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제평위원, '언론사의 저승사자' 제평위를 해부하다

[책과 언론] 디지털 퍼스트 저널리즘 시대 바르게 돌파하기
-강주안 지음 / 한울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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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은 언론계의 지형을 바꿀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포털 뉴스의 품질이 떨어져 이용자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으로 뉴스 제휴평가위원회가 탄생했다. 사진은 지난 2015년 5월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뉴스 제휴평가위원회 설명회 장면. /뉴시스

지난해 9월 연합뉴스 기사가 네이버와 다음에서 32일간 사라졌다. 기업의 보도자료 649건을 일반기사로 포털에 내보내다 적발됐기 때문이다. 누적 벌점이 130.2점에 이른 연합뉴스는 재평가 대상(벌점 6점 이상)에 올랐고, 그해 11월 제휴평가위원회(이하 제평위) 재평가에서 탈락해 뉴스콘텐츠 제휴계약이 해지됐다. 재평가에서 탈락하면 향후 1년간 제휴신청을 할 수 없기에 최소 1년 이상 연합뉴스의 모든 기사가 네이버와 다음에서 사라질 처지였다.


연합뉴스는 “제평위 결정이 부당하다”며 반발했고 네이버와 카카오를 상대로 계약해지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법원은 지난해 12월 말 본안판결 확정시까지 뉴스콘텐츠 제휴계약 해지통보의 효력을 정지했다. “뉴스 시장에서 압도적인 위상과 비중을 차지하는 포털이 언론사들에 매우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하고, 해지조항이나 제평위 심사규정에 이의를 제기할 방법이나 절차도 두지 않았다.”(서울중앙지법 제50민사부 계약해지 효력정지 가처분 결정문) 제평위원들은 재판부 결정에 “강력한 유감”을 표하며 포털에 연합뉴스를 상대로 본안 소송을 제기하라고 촉구했다.


연합뉴스 사태는 대형 언론사라도 포털에서 원샷 퇴출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언론사에게 저승사자”인 제평위가 새삼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정작 많은 언론사와 기자들이 제평위 활동이나 포털과 언론사 관계, 제휴 및 제재 과정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디지털 퍼스트 저널리즘 시대 바르게 돌파하기>를 쓴 강주안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2015년 중앙일보 혁신보고서를 대표 집필하고, 2019년 뉴스룸 국장을 맡아 디지털 혁신을 이끌었다. 3년간(2017~2020년) 제평위원으로 참여하며 포털 제휴와 퇴출 과정을 목격했고 디지털 전환을 이끌며 체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포털 저널리즘의 메커니즘을 책으로 펴냈다. 여기에는 제평위 구성 및 운영, 인링크와 아웃링크 개념, 언론사의 부정행위를 제재하는 주요한 규정뿐 아니라 포털 제휴의 실무와 대처법, 제평위원들의 입점 심사 평가 과정이 상세히 들어 있다.


책은 포털 뉴스 제휴와 제재 심사 대처법 등 미디어가 포털에 진출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지만 곳곳에서 제평위와 포털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언론사에게는 제평위가 네이버, 카카오의 입장에 서서 언론사를 처벌하는 일방적 규제기구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여건이 조성됐다.” 저자는 네이버와 카카오 사무국을 검찰에 비유하면서 언론사의 벌점 부과 과정을 짚는다. 제재 대상 기사는 제평위원들이 직접 고발하거나 이용자의 신고로 걸러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무국의 모니터링을 통해 나온다. 검찰이 기소해야 재판이 이루어지듯 네이버, 카카오 사무국이 제재할 기사를 제재회의에 올려야 제재 여부를 결정하고 벌점을 부과할 수 있다. 사무국에서 제재회의에 올리지 않는다면 벌점을 부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언론사 제재의 어젠다 세팅을 사실상 네이버와 카카오가 하는 셈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제평위 제재 회의가 정부 기관의 징계 절차보다 훨씬 일방적이고 반론 기회 제공에 인색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경우 방송사를 중징계할 때 관련 부서장 등이 출석해 소명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언론중재위원회도 중재 신청이 접수되면 언론사에서 출석해 항변할 기회를 주고 있는데도 제평위는 제재 대상이 되는 언론사의 출석 및 소명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2015년 10월 출범한 제평위는 초기 중복, 반복 전송 등 어뷰징 제재 등에 비중을 뒀고 이런 노력의 결과로 어뷰징이 대폭 줄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언론사 광고 관련 규제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제평위의 존재 이유가 언론사의 광고를 규제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네이버, 카카오가 언론사와 수입 경쟁이 생길 수 있는 광고 관련 항목을 집중적으로 모니터링할 가능성이 크다며 기존 광고 방식을 지속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대량 벌점을 맞고 퇴출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저자가 언론사 소속이고 언론사 입장에서 제재를 바라보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뉴스 제휴 신청에 대한 제평위의 평가 과정도 꼼꼼히 보여준다. 저자는 한번 심사에 신청하는 매체가 500개 안팎, 평가위원 30명이 3개조로 나뉘어 평가하는 터라 위원 한 명이 평가하는 매체 200여개, 각 매체 당 채점 시간을 10분으로 잡으면 총 2000분, 시간으로 환산하면 33시간, 매일 1시간 평가를 진행해도 한 달 이상 걸리는 작업, 주말을 활용해 토요일과 일요일에 2시간씩 평가를 진행하면 8주가 걸린다며 “세밀하게 평가하기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내놓은 이유를 말한다. “언론사들이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포털 등에 끌려다니면 얼마나 비참하고 초라해지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의 언론사’를 기록해둘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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