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시대 언론은 어디에 있는가, 겸허하게 성찰할 때"

노향기 전 기자협회장 '기자의 혼' 상 수상
기자협회, 제17회 기자의 날 기념식 개최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한 제17회 ‘기자의 날’ 기념식이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한 제17회 ‘기자의 날’ 기념식이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기자의 날은 1980년 5월20일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 검열에 맞서 전국의 기자들이 일제히 제작 거부에 들어간 날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2006년 제정됐다.

특히 올해는 1980년 강제 해직된 언론인이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로 포함된 이후 처음으로 맞이한 기자의 날이라 더욱 뜻깊었다. 앞서 지난해 5월21일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과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전두환 신군부가 광주항쟁과 언론항쟁을 분리시키고 광주항쟁을 지역항쟁으로 조작하려던 공작이 41년 만에 격파된 바 있다.

이날 기념식에는 김동훈 한국기자협회 회장을 비롯해 역대 기자협회장들이 참석해 기자의 날을 자축했다. 박병석 국회의장,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고승우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표완수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 박기병 대한언론인회 회장, 김주언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남영진 KBS 이사장, 이진순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 대표, 조한규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 서양원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 윤창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김경희 한국여성기자협회 회장, 김창환 한국편집기자협회 회장 등도 참석했다.

김동훈 회장은 “요즘 답답했던 마스크를 벗어던지며 가려져있던 사람들의 얼굴과 미소가 보인다”며 “굴곡진 우리 언론 역사에서도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던 가슴 먹먹했던 기나긴 암흑기가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선배님들이 바로 그 역사의 산증인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자협회는 1980년 5월20일 자정을 기해 계엄사의 검열을 거부하고 제작 거부 투쟁에 돌입했다. 이를 계기로 당시 신군부와 언론 사주에 의해 해직된 기자만 무려 1000명이 넘는다”며 “오늘 기자의 날을 맞아 기자협회는 새삼 다짐한다. 권력에 대한 언론 본연의 비판과 감시 기능을 소홀히 하지 않고, 언론 자유를 침해하려는 그 어떤 외부 세력의 간섭도 성역 없이 비판하겠다. 이것만이 우리 선배 언론인들이 지켜내고자 했던 기자 정신이며, 언론 신뢰 회복의 척도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7회 ‘기자의 날’ 기념식에서 김동훈 한국기자협회 회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박병석 국회의장도 이날 기념사를 통해 기자의 날을 축하했다. 박 의장은 “펜은 사회의 흐름을 바꾸고 때로 칼과 맞선다”며 “1980년 5월 제작을 거부한 뜻 있는 언론인들은 쫓기고 체포되고 고문당했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암울했던 시기, 언론의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던졌던 언론인 여러분들을 역사에 기록하고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또 다시 언론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며 “지금 우리 시대 언론은 어디에 있는가, 길을 묻고 있다. 우리 모두가 겸허하게 자신을 성찰하고 길을 찾아 행동할 때라 생각한다”고 했다.

유숙열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는 축사를 통해 후배 기자들을 격려했다. 유숙열 대표는 “인터넷 뉴스를 보면 기자들을 ‘기레기’라고 칭하며 조롱하고 비난하는 댓글이 주르륵 달린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마치 저 자신이 비난을 받은 듯이 가슴이 무언가 치밀어 오르며 먹먹해지곤 했다”며 “기자들이 비난받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과거 5‧18 때도 광주에서 한 방송사가 불타고, 신군부 집권 후 땡전 뉴스라는 것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이 오늘날 언론 현장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기자들을 기레기로 몰아갔을까”라며 “언론인들 자신의 책임도 있을 것이지만 정치권력 대신 자본의 횡포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달라진 상황에서 후배 기자들이 더욱 진솔한 자기 성찰을 바탕으로 언론의 소명을 실천하기를 진심으로 기대하며, 앞으로 ‘기자의 혼’ 상을 후배들이 수상하는 날이 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다려 본다”고 했다.

'기자의 혼' 상에 노향기 전 기자협회장

이날 기념식에선 축사에 이어 ‘기자의 혼’ 상 시상식이 열렸다. 기자협회는 “신군부 당국의 언론 검열에 맞서 제작 거부 투쟁에 앞장서는 한편 언론 자유를 위해 온 몸으로 저항한 기자의 표상으로, 후배 언론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며 노향기 전 기자협회장에 ‘기자의 혼’ 상을 전달했다.

노향기 전 기자협회장은 지난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의 폭압에 맞서 기자협회를 중심으로 기자들이 검열거부 및 제작거부를 결의했을 때 한국일보 10년차 기자로 기자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당시 신군부의 검거를 피해 도피 생활을 했던 그는 42일 만에 자수했고,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기술자 이근안 등에게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 고문 후유증은 지금도 그의 몸을 갉아먹고 있다. 노 전 협회장은 서대문구치소와 대전교도소에서 1년여 옥살이 끝에 1981년 5월 석가탄신일 특사로 석방됐다.

구속 전력으로 갈 곳이 없어 8년여 동안 언론계를 떠나 있었던 그는 1989년 1월 한국일보에 복직했고, 그 해 3월 제29대 기자협회장에 당선됐다. 이후 한국일보 북한부 차장, 한겨레신문 편집위원, 월간 ‘말’지 발행인, 언론중재위원 등을 지냈다. 노향기 전 협회장은 “건강에 좀 문제가 있다”면서 “1960년대 후반 어느 지인이 저에게 기자답지 않은 기자를 한 번 해보라고 했다. 아주 먼 얘기인데 그것이 지금까지도 제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고 짧은 소감을 전했다.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7회 ‘기자의 날’ 기념식에서 ‘기자의 혼’ 상을 수상한 노향기 전 기자협회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가족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편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이날 축사를 통해 프레스센터에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 현수막이 걸린 것을 비판했다. 이부영 이사장은 “프레스센터 건물을 들어서다 오세훈 후보의 선거 펼침막이 건물 벽을 덮은 광경을 목격했다”며 “알다시피 이 프레스센터는 본래 신문회관 자리에 국민의 세금으로 올린 한국 언론의 메카다. 이 건물에다 오세훈 후보의 선거 선전물을 붙여놓은 것은 한국 언론의 얼굴에 먹칠하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냥 개인 빌딩에 선거 사무실을 임대해도 좋을 텐데 왜 굳이 프레스센터를 욕보이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우리는 그의 당락, 유불리에 관심이 없다. 유력 정치인, 선거에 나선 후보로서 언론을 존중하는 양식을 가져 달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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