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논의 없는 'KBS 수신료 폐지론'… 정치 수단 전락하나

여당, 프랑스식 폐지 또는 전기요금서 떼어낸 자율납부로의 변경 주장
KBS "세금 등 강제성 높은 공적 재원 유형으로 전환되는 점 간과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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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수신료 폐지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KBS 보도는 좌편향적’이라고 규정한 여권이 보도 공정성 시비를 막을 방안으로 수신료 폐지, 수신료·전기요금 분리 징수를 내세우고 있어서다. 여권 주장대로 수신료는 공영방송 체제 재정립과 직결되는 문제지만, 정치권이 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 없이 수신료 폐지나 축소를 정치적 압박 수단으로 사용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최근 KBS 수신료 문제가 정치권 이슈로 떠오른 계기는 프랑스 하원의 공영방송 수신료 폐지법안 통과다. 현지시간 지난달 23일 프랑스 하원은 TV를 설치한 2300만여 가구를 대상으로 징수해온 공영방송 수신료 연간 138유로(약 18만원)를 폐지하는 법안을 찬성 170표, 반대 57표로 통과시켜 상원으로 넘겼다. 수신료 폐지로 공영방송이 입는 손실은 정부가 2025년까지 다른 부문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세로 충당하기로 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 박성중 의원이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영언론 블랙리스트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여당인 국민의힘 내 미디어특별위원회는 프랑스 사례처럼 우리나라도 KBS 수신료를 폐지하거나, 현재 전기요금에 합산해 징수하는 방식을 자율납부제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디어특위는 지난달 24일 발표한 성명에서 “공영방송의 공정성 시비와 방만 경영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공영방송 체제 재정립은 KBS 수신료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른다”며 “(수신료 폐지 또는 자율납부제 도입 논의를 시작하면) 공정성 시비를 일으키는 좌편향적 보도는 상당히 사라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


여당 의원의 동조 발언도 이어졌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박성중 의원은 지난달 2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KBS 편파방송은 공영방송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채 국민 수신료를 도둑질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수신료 분리 징수안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튿날 국회 대정부질문에 참석한 한덕수 국무총리도 “(KBS 수신료를 전기요금에 붙여 징수하는 방식은) 일종의 편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혀 여당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 자리에서 박성중 의원은 프랑스뿐 아니라 수신료를 폐지한 네덜란드와 이스라엘, 10% 인하한 일본, 2028년 수신료 폐지를 검토 중인 영국 사례를 들어 KBS 수신료 분리 징수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KBS는 박 의원이 언급한 해외 수신료 폐지 배경이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했다. KBS는 지난달 28일 설명자료를 내고 “세계 공영방송사들이 재원모델을 변화하는 과정에서의 수신료 폐지는 자율 납부가 아닌 세금 등 보다 강제성이 높은 공적 재원 유형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BS는 “유럽 47개국 64개 공영방송사의 재원 유형은 공적재원이 79%, 상업 및 기타재원이 21%이며 이중 20개국의 공영방송은 여전히 수신료로 운영되고 있다”며 “이런 해외 사례를 볼 때 박 의원은 관련 국내 기사에 대한 사실 여부나 맥락을 확인하지 않았거나 KBS에 대한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KBS로선 1981년 이후 월 2500원에 묶여있는 수신료를 올리는 것은 해묵은, 그러나 현재 진행형인 과제다. 지난해 KBS 이사회를 거쳐 방송통신위원회가 수신료를 월 3800원으로 52% 인상하는 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실제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여당이 된 국민의힘은 해외 사례를 근거로 수신료를 손보겠다고 하지만 ‘KBS에 정치적 압력을 가한다’는 시선을 피하긴 어렵다.


KBS 수신료를 둘러싸고 논란이 재점화한 상황에서, 국민의힘과 KBS가 각각 근거로 내세우는 해외 사례는 실질적인 논의에는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영방송이라도 나라마다, 방송사마다 환경과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타국 사례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김위근 퍼블리시 최고연구책임자는 “공영방송의 역사, 제도, 법, 정책, 인식 등이 전혀 다른 현실에서 반복되는 해외 사례 도입 주장은 피상적이고 한정적”이라며 “우리 공영방송 수신료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후 체계화하는 작업이 늦었지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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