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ESG 경영 기사들, 언론사·미디어 기업 현주소는

[언론과 ESG 경영]
넷플릭스·BBC 등 앞다퉈 'ESG 실천'
기업들 평가하기 급급한 국내 언론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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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경영’이 그야말로 대세다. ESG는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로 기업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고려해야 할 비재무적 요소를 뜻한다. 코로나19 전에도 기업의 경영 트렌드로 각광 받았던 ESG는 팬데믹과 기후위기를 겪으면서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제48회 상공의 날 기념사’에서 ESG를 “따뜻한 자본주의”로 지칭하며 “올해(2021년)를 ‘모두를 위한 기업 정신과 ESG 경영’ 확산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제 국내 대기업과 공기업 중에서도 ESG 경영에 나서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언론 보도에서도 ESG 열풍이 확인된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에서 ‘ESG 경영’을 검색해보니 2020년만 해도 2900여건에 불과했던 기사 수가 2021년 10배에 달하는 2만9000여건으로 껑충 뛰었다. 종합지와 경제지를 막론하고 ESG 경영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기획·심층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언론사가 개최하는 행사에서도 ESG란 이름이 여기저기 등장했다. 경제 매체들을 중심으로 ‘ESG 포럼’ 개최가 유행처럼 번졌고, 각종 세미나, 시상식 등도 열렸다. 말하자면 ESG 경영이 언론매체 수익 사업의 일환이 된 것이다.


최근 들어선 ESG 열풍을 냉정하게 보는 시각들도 있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ESG는 사기”라고 일갈한 것을 비롯해 ‘ESG 워싱’, ‘ESG 투자 위기론’ 같은 부정적인 시각과 전망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전쟁은 전 세계 경제와 금융, 무역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에너지 위기는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하는 흐름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ESG 경영이 화두이며, 큰 틀에서 방향성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미 ‘돈쭐내다’(‘돈’과 ‘혼쭐내다’의 합성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착한소비’, ‘가치소비’가 MZ세대의 트렌드로 부상하는 등 ESG 경영이 기업에도 이득이 되는,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한 자본의 생존전략이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론사를 비롯한 미디어 기업들은 ESG 경영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을까. 언론이 ESG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만큼 스스로도 ESG 경영을 잘 실천하고 있을까.

글로벌 미디어 기업인 넷플릭스는 2019년부터 매년 ESG 보고서를 내고 있다.


◇구독자·후원자 모으는 언론, ESG 경영에 눈 떠야
해외 미디어 기업 중엔 ESG 경영을 실천 중인 곳이 많다. 대표적인 게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2019년부터 ESG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는데, 단순히 자신들의 활동을 알리는 수준이 아니라 목표치와 얼마만큼 달성했는지 등을 구체적인 자료로 밝힌다. 온실가스 배출량, 인종·성별 등 고용 다양성과 소수자의 미디어 재현, 개인정보 보호 등의 다양한 이슈가 포함된다. 지난해 3월엔 지속가능성을 모토로 ‘탄소 순 배출 제로, 이제 다시 자연으로(Net Zero+Nature)’ 계획을 발표했다.


언론사 기업 중에선 BBC가 독보적이다. 따로 ESG 보고서를 발간하는 건 아니지만 지속 가능한 환경과 다양성·포용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프로그램 제작 시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친환경 제작 기준을 만들고, 탄소발자국 계산기를 개발해 적용하고 있다. 또한 ‘5050 평등 프로젝트’를 통해 모든 출연진과 제작진의 남녀 성비를 같게 하는 노력을 진행 중이며, 전체 직원의 20%를 소수 인종으로, 12%를 장애인으로 고용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2017년 임직원의 성별 임금 격차로 논란을 빚었던 BBC는 출연진의 성평등 실현을 위해 남녀 성비를 50:50으로 맞추는 평등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국내 미디어 기업 중에선 CJ ENM의 행보가 눈에 띈다. CJ ENM은 지난해 12월 첫 ESG 리포트 ‘콘텐츠와 커머스, 선한 영향력의 시작’을 발간했다. ESG 철학을 ‘Planet, People, Business’ 세 분야로 정의하며 친환경 MD 제작, 사내 소통 프로그램 시행, 선한 영향력을 전달하는 콘텐츠 제작 노력 등을 담았다. 네이버와 카카오도 지난해 ESG 보고서를 나란히 공개하며 환경 문제와 사회책임에 대한 구성원의 인식과 실천, 파트너와의 공정한 거래와 협업, 이용자 보호, 지역공동체와의 협력 등을 담은 ESG 이슈 평가지표를 발표했다.

