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 그리 쉽게 지워지나요, 왜 일은 갑절로 늘어나나요

[이슈 추적] 경향·한겨레·한국 기자들 '신문·디지털 제작분리' 겪어보니
기자 업무, 디지털 중심으로 변했지만
'콘텐츠 품질·인프라' 과제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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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현장 소식을 디지털로 먼저 내보내는 것이 일상화됐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취재 기자들은 지면 기사만 썼다. 이런 뉴스 제작 방식이 바뀐 것은 디지털 전환이 언론사 화두로 떠오르면서다. 2019년 중앙일보를 시작으로 1~2년 전 한국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등이 기사를 디지털에 먼저 내보내고 이 기사들 일부로 지면을 만드는 디지털 퍼스트를 시도했다.


신문에 매달려온 관행을 바꾸는 작업이 취재, 기사 작성 등 제작 공정 전반으로 이어졌고, 그 현상은 ‘콘텐츠 생산·신문 제작 분리’(이하 제작 분리)로 나타났다. 편집국 인력은 신문 마감에 구애받지 않고 디지털 기사·콘텐츠 생산을 담당하고, 지면 제작을 전담하는 조직은 따로 두는 방식이었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이 시도는 단순한 공정 분리 차원을 넘어섰다. 취재 일선에 있는 기자들부터 데스크, 국장단까지 편집국 구성원 모두가 수십 년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취재·근무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작업이었다. 디지털 전환의 흐름에 합류하지 않으면 독자와 만날 수 없고 궁극적으로 언론사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판단도 깔려 있었다.


그래서인지 제작 분리를 시작하는 신문사들에겐 비장함마저 엿보였다. 지난 2020년 6월 한국일보는 신문 중심에서 온라인 중심 조직으로의 전환을 선언하며 데스크와 기자들에게 “머리에서 ‘신문’을 지우라”고 주문했다. 한겨레는 지난해 3월 뉴스레터를 통해 독자들에게 조직개편 소식을 전하며 “그동안 신문이란 그릇 안에서 적잖이 보였던, 우리만 중요하다고 여기는 기사 또는 가르치는 기사를 벗어나겠다는 관점의 전환을 포함한 뜻”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7월 조직개편을 앞두고 나온 경향신문 미래전략위원회의 디지털 전환 보고서에선 “여러 차례 시도를 해왔지만 다시 지면의 자장 속으로 끌려 들어오는 일이 반복됐다”며 “벗어날 수 없다면 아예 장벽을 치겠다는 의지”라고 제작 분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로부터 1년, 많게는 2년이 지났다. 신문사 구성원들은 디지털 중심으로 한 콘텐츠 생산 시스템에 어떻게 적응해나가고 있을까. 시행 초기 기사량 증가에 따른 취재 기자들의 업무 부담, 신문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존재했지만, 어느덧 조직 내부에 디지털 마인드가 조금씩 뿌리를 내렸다. “못할 것도 없다” “적응은 어렵지만 지속해야 한다” 등 디지털 참여에 적극적인 기자들도 늘어났다. 타 신문사에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을 정도로 제작 분리는 디지털 전략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기자·데스크 사이에선 아직도 ‘머릿속에서 신문 지우기’가 쉽지 않은 뉴스룸 환경과 과중해진 업무를 토로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출고 기사량은 늘었는데, 품질이 받쳐주지 못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취재 기자들에게 가해지는 여전한 지면 기사 부담, 데스킹 부실, 디지털 시스템 미비 등이 겹치면서 경쟁력 있는 디지털 전환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동안 제작 분리를 시행한 신문사에서 뉴스룸국·신문국 사이 소통을 위한 직책을 만들(한국일보)거나 지면 제작 인력을 편집국 부서에 소속(한겨레)시키는 등 여러 차례 조정과 시행착오를 겪었다. 제작 분리 시스템이 안착하긴 위해선 몇 가지 선행 조건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에디터부문제 폐지한 한겨레
지난 5월 한겨레에선 새 인사 및 조직개편이 이뤄졌다. 지면 제작을 전담하는 에디터 명칭을 데스크로 바꾸고, 대체로 연차를 낮춰 편집국 부서 안으로 배치해 부서장 지휘를 받도록 했다. 부문장과 에디터 7명이 신문 제작에 집중하는 에디터부문제를 1년여 만에 폐지한 것이다. 류이근 편집국장은 “디지털 공정으로 전환은 맞고, 불가피하다”며 “에디터부문제 폐지는 언뜻 보면 디지털 전환을 후퇴시킨 것처럼 보일 수는 있겠지만, 무얼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류 국장은 “편집국 내 섬처럼 존재하는 에디터 자리에 시니어 기자들이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가까이 일을 하는데 누구도 와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며 “에디터들이 오리지널 콘텐츠를 변형하고, 가공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지면 기사에 대한 현장 기자들 반발도 있었고, 부서장과 이슈와 현안에 대한 생각이 달라 의사결정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에디터제 폐지로) 그런 리스크가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부서장이 참여하는 ‘편집위원회 회의’와 신문 제작 전담 데스크, 신문총괄 등이 참석하는 ‘지면회의’는 기존과 같이 별개로 진행 중이다. 공정 분리는 그대로 유지하되 데스크들이 부서 안에서 함께 호흡을 맞춰 일한다는 취지이지만, 현장 기자들은 신문제작중심으로 돌아갔다고 체감한다. A 한겨레 기자는 “사실상 부장이 총 권한을 갖게 되면서 지면 중심 논리가 굉장히 강해졌다”며 “아예 처음부터 부장이 지면 분량에 맞춰 지시를 내리니 기자들은 더 쓸 수 있어도 안 쓰고 말아버린다. 공급자 중심의 기사들로 전환되고 있다”고 말했다.


