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교 30년… 시험대 오른 한중 외교

[글로벌 리포트 | 중국] 유지영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

유지영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

한중 수교는 세계 외교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관계 개선의 모범 사례’로 평가된다. 한국전쟁(1950~1953) 당시 총부리를 겨눈 두 나라는 1992년 북한과 대만의 반대를 무릅쓰고 ‘친구’가 돼 인적·물적 교류를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 미국의 도움으로 후진국의 굴레에서 벗어난 한국은 중국과의 수교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베이징도 많은 것을 얻었다. 1989년 톈안먼 사태로 야기된 서구세계의 제재를 약화시켜 개혁개방에 속도를 낼 수 있었고, 한국의 앞선 기술과 마케팅을 흡수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자국 기업을 대거 키워냈다. 이는 중국이 세계 양대강국(G2) 반열에 오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두 나라의 관계는 정말 뜨거웠다.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는 우리나라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연배우 김수현을 언급했다. 이듬해 박근혜 전 대통령은 미국의 우려를 뒤로하고 중국 항일전승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했다. 이때만 해도 한중의 밀월은 영원할 것 같았다.


그러나 북한의 핵 도발로 2017년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중국 당국이 비공식적으로 한한령(한류 금지령)을 내려 한국 연예인들의 공연은 자취를 감췄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은 시장 점유율을 잃었고, 현대기아차 역시 판매량이 급감했다. 미군에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는 중국에서 쫓겨났다. 이때부터 한중 양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가 됐다.


문재인 정부의 대중 외교 기조는 한 마디로 ‘기승전 시진핑’이었다. 시 주석의 한국 방문만 성사시키면 사드 배치 이후 생겨난 갈등을 일거에 해소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혼자’ 생각했다. ‘한반도에서 사드를 철수하기 전까지 두 나라가 다시 가까워지기는 힘들 것’이라는 베이징 주류의 시각과 크게 달랐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한국을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듯한 베이징의 태도를 참아가며 시 주석의 방한을 성사시키려고 애썼다. 결과적으로 양국 관계를 풀지도 못했고 ‘굴욕 외교’ 논란만 가중시켰다. ‘게도 구럭도 다 잃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윤석열 정부는 아예 대놓고 문재인 정부와 반대로 가려는 것 같다. ‘우리는 중국에 기대하는 것이 없다. 베이징도 우리에게 뭔가를 바라지 마라’는 분위기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지난 20년간 한국이 누려 온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며 “중국의 대안 시장이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도 ‘사드 3불’(사드 추가 배치 금지,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한미일 군사동맹 가입 금지)에 대해 “우리가 중국하고 약속하거나 합의한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베이징에 살면서 윤석열 정부 이후 한중 관계가 더 나빠졌음을 체감한다. 최근 알게 된 한인 대학생은 평소 자주 찾던 편의점에서 한국 과자들이 한꺼번에 사라져 놀랐다고 한다. 주인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의 새 정부가 우리를 적대시해 기분이 나빠서 치웠다”는 답을 들었다. 기자가 종종 들르는 한인 상점 사장도 “요즘 이웃 상인들의 민원 때문에 영업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예전 같으면 장사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눈감아 주던 사소한 법 위반조차 모두 당국에 신고돼 수시로 단속 공무원이 출동하기 때문이란다. 유독 자신에게 민원 폭탄이 쏟아지는 것은 ‘한국인이기 때문’이라고 하소연했다. 정치인들의 대중 강경 발언 하나하나가 우리 교민들에게 뼈 아픈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올해는 한중 수교 30년을 맞는 해다. 동시에 윤석열 정부가 선언한 ‘관계 재설정’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는 한국의 외교가 철저히 실리에 기반해야 한다’는 교훈을 일깨워준다. ‘용미용중(用美用中)의 영리한 외교’야말로 수교 30년을 맞은 올해 우리나라가 반드시 달성해야 할 대중국 과제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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