◇선택 아닌 필수라는 ESG 경영, 정작 언론사는 ‘…’
그러나 언론사 중에 ESG 경영에 나선 곳은 거의 없다. 경제지 등 일부 매체들은 포럼, 컨퍼런스 등 다양한 ESG 관련 행사를 개최하고, 기업의 ESG 활동을 평가해 시상하는 등 ‘평가자’를 자처하기도 하지만, 정작 자신의 ESG 실천에 대해선 무관심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이 단순히 ESG를 돈벌이 수단의 하나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언론사 스스로 ESG 경영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ESG의 중요성을 설파한들 진정성이 통할 수 있을까. 한국광고주협회가 지난해 5월 국내 200대 기업 광고·홍보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벌인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90%가 언론의 ESG 관련 기사나 행사 개최가 기업의 ESG 전략 수립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55.3%)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34.0%)고 답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글로벌 콘텐츠 기업을 지향하는 CJ ENM은 지난해 첫 ESG 보고서를 냈다.


ESG 경영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언론사도 일부 있다. 한겨레는 지난해 8월부터 ESG 경영 논의를 본격화했다. 그동안 실천해왔던 CSR(기업의 사회적책임) 경영을 ESG 기준에 맞춰 점검해 경영원칙으로 정립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한겨레는 국민주 신문이란 특성상 거버넌스(G) 면에서 타 언론사와 차별화된 위치에 있다. 또한, 환경(E) 면에선 국내 언론사 최초로 기후변화팀을 편집국 내에 신설했고, 종이 낭비 등을 막기 위해 2020년부터 유료부수에 맞춰 발행 부수를 대폭 줄여왔다. 사회(S) 면에서도 비정규직 고용을 지양하고, 채용 시엔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등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


MBC도 지난해 ESG 경영의 첫걸음을 뗐다. 박성제 사장은 지난해 창사 60주년 기념식에서 “ESG 경영에 적극 참여하겠다”면서 “친환경 전기차 도입은 환경 문제와 미래 가치를 선도하는 방송사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MBC는 오는 2023년까지 본사의 업무용 차량 56대를 모두 친환경 전기차로 바꿀 계획이다.


