 보도 참사를 축소하기 위해 그랬다고 생각하진 않고, 그것이 안전하다고 기계적으로 반응했던 거라 생각한다. 다만 그렇게 내린 윤리적인 결정이 궁극적으로 충성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즉 기자 개인의 편의인지, 언론사의 편의인지,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충성인지, 피해자에 대한 충성인지 스스로 질문을 한다면 순간순간의 개별적인 판단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후 모니터링‧언론윤리 감시 그룹‧효과적인 준칙 교육 등 개선안 쏟아져

토론회 참석자들은 이러한 재난보도준칙의 한계를 어떻게 수정하고 보완해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서수민 교수는 “발제를 준비하면서 만난 기자들이나 학자들은 대부분 준칙 자체는 잘 만들었고 여기에 특별히 수위를 높이거나 구속성을 갖게 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다고 대부분 말씀하셨다”며 “현장 언론인들의 판단을 존중하고 직업윤리에 대한 토론 문화 등이 활성화되는 게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재난 보도의 개선을 위해 개별 기자에 책임을 전가하기보다 정부의 컨트롤타워 역할 및 언론사 단위에서의 인사나 훈련 개선 등이 함께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정 교수도 “재난보도준칙을 보니 제 36조 사후 모니터링 조항이 눈에 띄더라”며 “재난 취재에서 돌아온 취재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나 의견 청취 보고서 제출 등을 통해 다음 재난 취재 시 더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지원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한다는 내용이다. 저는 각 언론사들에서 이 복기 과정을 좀 반드시 거쳐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사회를 본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언론윤리를 감시하는 전문가 그룹을 만들어 준칙을 보완할 것을 제안했다. 배정근 교수는 “이번 참사 때 일부 언론들이 자제력을 가지고 보도할 수 있었던 데는 대한신경정신학회의 성명과 언론단체들의 성명이 영향을 끼친 것 같다”며 “그런 면에서 저는 기자협회나 언론재단에서 전문가들로 ‘언론윤리 워치독 그룹’ 같은 협의체를 만들어주셨으면 한다. 이런 큰 사건이 터졌을 때 협의체서 과잉 보도나 선정적 보도가 나오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을 해주고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KBS 재난보도준칙’ 제정 작업을 했었던 김성한 KBS 기자는 한편으로 효과적인 준칙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성한 기자는 “처음 언론단체서 만든 재난보도준칙을 보면서 현장 기자들이 알아먹을 수 있을까, 좀 더 사례 위주로 가야 된다고 판단해 구체적으로 접근하려 노력을 많이 했다”며 “그런데 결국 저희가 만든 것 역시 구체성을 반영하지 못 했다. 그 때 그 때 발생하는 재난 상황이 다 다른데, 거기에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을 명시적으로 제시한다는 게 참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 이후 소위 준칙의 내재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교육을 하고 있지만 현장에 나가 치열하게 고민할 부분이 너무 정갈하게 아름다운 글자로, 도덕책처럼 쓰여 있어 소위 말해 와 닿지가 않는다”며 “준칙을 내재화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고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릴 문제라고 본다. 효과적으로 기자들을 체득시키는 교육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언론 보도뿐만 아니라 댓글 관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도 있었다. 이유진 기자는 “윤리적인 부분을 지켜서 정확하고 신속한 보도를 한다고 해도 이미 유족이나 참사 희생자들에 대해 조롱 섞인 댓글을 남기는 것이 일종의 놀이처럼 자리 잡아버린 상황이라면 언론이 댓글 창 폐쇄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 같다”며 “언론을 소비하는 환경이 세월호 때와도 달라져서 희생자를 모욕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 사회의 윤리적, 도덕적 기준이 많이 낮아진 것 같고 그 안에서 일선 기자들은 책임과 의무는 있지만 권한은 적다.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지금 뉴스 소비문화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도 한 번 논의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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