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건물 되면 좋은데 왜 반대하냐"는 서울신문 사장

[프레스센터 재건축 이슈 등 곽태헌 사장 단독 인터뷰]
호반 기사 삭제 건도 "내 소신, 떳떳하다" 거듭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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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헌 서울신문 사장은 지난 21일 본지 기자와 만나 사옥(한국프레스센터) 재건축과 우면동 호반파크로의 이전을 결정하게 된 배경 등에 대해 한 시간 가까이 설명했다. 인터뷰에 배석한 이호정 서울신문 상무이사도 거들었다. 서울신문 편집국 기자 56명은 지난 19일 공동성명에서 “사옥 이전 결정을 철회하고 구성원 전원을 대상으로 의견수렴부터 시작하라”고 요구했지만, 곽태헌 사장은 재건축과 사옥 이전은 의견수렴을 할 사안이 아니며, 경영적 판단 사항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기자들이 사옥 이전을 반대하는 건 “(자기들) 불편해서”라고도 재차 말했다. 사내 설득과 논의 과정이 부족하지 않았냐는 지적에는 이미 지난 10일 사내게시판에 직접 올린 글에서 충분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고 말했다.

기자 56명이 연명으로 성명을 낼 만큼 중대한 사안에 관해 곽태헌 사장 등 서울신문 경영진의 입장은 주로 사내게시판과 국·실장 회의로 전해졌다. 곽 사장이 직접 기자들과 만나거나 언론을 통해 이 문제를 얘기한 적은 없다. 기자협회보는 한 시간여 인터뷰 중에서 주요 논점과 발언들을 정리해 공유한다.

의견 듣지 않고 왜 일방적으로 추진하냐는데…

곽태헌 서울신문사 사장이 1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40회 교정대상 시상식'에서 인사말 하고 있다. (뉴시스)

곽 사장은 재건축과 사옥 이전은 “직원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할 게 아니라 경영진이 판단할 사안”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 정부 부처의 세종시 이전을 결정하고 MB정부 때 실행됐는데, 그때 공무원들의 의견을 들어봤나?”라고 말했다.

“그때 공기업들이 지방으로 갔잖아요. 한국전력이 나주로 갈 때 산업자원부부터 한전 사측이 직원들 의견 듣고 갔나요? 언론사가 아니니까 다르다고 한다면, 중앙일보가 상암동 갈 때 기자들 찬성해서 간 건가요? 그렇진 않잖아요. 정할 때 의견을 들어보고 하는 게 사안에 따라 다른 거죠.”

그러면서 곽 사장은 “의견을 다 물어보면 어떻게 결정하냐. 직접 민주주의가 있었던 아테네나 스위스나 가능하지”라고 했다.

이호정 상무는 “사원들도 재건축 필요성은 100% 가까이 인식한다”고 주장했다. 이 상무는 “안전, 노후화 문제와 재건축으로 얻을 재정적 안정성 문제 때문”이라며 “그걸 인정하면서도 지금 당장의 불편함에 대해서는 사실 (불만이) 있는 거다”라고 했다.

재건축이 확정된 뒤 이전하는 건?

그러나 재건축 협상은 아직 시작도 안 됐다. 프레스센터를 공동 소유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는 재건축과 관련해 “내부적으로 전혀 언급되는 게 없다”며 서울신문 측의 일방적인 계획이자 주장일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코바코를 대리해 프레스센터 운영을 관리하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측도 입주한 언론단체들과의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재건축 인허가는커녕 입주사들과의 협상도 시작되지 않은 상황에서 ‘방부터 빼는’ 것에 대해 기자들의 우려와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재건축 계획이 확정된 뒤 옮겨도 되는데 뭐 때문에 서두르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호정 상무는 “프레스센터는 상업적 빌딩이라 아파트 조합 재건축 하듯이 연한이 다 돼서 인허가나 안전진단까지 다 하고 ‘이제 됐으니 가자’ 이런 프로세스가 아니”라고 했다. “서울시 도시 계획이란 게 있고, 우리가 어떤 걸 준비하고 제안할지 제반 조건이 맞아야 한다”는 것.

