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만큼은 아니라도 최선 다하겠다는, 그 말을 하고 싶었죠"

[인터뷰] 6년째 위탁아동 돌보는 이충원 연합뉴스 DB센터부장

  • 페이스북
  • 트위치

이충원 연합뉴스 DB센터부장 집엔 6년째 아기가 있다. 흔히 우리가 아는 ‘위탁모’, 즉 입양 전 위탁가정 활동을 해서다. 보통 생후 1~2개월의 아기들이 온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2년을 돌보다 보낸다. 그렇게 ‘토실이(호칭)’와 ‘힝순이’가 각각 20개월씩 머물다 노르웨이 가정에 입양됐다. 현재 맡은 ‘깔끔이’는 19개월을 보살폈고 연말까지 2년을 함께할 예정이다. 그는 “아이가 떠나면 집이 동굴 같아지는데 첫 아기가 가고 그랬다. 둘째가 올 때까지 한두달이 걸렸는데 나중엔 홀트아동복지회에 ‘아기를 좀 빨리 달라’고 애원할 정도가 되더라. 보통 위탁모들이 그런다는데 우리도 그랬다”고 했다.

이충원 연합뉴스 DB센터부장(오른쪽)과 아내 김명희 씨는 2017년부터 입양 전 위탁가정 활동을 해오고 있다. 사진은 부부가 지난해 5월 세 번째 위탁아동 ‘깔끔이’와 충북 단양 나들이 중 찍었다. /이충원 제공


시작은 아내 김명희씨의 뜻이었다. 2017년 고등학생이던 아들이 캐나다로 유학을 갔고, 그쯤 아내가 ‘위탁모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고3이 된 딸이 신경 쓰였지만 40대 후반 기자 남편은 아내에게 “싫다는 말을 하기가 그래서 한번 해보라”고 했다. 그간 장만한 유모차만 세 대, “아기들은 사람 홀리는 재주를 갖고 태어나는구나” 싶지만 육아가 쉬울 리는 없다. 퇴근 후나 주말 “어야 갈까?(놀러 나갈까)”하면 아기가 옷과 양말을 들고 아장아장 걸어온다. 잠시나마 아내와 아기를 떼놓고, 분리수거 등 집안일을 거드는, 보조 역할이 그의 일이다. “와이프 지분이 99%다. 제가 하는 큰 일은 페이스북에 ‘위탁모 일기’를 쓰는 거다. 와이프가 엄청 좋아해서 누가 ‘좋아요’를 눌렀고, 어떤 댓글이 달렸는지 꼼꼼히 본다. 사람들 반응이 과장됐다고 느껴질 정도로 커서 함께 놀란다. 엄마들한테 물어보니 육아할 때 호응 없는 게 제일 답답하대서 자신을 돌아볼 때도 있다.”


아기가 오고 그는 많이 달라졌다. 일본 특파원을 지냈고 북한·일본 등 동북아 문제 전문가인 26년차 기자는 젊은 시절 “집에 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과음 후 집에 와 토하고 차려놓은 아침도 못 먹고 출근하기 일쑤였던 “너무 힘든 때”였다. 한번은 탈북자 인권을 취재하며 울다가 “세상에 이런 인권 투사가 없는데 집에선 가부장제의 화신”이란 핀잔도 들었다. “솔직히 아들, 딸이 어떻게 컸는지 잘 몰랐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육아를 옆에서 보니 수유 텀이 형성되는 100일까진 거의 잠을 못 자더라. 새삼 ‘아이는 저절로 크지 않는다’ 싶었다. 제가 아침에 약을 먹으려면 뭘 좀 먹어야 하는데 예전처럼 밥 차려달라고 하기 미안해 배달식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고 나온다. 부부 사이도 나도 많이 달라졌다.”


세상에 대한 관심 폭도 더 넓어졌다. ‘미혼모 무궁화호 아기 유기’, ‘정인이 사건’, ‘조유나 양 일가족’을 보며 예전과 다른 충격을 받았다. 근원적인 문제는 ‘가부장제’라 생각했다. “낳았으니 책임을 져야한다고만 생각했었다. 위탁가정 일을 해보니 육아의 모든 책임을 엄마에게만 묻는 사회에서 그런 요구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정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미국처럼 위탁가정에 맡겨 키우면 ‘육아 포기’가 ‘아이 살해’가 되진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 사건을 보며 ‘정 힘들면 아이를 죽이지 말고 저희에게라도 맡겨 달라. 친부모만큼은 못해도 최선을 다 하겠다’는 얘길 우리 부부는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회도 대안을 모색할 때라 본다.”


쉰을 넘은 1969·1970년생 부부는 이제 봉사 이상 차원으로 이 일을 받아들인다. 아내는 친권이 포기된 ‘입양 전 위탁모’ 활동에서 나아가 ‘학대아동 위탁모’를 하기 위해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차후 친권 있는 아동 위탁도 맡아보려 한다. 남편은 ‘위탁모 일기’를 책으로 쓸 예정이다. 퇴직 후 부부는 몇몇 가족, 친지와 함께 아이들을 돌보는 사회단체를 만들어 ‘사회적 엄마·아빠’가 되는 꿈을 요즘 꿔본다. ‘가부장제의 화신’이 “어야 갈까”를 하다 많이도 변했다. 그의 말대로 “아기는 힘이 세다.”

최승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