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1200원' 시대

[이슈 인사이드 | 경제] 김익환 한국경제신문 기자

김익환 한국경제신문 기자

1997년 12월23일. 한국이 외환위기 폭풍에 빨려들어가던 시점에 금융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당시 원·달러 환율은 1962원에 마감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화 대비 원화가치가 역대 최저 수준이라는 의미다. 1990~1998년에 달러당 600~800원선을 오가던 환율이 외환위기와 맞물려 2~3배가량 폭등한 것이다. 하지만 외환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은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외환위기를 계기 삼아 한국 정부와 가계가 ‘외환방파제’를 튼실하게 구축한 결과다. 1997년 12월 말 207억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말 4631억달러로 23배가량 불었다.


환율은 경제의 등락을 민감하게 반영한다. 경제 위기가 찾아오면 원화가치가 떨어지고, 환율은 뜀박질한다. 반대로 경기에 훈풍이 불면 원화가치는 강세로 전환하고 환율은 하락한다. 실물경제 위기를 판가름하는 환율 경계선도 존재한다. ‘1달러=1200원’이다. 한국 경제에 위기가 엄습할 때마다 환율은 1200원을 웃돌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던 2008년 9월~2009년 9월, 유럽재정위기가 엄습한 2010년 1~5월에 모두 1200원을 웃돌았다. 최근엔 미·중 무역분쟁이 깊어진 2019년 8~10월, 코로나19 위기가 퍼진 2021년 2~7월에 넘어섰다.


최근 환율이 재차 1200원을 넘나들면서 당국과 금융시장에 긴장감이 감돈다. 지난 1월6일(1200원 90전)과 7일(1201원 50전)에 환율이 1200원을 웃돌았고 이후로 1190~1200원을 오가고 있다. 환율이 치솟으면 외국인 투자자 이탈 행렬이 이어지고 금융시장도 출렁인다. 원화로 환산한 수입제품 가격이 뛰면서 인플레이션 우려도 커진다. 정부가 치솟는 환율에 긴장하며 외환시장 개입에 나서는 배경이다. 하지만 시장 관계자들은 최근 환율이 1200원을 넘어선 데 대해 갸우뚱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코로나19 터널’을 벗어나 비교적 순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성장률은 4% 수준이다. 올해도 3%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작년과 올해에 잠재성장률(2.0%·한 나라의 노동과 자본 등을 투입해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 수준을 웃도는 성장 흐름이 예상된다. 지표로 보면 위기와는 동떨어진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환율이 1200원을 넘어선 데 대해 두 가지 이유를 꼽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돈줄 죄기’가 첫 번째 배경이다. 코로나19가 퍼진 직후 제로(0) 금리를 유지하던 Fed는 올해 3~4차례 금리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여기에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올 하반기에 ‘양적 긴축’을 추진할 뜻도 시사했다. 보유한 국채 등 채권을 팔아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빨아들인다는 의미다.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미 국채 수익률이 급등하면 투자금이 미국으로 몰리고 덩달아 달러 가치도 뛰게 된다.


환율이 뛰는 배경을 국내에서도 찾을 수 있다. 국가부채(정부 부채)가 불어나고 그만큼 국가 재무구조가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6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66.7%를 기록해 작년 말보다 15%p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주요 선진국 35개국 가운데 상승 속도가 가장 빠르다.


대선 후보들은 연일 정부 씀씀이를 늘리는 내용의 공약을 쏟아내는 중이다. 덩달아 환율 불안도 더 커질 전망이다. 선심성 정책이 한국 경제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대선을 앞둔 후보들은 물론 국민들도 고민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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