이 상무는 2016년 코바코와 ‘사옥광장개발과 자산가치증신을 위한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맺은 ‘공동협력 협약서’를 보여주며 “당시에도 (서울시의) 도시개발계획 변경에 따라 구역 변경에 시동을 걸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시티코어를 통해 (재건축 계획 등을) 발주하고 실제로 개발계획이 나왔다. 거기까지 든 돈이 7000만원이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유야무야 된 거다. 이런 식으로 낙하산 사장들이, 코바코나 저희나 언론재단에 오면서, 정권의 연속성이 없으니까 사업 또한 연속성이 없었던 거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협약서에 관해 코바코 측은 22일 “재건축이란 어떤 단어도 등장하지 않는다”며 “서울신문이 자꾸 당시 협약서를 언급하며 코바코가 예전엔 (재건축에) 찬성했는데 지금은 반대하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곽태헌 사장이 지난해 경영계획서에서 공개한 프레스센터 재건축 조감도

재건축할 건물에 서울시는 왜 들어오나

프레스센터 재건축을 위해선 서울시의 협조가 필수다. 일단 인허가권을 서울시가 갖고 있고, 용적률 상향 등도 필요하다. 2015년 발표된 서울시 역사도심 기본계획에 의해 현재 서울 한양도성 인근 사대문 안팎 도심부엔 높이 90m 이상의 건축물을 지을 수 없다. 프레스센터 옆에 있고 2001년 준공된 서울파이낸스센터(SFC)는 124m 높이다. 서울신문 측은 SFC 정도 높이의 재건축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4월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사대문 안 높이 제한을 풀고 용적률을 높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신문이 언론계 안팎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오세훈 시장 선거 캠프 사무실로 프레스센터를 임대한 것과 4,5층을 서울시가 임차해 들어오는 것을 두고 재건축 추진과 관련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호정 상무는 “여기 (사정을) 이해하고 들어오는 게 편한 게 관(官)”이라며 “그쪽(서울시)서도 공간이 부족하다고 요청이 왔다”고 했지만, 재건축과 관련해 서울시의 협조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거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상무가 이날 보여준 서울신문 자료에 따르면 ‘재건축 시 기부채납 방법 협의(서울시)’란 항목 아래 “현재 도심권 개발사례에서 서울시는 건축물 기부채납 요구(공공업무시설)”, “재건축 시 ‘건축물+지하보행통로+현금 기부채납’과 같이 건축물을 최소화하여 기부채납할 수 있는 방안 검토”란 내용이 있다. 서울시는 청사 신축 이후 꾸준히 공간 부족 문제로 민간 건물을 임대해 사용해 왔는데, 시청과 인접한 프레스센터를 선호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프레스센터가 재건축되면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서울시 청사와 아케이드 등으로 연결하려 할 거란 예측이 나오는 건 그런 배경에서다.

‘왜 하필’ 호반파크인가

어쩔 수 없이 재건축이 시작되기도 전에 사무실을 옮겨야 한다 하더라도, ‘왜 하필’ 호반파크인가. 호반파크는 지난해 10월 대주주가 된 호반건설의 본사 건물이다. 서울시 외곽에 있는 탓에 교통편이나 접근성도 프레스센터보다 좋지 않다. 이에 관한 기자들의 저항감, 박탈감은 크다. 56명의 기자들은 성명에서 “서울신문 구성원을 호반파크 아래에 두고 길들여 ‘식물 언론’, ‘죽은 기자’로 만들겠다는 속셈이냐”고 성토했다.

곽태헌 사장은 “(임차할 사무실을) 몇 군데 알아봤지만 마땅한 데가 없었다”며 “아파트 살 때도 보면 역세권에 새 아파트에, 싼 아파트가 있냐. 논리적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너무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사대문 안에 기자들 출입처가 얼마나 있나. 따지고 보면 사대문 안에 주요 출입처는 6대 그룹 중엔 SK 하나, 은행 몇 개가 있고 정부 부처는 세종시와 과천에 있다”며 “외근기자들은 출입처로 출근하는데 불편함이 많지 않다. 그런데 아무래도 여기보다 불편하니까 그런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상무는 “호반파크가 거리(위치)는 안 좋지만, 효율성이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호반그룹 계열사인 전자신문과 EBN이 이미 입주해 있고, 현재 3사가 함께 쓸 CMS 등 시스템을 구축 중인 만큼 “프레스센터에 입주하기 전까지는 그 공간을 활용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큰 그림은 이쪽으로 오는 것”이라고 했다. 프레스센터 재건축 후엔 서울신문만이 아니라 전자신문, EBN까지 서울미디어홀딩스 3사가 함께 새 청사로 돌아온다는 구상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5월 프레스센터에 걸려 있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현수막. 오 후보는 서울신문 소유의 프레스센터 사무실에 선거 캠프를 차렸었다. (김고은 기자)