KBS는 아직 명확한 ESG 경영 계획을 수립하진 않았지만 “방송법과 정관에 따라 ESG 경영과 관련된 내용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수행하는 다양한 활동이 ESG 경영과 무관치는 않다. 경영평가보고서에서 여성과 장애인 고용 비율 등을 공개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그러나 KBS를 비롯한 국내 미디어 기업들의 활동은 대부분 ESG 경영이나 사회적 책임경영보다는 ‘사회공헌활동’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형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난달 22일 한국언론학회와 방송문화진흥회 공동 주최로 열린 ‘공영방송과 미디어 기업의 다양성’ 토론회에서 “해외 미디어 기업들은 내부부터 변화시키는 사회적 책임경영(CSR)을 실천하려 하는 반면, 우리나라 미디어 기업들은 공익 캠페인이나 자선활동같이 인적·물적 자원의 사회적 환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ESG 경영 컨설팅 전문가인 김용희 오픈루트 전문위원은 “ESG는 기업이 하는 모든 활동을 E,S,G로 재정의한 것이지 사회공헌활동의 확장판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배진아 공주대 교수는 “외부에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닌 내부 종사자들의 변화를 통해 우리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조직으로 거듭나는 것이 미디어 기업이 추구해야 할 ESG 경영의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ESG 경영은 기업 스스로의 쇄신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언론은 변화와 쇄신이 가장 더딘 집단 중 하나다. 사회와 크게 동떨어진 뉴스룸의 인적 구성과 경직된 조직문화가 대표적이다. 최근 몇 년간 미국과 유럽 언론사 뉴스룸에선 다양성·공정성·포용성(DEI)을 실천하는 게 트렌드로 자리 잡았으나, 우리 언론과는 먼 얘기다. 그나마 여성 기자 비율은 꾸준히 늘어 30%대까지 올라왔지만, 장애인 기자는 거의 없고, 뉴스룸 요직은 특정 연령대와 성별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 현실이다. 김선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은 “언론인의 출신 지역, 출신 대학 등에서 다양성을 확보하고 이를 매년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BBC, 뉴욕타임스같이 기자만 1000명이 넘는 조직에선 다양성을 고려해 일정 정도 인구비율을 반영할 수 있지만, 중소 규모 뉴스룸에 이를 기계적으로 적용하기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다양성이 당장 수익에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다. 박영흠 언론재단 연구위원은 “장기적 생존을 위해선 다양성이 꼭 필요한데, 단기적 생존에는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언론 스스로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주창하는, 기업의 생존전략으로서의 ESG 역시 마찬가지다. ESG 경영은 자본 유치와 무관치 않다. 투자자들이 ESG 지표를 준거로 투자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변화 대응’, ‘인권경영’ 등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자본 유치 등의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일반 기업과 달리 언론사는 ESG 경영으로 얻을 편익이 없다. 김세환 동국대학교 교수는 지난 6월 ‘방송사의 사회적 책무로서 ESG 경영의 의미와 과제’ 세미나에서 “ESG 경영을 하면 불가피하게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로 인해 얻을 이득은 아직까진 모호하고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김 교수는 “최소한의 의무화가 필요하다”며 “이런 규정이 있다면 반대급부로 ESG 경영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언론사의 가장 중요한 ESG는 ‘신뢰’
ESG 경영은 미디어 기업의 숙명적 과제라는 주장도 있다. 우형진 교수는 “미디어는 우리 사회에 발생할 위험을 미리 파악하고 경각심을 울리는 환경감시 기능과 특정 목표와 사회적 가치를 위해 모든 사람이 매진하도록 하는 동원 기능을 한다”며 “공영방송이든 아니든 공적책무가 있으므로 미디어는 ESG 달성에 최적화돼 있다”고 말했다.


언론의 자산인 신뢰를 확보하려는 방안으로서도 ESG는 중요하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은 “언론이 갖는 공익성과 사회적 책임이 있기 때문에 신뢰받는 언론, 신뢰받는 저널리즘을 어떻게 만들어가는가가 언론사의 제일 중요한 ESG”라고 말했다. 한겨레가 후원제를 도입하면서 ESG 경영을 선언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언론사로선 후원자 또는 구독자가 곧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뉴스룸의 조직문화가 얼마나 민주적인지, 발행 부수를 부풀리기 위해 폐지가 될 신문을 찍어내며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진 않은지, 클릭수만 노린 기사를 쏟아내며 디지털 탄소발자국을 늘리는 동시에 내부 구성원과 독자를 함께 잃고 있진 않은지 등이 모두 언론사의 ESG 지표가 될 수 있다. 이 원장은 “ESG는 바른 기업이 되라는 거고 그 사명을 충실히 이행할 때 투자자도 만족하고 언론은 후원자, 독자로부터 피드백을 받게 된다”며 “언론은 조직의 동료들이 스스로 만족하고 자발적으로 일할 때 성과를 낼 수 있는 조직이다. 경영이 바른길로 가고 있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구성원들이 느끼도록 해서 직원이 만족하고 구독자와 후원자도 만족해 전반적으로 선순환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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