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받아쓰는 우크라이나 보도, 속도 얻었지만 전문성 잃었다

[허위 글 등 미확인정보 인용하기도]
전문기자들, 허위정보 확산 우려
"인력·경험 바탕으로 검증 역할을"

  • 페이스북
  • 트위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틀째인 지난달 25일 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총리, 비서실장, 여당 대표 등과 함께 수도인 키이우 시내를 배경으로 찍은 영상을 공개했다. ‘대통령이 측근들과 이미 키이우를 떠났다’는 소문에 반박하고, 국민의 단결과 해외 지지여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선택한 통로는 자신의 텔레그램이었다. 소셜미디어에 공개된 영상은 곧바로 전 세계 언론에 보도됐다.


현재 전 세계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쟁 상황을 볼 수 있다. 관련 보도 상당수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크라이나 상황을 전달하는 식이다. “91년 걸프전 때는 미사일에 달린 카메라로 전쟁을 중계했지만 이번엔 수천대의 휴대폰 카메라가 거대한 매체가 된 특이한 전쟁”이라는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의 설명처럼 우크라이나 사태는 과거 전쟁과는 분명히 다른, 21세기에 벌어진 전쟁의 특징과 보도 양상을 보이고 있다.

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이르핀 마을의 이르핀 강 다리가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파괴돼 피난길 주민들이 그 밑에 급조된 좁은 통로를 통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국내 언론사와 독자들의 관심도 뜨겁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 검색 결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관련 기사 수는 12일 만에 1만5926건(7일 기준)에 달했다. 사전투표 관리 부실 문제가 불거지고, 동해안 지역 산불이 나흘째 이어지던 지난 7일, 네이버의 언론사별 랭킹뉴스(많이 본 뉴스) 1~5위까지의 순위에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보도가 대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포털 상에선 전쟁 소식이 국내 이슈를 압도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다만 우크라이나 사태를 다루는 일부 보도 형태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소셜미디어 발 소식을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쓰며 우크라이나 사태를 ‘클릭 수 경쟁’ ‘트래픽’을 위한 소재로 활용하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28일 이후로 개인 소셜미디어를 인용한 ‘드레스 대신 총 든 미스 우크라이나’ 보도가 쏟아졌고, 지난 1일엔 ‘“푸틴에 저항하는 군인과 성관계” 성인모델 反러시아 운동 적극 동참’ 기사가 나왔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자극적인 ‘해외 토픽 류’ 기사로 소비하면서 단순 흥밋거리로 전락시킬 수 있는 지점이다. 또 ‘파키스탄이 10억 달러 차관을 갚지 않는 방식으로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다’는 허위 글을 인용해 보도한 후 문제를 파악하자 기사를 삭제한 일이 벌어지는 등 독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사례도 있다.


언론이 포착하지 못한 전쟁 참상과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상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소셜미디어 인용이 불가피한 상황이기도 하다. 다만 허위 정보 확산 방지를 위해 사실 확인이라는 언론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국제전문기자들의 당부가 나온다.


채인택 기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는 독특한 상황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정부의 출국 허가가 쉽게 나지 않아 국내 기자들이 현지에 가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면서도 “BBC는 우크라이나 관련 ‘디스인포메이션’을 팩트체크하는 파트가 별도로 있다. 시간 상 늦을 수 있겠지만 언론사는 대신 인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잘못된 사실을 거르는 순기능을 발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권희진 MBC 국제전문기자는 “소셜미디어 속 영상이나 장면은 현장성 있게 보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공신력 있는 매체가 아니고 언어 장벽도 있어 정보를 검증하는 게 쉽지 않아 보도 초창기 굉장히 애를 먹기도 했다”며 “현재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현지 통역사를 섭외해 검증을 받는 등 정확성을 위한 대응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푸트니크 통신, RT 등 러시아 관영 매체 보도 인용에도 주의가 요구된다. 채 기자는 “푸틴이 선전전으로 주로 이용하는 스푸트니크나 RT는 이미 공신력을 잃은 상태다. 모략, 역정보는 러시아 전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이들 보도라면 우선 조심하고, 의심부터 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에서 전하는 현장의 목소리와 전쟁 발발이 국내에 미치는 영향 분석 등 의미 있는 기사들도 다수 존재하지만, 대체로 소비되는 우크라이나 사태 기사가 외신, 소셜미디어를 그대로 인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문제도 거론된다. 해외 유력 매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특파원이나 국제전문기자의 인력 등의 한계로 진단할 수 있다.


권희진 기자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기사 수가 많아지면서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 같이 국제 문제에 정통한 매체의 보도를 해석해 기사화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면서 “시간이 부족한 국내 언론 환경에서 이런 작업도 의미는 있겠지만 우리만의 시각을 갖고 있는 기사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더 이상 그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 유가 상승, 식량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고, 국내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제 뉴스에 대한 높은 수준의 접근이 필요해진 상황”이라며 “예전엔 국제 뉴스라면 해외 토픽 비슷한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각 나라의 역사를 이해하고, 뉴스 밸류를 결정하는 등 전문성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정의길 한겨레 국제부 선임기자는 “서방이나 우리 언론도 그렇고 시민들의 항전, 서방의 무기 지원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전반적인 기사 톤 자체가 감정적”이라며 “전쟁이 장기화되면 문제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하는 게 맞고, 어떠한 것도 전쟁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언론이 전쟁을 어떻게 하면 빨리 끝낼 수 있을지 차분히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