B 한겨레 부장은 “디지털과 지면 두 가지 일을 다 해야 하는 상황이고, 시간도 충분치 않아 디지털보다 지면 기사를 중심으로 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확실히 어느 쪽에 방향을 둘지 리더들이 선택하고 가면 될 일인데 판단이 명확하지 않으니 혼선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라며 “(폐지 당시) 기자들이 어떻게 하느냐고 문의해 신문에 크게 신경 쓰지 말라고 얘긴 했지만, 지면에 펼쳐야 하는 중요 기사는 미리 현장 기자와 상의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한국일보, 부문장 통해 국간 소통
제작 분리가 디지털 전환의 목적 그 자체는 아니다. 지면 중심 공정에서 억지로라도 벗어나 현장 기자와 데스크들이 디지털 문법에 체화된 콘텐츠를 생산하는 게 취지였다. 한겨레 사례에서 보듯, 콘텐츠 생산과 신문 제작 사이의 잡음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지난 2020년 7월 뉴스룸국과 신문국으로 편집국을 이원화한 한국일보는 국간 가교를 담당하는 부문장(부국장급)을 각 국마다 배치해 소통 단절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있다. 부문장들은 뉴스룸국 기사 변동사항을 신문국에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오후 6시 이후 신문국 지면 배치안을 뉴스룸국 부장들에게 공유하고 있다. “기사의 ‘야마’(주제)를 신문국에서 바꾸는 건 안 되고, 기사를 줄이는 것만 하자”는 내부 가이드라인도 만들어진 상태다.


기자들이 지면에 실린 기사를 확인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매일 야근자가 사내에서만 접근할 수 있는 웹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통해 지면 편집 상황을 메신저로 공유하고, 기자들의 수정·요구사항을 모아 신문국 야간 국장에게 전달하는 절차를 거친다. C 한국일보 부장은 “신문국은 기자들 의견을 반영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며 “뉴스룸국은 의견을 줬다는 기록을 남긴 거고, 만약 지면 기사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 소지도 분명히 가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내부에선 지면 중심 기사 생산 때보다 저하된 콘텐츠 품질 문제가 고민이다. 온라인 기사량은 늘었지만, 그만큼 산발적인 보도가 많아지면서 입체적이고, 완결성 있는 보도가 줄었다는 분석이다. 그 대안으로 기획에 집중하는 산업2부를 신설하고 커넥트팀, 어젠다기획부 등 별도 팀을 통해 차별화된 기사를 늘리고 있지만, 출입처에서 실시간 보도를 하는 부서 기자들은 여전히 어려운 환경이다.


박일근 한국일보 신문국장은 “예전엔 지면이라는 최종 제품을 만들기 위해 데스크와 현장 기자들이 논의를 많이 하면서 기사를 만들어냈지만, 지금은 바로 디지털에 나가고 있어 정보량이 많지 않은 기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영향력과 신뢰도를 같이 올리려면 질 높은 기사가 필요하다. 짧은 시간 안에 독자들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해주는 게 남아있는 숙제”라고 말했다.


온라인 중심 개편 2년이 지난 현재, 스트레이트 부서 기자들 중심으로 업무 과중과 지면용 기사 이중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D 한국일보 기자는 “써야 하는 기사가 늘어났다는 것 외에 일하는 데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며 “온라인에 새로운 기사를 매번 써내야 하고, 그런 기사들이 지면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의 퀄리티라고 느껴지면 지면용 기사를 또 써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회사에선 기사 분량에 구애받지 말고 다양한 툴을 활용해 시각화에 도전해보라고 했다”면서 “분량이 많아도 알아서 신문에 맞춰야 하는데 발제한 것보다 분량이 늘어나면 데스크가 뭐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제작 분리 시스템 안착 목표
지난해 7월 편집국과 별도로 지면 제작만을 전담하는 신문국을 신설한 경향신문은 현재 시스템 안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문국장 아래 7명의 에디터들이 지면을 제작하는 방식은 한국일보와 비슷하다. 두 신문사 모두 편집국장이 신문국 회의에 참석하진 않지만, 그날의 콘텐츠들을 파악하기 위해 신문국장이 편집국 오전 회의에 참석한다.


