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고지' 식단, 기후위기 막을 대안 될 수 있다?

[책과 언론] '탄소로운 식탁' 펴낸 윤지로 세계일보 환경팀장 / 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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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24일) 오후 6시경, 서울 광화문 일대에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내 수천, 혹은 수만의 사람들이 차량이 통제된 세종대로 위로 드러누웠다. 멸종을 경고하는 의미를 담은, ‘9·24기후정의행진’의 ‘다이-인(die-in)’ 시위였다. 세계기후행동의 날인 이날 서울 도심엔 주최 측 추산 3만5000명, 경찰 추산 1만여 명의 시민이 모여 서울시청-광화문-을지로 일대를 행진하며 화석연료 체제 종식과 기후정의 실현을 촉구했다.


몇 년 사이 폭염과 대형 산불, 집중폭우 같은 ‘기후재난’을 겪으며 많은 이들이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눈뜨기 시작했다. 코로나19 같은 역병, 미세먼지도 결국 기후변화와 맞닿은 문제란 걸 이해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하지만 “걱정하는 마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후위기는 “과학적 사실”이며 “실질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9.24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이 지난 24일 서울시청 인근 세종대로에서 화석연료와 생명 파괴 체제 종식을 촉구하며 행진하던 중 기후위기를 경고하며 드러눕는 다이-인(die-in)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면 어디에서 얼마나, 어떻게 줄여야 할까. 그동안 우리의 관심은 주로 화석연료를 태우는 발전소나 자동차, 혹은 플라스틱 쓰레기 등에 집중됐다. 그런데 세계식량기구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전 세계 온실가스의 20%가 먹거리를 키우는 일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 비중을 21~37%까지 보는 견해도 있다. 윤지로 세계일보 기자(환경팀장)가 쓴 <탄소로운 식탁>은 바로 이 먹거리와 온실가스 이야기를 접목한 책이다. 거칠게 정리하면 우리의 밥상이 (온실가스의 주범인) 탄소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책은 설렁탕 한 그릇이 10kg의 탄소발자국을 남긴다는 식의 아리송한 설명 대신 음식이 우리 식탁에 오르는 과정에서 어떻게 탄소발자국이 만들어지는지를 자세히 기록했다. 이를 토대로 저자는 먹는 것에 관한 관심을 기르는 것에 조금만 나눠주면 저탄고지(저탄수화물+고지방) 말고 저탄고지(低炭高知), 즉 탄소를 줄이고 (기후변화에 관한) 지식을 높이는 밥상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잠깐. 결국, 고기를 먹지 말자는 건가. 온실가스 제2의 주범이 메탄이고, 그 메탄이 소의 트림과 방귀에서 나온다는 건 이제 웬만하면 다 아는 상식이 됐으니 경계심이 들만도 하다. 하지만 안심(?)하시라. 비록 저자는 “우연히 읽은 책의 영향으로” 더는 고기를 먹지 않게 됐지만, 채식을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제시하진 않는다. 그럼 소 말고 돼지고기만 먹으란 건가? 그 또한 아니다. 돼지의 똥오줌과 이를 저장·처리하는 과정에서도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와 돼지는 잘못이 없다. 다만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오늘날 전 세계에는 1960년대보다 1.6배 많은 소가 있다.” 2020년 우리 국민 1인당 쇠고기 소비량은 13kg으로 1990년(4.1kg)의 3배가 넘는다. 돼지는 국민 네댓 명 당 한 마리꼴로 키워지고 있다. 이 많은 소와 돼지를 먹이는 사료를 생산하는 데도 많은 에너지가 든다.


자, 그럼 채식을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갈면(경운) 땅속에 저장돼 있던 탄소가 대기로 날아가고, 물을 댄 논에선 혐기성 미생물의 활동으로 메탄 등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논밭에 뿌려지는 화학비료와 농약은 또 어떤가. 비료는 제조할 때도 많은 에너지를 잡아먹지만, 뿌리는 것만으로도 온실가스를 발생시킨다. 게다가 우리 농어촌의 흔한 풍경인 수많은 비닐하우스와 양식장들은 값싸게 공급되는 전기와 면세유 없인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어쩌라고?” 저자 역시 책을 쓰면서 수 없이 되물은 질문이다. 책에는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몇 가지 개별적인 사례가 소개돼 있는데 당장 궁금한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천이다.


우선, 식단에서 고기의 비중을 줄이자. “‘기후변화가 소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과장이지만, ‘육식을 줄이면 기후변화를 늦출 수 있다’는 사실이다.” 못생겼지만 비료와 농약을 덜 쓴 식재료를 사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무엇보다 ‘시민’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은 “바로 저탄소 밥상을 차릴 수 있도록 정책을 요구하는 일”이다. 저자는 “소비자로서 저탄소 먹거리를 고르고, 시민으로서 탄소를 줄이는 시스템을 요구하는 것, 그 두 가지가 탄소를 발생시키는 ‘탄소로운 식탁’을 바꿀 것”이라며 “이제 잘 먹고, 잘 요구하자”고 제안한다.


우리의 한 끼가 지구의 1도를 낮출 수 있다는 명료한 해법에도 시큰둥해할 이들을 향해서 저자는 책 속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지구의 미래’를 위해 온실가스를 감축하자고 말한다. 착각이다. 기후변화로 위기를 맞는 건 지구가 아니라 우리다. 지구는 불구덩이처럼 뜨거울 때도, 얼음처럼 차가울 때도 끄떡없었다. (중략) 지구를 죽이고 살린다는 거만한 표현은 넣어두고 이렇게 말하자. 우리는 자살골을 넣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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