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술값 1억… '빗썸 회장님' 돈주머니는 개미들 피눈물이었다

[인터뷰] 강종현 '머니게임' 추적한 디스패치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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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민영이 빗썸 회장과 사귄다.’ 기사는 지난 4월 한 줄의 제보에서 출발했다. 연예매체인 디스패치 기자들에게 유명 연예인이 연애한다는 제보는 예삿일이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빗썸’은 국내 대표적인 가상화폐 거래소인데, ‘회장’이라는 직함 자체가 드러난 적이 없었다. 디스패치는 금융업계 관계자들에게 빗썸 회장을 수소문했지만 누구도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때 기자들은 직감했다. ‘열애설로 끝낼 기사는 아니구나.’ 디스패치는 인기 배우의 열애 상대방이기 전에 의문투성이인 남성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빗썸 (가짜) 회장님 강종현’ 추적 보도로 한국기자협회 제386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디스패치 정태윤 기자(왼쪽부터), 박혜진 기자, 김지호 기자. 강종현을 추적하면서 확보하고 정리한 서류 뭉치들이 세 기자 주변에 쌓여있다. /디스패치 제공


단서는 ‘빗썸 회장’, 단 하나뿐이었다. 초반 취재는 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였다. 코인에 발 담근 이들을 알음알음 찾아 나섰다. 오랜 탐문 취재 끝에 ‘빗썸 회장 강종현’을 안다는 사람들을 만났고, 등기를 뗐고, 재판기록을 살폈고, 공시를 분석했고, 인스타그램을 뒤졌다. 그렇게 강종현의 정체에 가까워졌다. 빗썸에서 공식 직함이 없는 강종현은 여동생을 빗썸 사내이사로 뒀다. 강종현의 여동생은 빗썸홀딩스(빗썸코리아의 모회사) 최대주주인 비덴트의 대표를 맡았다. 강종현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여동생을 통해 빗썸의 대주주 노릇을 하고 있던 셈이다.


“빗썸 회장으로 불리는 강종현이 실존 인물이라는 걸 알고 나서부터 관련 회사와 인물들을 집중적으로 취재했어요. 아무런 직함도 없는 강종현이 왜 재력가로 살고 있는지, 드러난 것만 수백억원에 달하는 돈의 출처는 어디인지 쫓아갔죠.”(임근호 디스패치 편집국장)


3개월이 넘는 취재 끝에 지난 9월28일, 디스패치는 강종현의 실체를 밝히는 기사를 냈다. 은둔의 재력가 강종현을 처음 수면으로 끌어올린 이 보도는 무자본인수합병(M&A), 사기적 부정거래 등 그가 벌인 ‘머니게임’의 실상을 고발했다. 한남동 최고급 빌라, 슈퍼카들, 하룻밤 술값으로 1억원을 쓰는 그의 돈주머니는 개미들의 눈물이었다. 보도 여파는 상당했다. 수백 건의 인용 보도가 나왔고, 검찰은 강종현의 자본시장 교란 행위를 수사하고 있다. 취재팀은 지난달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경제보도부문)도 수상했다. 올해 기자협회에 가입한 디스패치가 처음 받은 이달의 기자상이다.


“저희 디스패치가 지난해 창간 10주년이었거든요. 기자협회 가입이 지난 10년의 결과물이자 앞으로 10년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길잡이가 될 거로 생각했어요. 초심을 다잡고 열심히 발로 뛰자는 각오가 강종현 사건 취재로 이어진 것 같아요.”(박혜진 기자)


디스패치는 기자상 수상으로 많은 축하를 받았다. 그러나 한편에선 연예매체가 왜 경제 보도를 하느냐는 물음표도 있다. 이런 시선에 김지호 기자는 “디스패치는 연예매체지만 탐사 성격도 가지고 있다. 증거 사진이 없으면 열애 기사를 내지 않는다는 원칙이 그렇다”며 “세월호 참사 당시엔 팽목항을 직접 찾아 취재했고 국정농단 사태 때는 의혹을 확인하려 해외 취재도 했었다. 그동안 정치·사회 이슈도 다뤄왔지만 아무래도 열애 보도가 크게 주목받곤 했다”고 말했다.


디스패치의 강종현 추적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 취재는 디스패치가 어떤 편견에서 벗어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아직 밝혀야 할 게 많아요. 상장사 인수자금 300억원의 출처는 여전히 미궁이고, 무자본M&A나 전환사채(CB) 차명 거래 방식도 드러나지 않았어요. 지금도 계속 취재하고 있어요. 우리가 종합지나 경제지처럼 전문적일 순 없겠죠. 하지만 기자는 알면 써야 한다고 배웠어요. 그게 분야에 한정돼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박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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