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프로와 씨리얼

[이슈 인사이드] 이혜미 한국일보 커넥트팀 기자

이혜미 한국일보 커넥트팀 기자

‘저 후보가 저렇게 달변이었어?’ 다소 고루한 경제 정책 이야기가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지는데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세간의 화제인 유튜브 채널 ‘삼프로TV’ 대선 특집 말이다. 지난 연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대선 후보 5명이 잇따라 출연한 영상은 누적 조회수 1000만을 훌쩍 넘길 정도다.


각 후보의 매력도 빛났다. 멋 모르던 시절 주식을 시작해 겪은 온갖 시행착오를 풀어놓는 후보에게서 인간미가 느껴졌다. “공직의 길을 걷느라 주식을 해본 적 없다”는 후보에게서는 우직함을 엿봤다. 전문 사회자 앞에서 오랜 시간 대본 없이 견해를 밝히는 것 자체가, 후보와 유권자 양측이 만족하는 ‘검증’의 기회가 됐다.


많은 이가 ‘레거시 미디어’의 위기를 읽은 대목에서, 문득 다른 의문이 생겼다. 이 후보들은 과연 경제가 아닌 젠더·소수자 이슈에 있어서도 청산유수일까.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정확하게 신념을 밝힐 수 있을까. 선거를 앞두고 황급하게 ‘성인지감수성 속성 과외’를 받거나 ‘페미니스트 정치인’을 반짝 영입하는 방식(그마저 지지율 하락의 굴레를 덧씌워 2주 만에 사퇴로 내몰았다)으로 성평등 의제를 취급해온 관행을 떠올리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검증은커녕 출연조차 난망했다. 세밑에 이재명 후보는 CBS 뉴미디어 채널 ‘씨리얼’ 출연을 약속했다가 돌연 취소했다. 씨리얼은 그간 레거시 미디어가 간과한 소수자·약자의 목소리를 섬세한 시선으로 조명해왔는데, 이를 두고 ‘페미니즘 우호 방송’이라는 일부 지지자 여론이 캠프에 전달된 결과였다.


더 큰 문제는 여당 대선 캠프가 그간 한국 사회가 반복한 ‘페미니즘 낙인 찍기에 대한 투항’을 반성 없이 답습했다는 점이다. 일부 지지자의 근거 없는 주장을 검증하지 않고 일정을 취소한 것에 모자라, 선대위 온라인소통단장을 맡고 있는 김남국 의원은 직접 남초 커뮤니티에 등판해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7일 이 후보 촬영을 마친 뉴미디어 ‘닷페이스’까지 ‘극단적 페미 성향 채널’이라는 같은 혐의를 덮어쓰며 불씨가 번졌다. 논란이 확산하자 이 후보가 직접 페이스북에 글을 쓰며 설득에 나섰다.


‘삼프로TV’는 되면서 ‘씨리얼’은 왜 안 되는가. 이 간단한 질문이 한국 정치에 던지는 질문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외곽에서 묵묵하게 약자·소수자 이슈를 다뤄온 ‘씨리얼’과 ‘닷페이스’를 한순간 ‘위험 매체’라 낙인찍은 여론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국면마다 지지율을 의식해 부적절한 여론을 침묵, 방조하거나 혹은 교묘하게 이용해온 정치의 책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도 제1야당 대선후보는 구체적 언급도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 단 7자를 페이스북에 올려 표몰이에 활용하고 있지 않은가.


“표 앞에서 약해지는 것이 정치인의 처지겠지만, 비록 표가 없는 청소년과 소수자라는 꼬리표처럼 더 소외될 수밖에 없는 이들 마저 보듬지 못한다면 그것이 정치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4일 언론노조 CBS지부가 밝힌 성명 일부에서 정치가 가야 할 길을 읽는다. 여러 차례 씨리얼과 닷페이스에 출연한 심상정 후보를 제외한 모든 대선 후보들이, 이 참에 두 채널을 정주행하는 건 어떨까. 마땅히 소통해야 할 국민은 ‘삼프로TV’ 뿐만 아니라 ‘씨리얼’과 ‘닷페이스’에도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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