김광호 경향신문 편집국장은 “편집회의에선 콘텐츠 하나하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됐다. 하나의 사안이 발생했을 때 여러 요소가 있을텐데 다 묶어서 나가거나 각각의 제목으로 나가는 게 좋겠다는 식의 논의”라며 “콘텐츠 출고 시점 이야기도 이뤄지다 보니 예전보다 회의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는 변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1년 간 경향신문 기자들은 오전 업무보고에서 기사 분량과 함께 마감 시간을 적고, 지면 계획표 대신 매일 주요·일반 기사를 선별한 표를 받는 등 제작 분리 시스템에 적응하고 있다. 다만 모든 발제가 ‘킬’ 없이 온라인 기사로 나가면서 처리해야 하는 기사수가 많아졌다. 그만큼 데스크가 봐야 하는 기사도 폭증하면서 기사 품질이 떨어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E 경향신문 기자는 인하대생 사망 사건 초기 보도 당시 경향신문이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내보내 독자들의 질타를 받은 사례를 들었다.


E 기자는 “부장들이 데스킹을 꼼꼼하게 못 보는 게 제일 문제다. 기자도 하루에 1~2개 쓰던 게 4~5개로 늘어서 허덕이는데 부서 전체적으로는 부장이 봐야 하는 기사가 40~50개 정도 된다”며 “단독이나 기획은 출고 전에 부장이 먼저 보지만, 짧은 기사들은 기자들이 알아서 송고한다. 기자가 출고하기 전 인하대 사건 기사를 누구 한 명이라도 먼저 봤다면 그런 일은 없지 않았을까 아쉽다”고 말했다.

◇제작 분리 지속 위해 데스크의 새로운 역할 필요
신문·디지털 제작 분리를 경험한 기자들은 디지털 환경에 적응했을까. 대체로 기자 업무의 중심이 디지털로 바뀌는 등 디지털 대응 능력은 향상됐다. 하지만 오전 시간대 기사, 속보 등을 요구받으면서 ‘우리만의 시각을 가진 디지털 콘텐츠’ ‘디지털 문법에 맞는 가독성 있는 기사’는 기자 개인기에만 의존하는 실정이다. 기자들의 디지털 효능감을 높일 수 있도록 데스크, 국장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A 한겨레 기자는 “데스크, 국장은 이 기사가 지면에 들어가면 좋을지, 디지털로 잘 팔릴 만한지를 구분하는 눈이 없다”며 “예를 들어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터지면 한겨레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니 바로 어젠다를 잡아주고 빠르고, 똘똘한 기사를 쓰도록 이끌어야 하는 게 국장과 부장이어야 한다. 그런데 부서 간 장벽이 높다 보니 단타 정도만 논의하고 있는 정도”라고 토로했다. 이어 “젊고, 현장 취재 능력이 있고, 이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데스크가 돼야 한다. 지금 리더라는 부장들은 현장 취재와 괴리돼 있거나 디지털 감각이 없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덧붙였다.


C 한국일보 부장은 “기사 꼭지 수나 업무량이 많아질 수밖에 없을 거다. 업무량으로만 비교할지, 기자 업무의 만족도까지 같이 볼 건지는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제 역할은 어떤 방식으로든 온라인에 기사를 소화할 수 있게 유도하고 제안하는 것”이라며 “발제 단계부터 부서원과 소통을 통해 거를 만한 보도자료는 거르고, 오늘 기사 처리를 안 해도 뒷이야기까지 취재해 다음날 오전에 기사를 내보는 식의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했다.


통합 CMS가 갖춰진 상태에서 신문과 디지털 제작 분리가 이뤄져야 기자들의 혼선이 덜 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일보는 지난 2020년 6월 새 CMS 허브(HERB)를 개발에 맞춰 제작 분리 조직개편을 함께 단행했고, 경향신문은 지난달 새 통합CMS를 전체 구성원에게 도입했다. B 부장은 “한겨레 CMS(하니허브)가 8~9년 전에 만들어졌다. 지면 따로, 디지털 따로 기사를 올려야 해 비효율적인 상황”이라며 “디지털로 가는 건 불가피한 일인데 돈이 들어도 시스템을 갖추고 제작 분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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