하지만 기자들은 “재건축 이후 프레스센터 복귀는 10000% 확정이라는 말 역시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 상무는 “재건축 후 들어오는 게 당연한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생소하긴 하다”고 말했다. 곽 사장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상무는 “‘내가 싸인이라도 해줘야 하나’ 하고 회장이 말씀하셨다”며 “기자들이 정 못 믿겠다면, 확신을 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약속하라면 하겠다는 거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재건축을 해도 “프레스센터가 호반 사옥이 된다거나 H자가 붙는다거나 하는 건 맞지 않다”며 “건물 리모델링의 방향은 공공건물이고, 여기서 호반은 어떤 절차에도 안 들어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번복’은 없다

곽 사장은 재건축이 서울신문은 물론 코바코 직원들이나 입주 언론단체들에도 좋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하지만 “(정년이 5년 이내 남은) 임금피크제 사원들에게는 미안하다. 재건축이 빨리 돼도 5년은 걸리지 않나. 신축돼도 혜택을 못 받는 사람”이라며 “오히려 이건 임피제 사원들이 일어나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젊은 직원들에겐 새 사옥의 혜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사한 사이 교통 문제 등은 불편해지는 만큼 현 서울신문 9층에 기자와 업무직 직원들이 쓸 사무실을 남겨두고, 여의도에도 쉼터를 만들겠다고 했다. 택시 회사 등과 협약을 맺거나 통근버스, 시차근무 등도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전은 늦어도 10월 말까지는 끝내겠다고 했다. 10월은 호반이 서울신문의 최대주주가 된 지 1년이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호반파크로 이전하더라도 제작국 윤전부와 시설관리 직원들은 프레스센터에 남게 되지만, 재건축이 결정돼 건물 철거에 들어가는 순간, 이들은 갈 곳을 잃게 된다. 이 상무는 “노조 집행위원 간담회 때도 얘기했다”면서 “길이 지금 볼 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대쇄, 하나는 분사, 하나는 새로 공장부지를 사서 윤전시설을 짓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서울신문 인쇄는 대쇄를 맡기고 윤전부 직원들을 전직 배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일보가 인쇄공장을 폐쇄하고 제작국 직원들을 고용승계하면서 택했던 방법이다. 신규 인쇄공장 건설은 큰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가능성이 작아 보이는데, 곽 사장과 이 상무는 최근 수백억원 규모의 새 윤전시설을 마련한 한국경제신문의 사례를 들며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시설관리 직원들은 호반 계열사로 흡수될 것으로 보인다. 이 상무는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재건축과 사옥 이전에 따라 구성원들은 단순히 근무지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많은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이 모든 변화가 호반이 대주주가 되고 단 8개월여 만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1월 호반건설 대해부 기사 삭제 사건부터 경영진의 일방적인 결정과 통보, 이를 단순 전달만 하는 편집국장과 간부들 때문에 기자들은 절망감을 호소하고 있다.

사내 민주주의가 훼손됐다, 언로가 막혔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곽 사장에게 끝으로 물었다. 곽 사장은 “좋지 않은 목적에서 출발했고, 그런 기사(호반 대해부)가 나온 것 자체가 잘못됐는데 호반이 1대 주주가 됐지 않나. 그대로 있는 게 맞다고 생각하냐”고 반대로 물으며 “내 소신이다. 떳떳하다. 잘못한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서울신문처럼 민주적이었던 적이 없다. 오너 있는 회사에서 성명서 올린 거 보면 언로가 트여 있다는 방증”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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