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사진기자로 사람을 보던 '매의 눈'… 맞춤정장 재단에 안성맞춤

[기자 그 후] (34) 정재훈 빌브레스 대표 (전 충청투데이 사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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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빌브레스 대표가 대전 중구 대종로에 위치한 매장에서 손님의 신체 사이즈를 재고 있다. 27년 간 대전 지역 신문사와 통신사를 두루 거치며 대전충남사진기자협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그는 지난해 12월 퇴사 후 맞춤정장점을 새로운 업으로 삼고 있다. /정재훈 대표 제공

“목이 가늘고 긴 편이시라 목을 드러내는 차이나 에리 셔츠(깃이 없는 셔츠)보다는 좀 커버할 수 있는 게 좋고요. 지금 보면 평어깨인데 사가리(어깨 끝이 처진 체형)에 맞춘 옷을 입히면 옷이 떠서 안 맞겠죠.”


남성 맞춤정장 전문점 빌브레스 정재훈 대표가 지난 12일 “그 사람의 체형을 정확하게 캐치하는 게 옷을 잘 만드는 가장 급선무”란 얘기를 하던 중 기자를 ‘스윽’ 훑으며 말했다. 말끔한 영국교복 스타일 정장을 입은 멋쟁이 신사는 옷 얘기를 이어갔다. “시아게(마무리다림질)를 잘 해야 옷이 완성되는 거거든요. 에리를 원단 방향으로 꺾으면 가운데가 접히는데 다리미를 조금씩 돌리며 이새(잔주름)가 생기게끔 바깥을 늘려야 되고요.” 여느 능숙한 맞춤 정장점 사장님이 할 법한 말들. 반전이라면 그가 대전 중구 중앙역 인근 현 매장에 몸담은 지 1년이 안 됐다는 점이다. 2020년 12월 만 10년을 맡아온 사진부장직을 내려놓기까지 그는 쭉 사진기자였다. 무려 27년간.


1995년 지역일간지 동양일보 입사가 시작이었다. 1992년~1993년 일종의 프리랜서라 할 세계일보 모니터요원 활동까지 포함하면 사진으로 밥벌이 한 시간은 30년에 다가간다. 1998년~2004년 대전일보, 2004년~2008년 뉴시스대전충남에서 일하며 지역 내 통신·신문사를 두루 거쳤다. “아스팔트를 휘젓고 다니며 열심히”, “대전 토박이라 환경을 잘 아니까 서울 사진기자들이 내려와도 물을 먹이던” 시절이었다. 2005년엔 팔순 할아버지가 하얀 모시 삼베를 입은 할머니를 자전거 뒷좌석에 태우고 가는 사진, ‘노부부가 전하는 사랑의 진풍경’으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2010년 충청투데이 입사 전, 필리핀 이민을 생각해 다른 사업을 준비하던 2년을 제외하면 평생의 업이던 일을 나이 55살에 바꾼 셈이다.


“언론환경이 안 좋아지고 사진기자는 특히 많이 줄고, 후배들한테 조언할 말이 없어지더군요. ‘좋은 곳에 간다’ 그러면 말리지 못했어요. 제 새끼니까 책임져야 된다고 생각해서 추천도 하고요. 그러다보면 취재파트 후배들이 (편집국 좌석배치에서) 제 옆 라인에 오게 됩니다. 저는 누구보다 사진부 프라이드가 강한 사람인데 내 뒤로 가는 건 막자 했어요.”

정재훈 빌브레스 대표가 충청투데이 사진부장이던 지난 2019년 대전지검 앞에서 뻗치기 중인 모습. 정 대표는 기자 시절 사진기자이면서도 이례적으로 거의 모든 현장을 정장 복장으로 취재하면서 멋쟁이 기자로 소문났었다. /정재훈 대표 제공


이런 생각을 할 쯤 인생 2막의 계기가 우연히 찾아왔다. 대구 섬유거리가 나온 TV 다큐 프로그램을 보다 “어, 저거 내가 했던 건데?”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1987년 전문대 졸업 후 “옷 좋아하고, 멋 내는 데 관심이 많았”던 그는 대전 홍명상가와 쇼핑몰 중앙데파트 일대 양복점 한 곳에서 일했다. ‘꼬마’로 시작해 줄자를 잡는 ‘사이즈맨’까지 6~7년을 버텼지만 기성복이 등장하며 관둔 기억이다. 이후 취미이자 아르바이트 거리던 사진을 업으로 삼아 평생을 살아왔는데 돌연 ‘가지 않은 길’이 눈앞에 크게 보였다. 그로부터 근 2년 간 휴일인 금·토요일이면 서울 양복공장을 찾아다녔다. 사정사정해서 원단·생산공정을 공부하고, 양복재단·바느질·다림질을 배웠다. 구두공장도 견학 다녔다.


그렇게 문을 연 정장점. 손님이 오면 정 대표는 체형을 재고, 디자인·원단을 골라 서울공장으로 보낸다. 직접 만들 수도 있지만 한 벌에 보름이 걸려 수지가 안 맞는다고 판단했다. 태도만큼은 여느 수제 명품에 못지않다. ‘개성을 청구(bill)하라, 내가 적극 지지(bless)하겠다’는 상호 뜻에 걸맞은 옷을 위해 원단을 찾아 서울을 오가고, 같은 가격 더 나은 색감을 찾으려 공부한다. “‘믿고 맡길 만 하냐’란 시선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옷은 신체 사이즈를 재는 단계에서 거의 60~70% 결정된다고 보거든요. 사진기자는 얼굴만 찍지 않고 전체 모습을 찍을 때가 많은데 그 ‘매의 눈’으로 보고 제안하는 거죠. 오다리인 분껜 앉았다 일어나도 옷이 밖으로 덜 돌아가게 바지 안쪽을 파지 않고요. 어깨가 큰 분껜 어깨패드를 빼고요.”


‘사진’기자이자 사진‘기자’로서 경험은 여전히 유효하다. 현재 가게 주요 고객들은 운동선수, 연예인, 공무원, 언론인 등 기자시절 인연이 많다. 넥타이 진열장엔 양 정당을 상징하는 빨간색·파란색 넥타이가 다수 배치됐는데, 실제 여야 정치인들이 가게에서 마주칠 때도 있다. 덕분에 벌이도 기자 때보다 낫다. 10년차 이후 거의 모든 현장에 TPO에 맞는 정장을 입고 나타나 취재를 하던 사진기자 모습이 뒤늦게 홍보가 된 측면도 있다. 가게 한 편엔 아예 스튜디오를 만들어 구매고객 부부 동반으로 프로필 촬영을 해주기도 한다.


새로운 업을 찾은 정 대표는 청소로 일과를 시작한다. 클래식을 틀고 커피를 마시며, 예전 같으면 찍기 바빴을 가게 앞 노란 은행잎을 감상한다. 납품할 물품, 도착할 옷을 체크하고, 다림질을 한다. 손님을 응대하고 가봉을 준비한다. 몸은 부지런해졌고 마음은 여유로운 삶이다. 오픈 후 휴일이 없었을 만큼 책임감이 커진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는 “남의 모습 찍는 걸 평생하다가 이제야 내 인생을 사는 것 같아 행복하다”고, “만든 옷을 흐뭇하게 입고 가는 손님이 너무 고맙다”고 했다. 각국 대표가 정상모임 때 입는 단체복을 디자인하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나중에 덕보자는 게 아니라 제 성향이 그래서 ‘형동생’ 하다 보니 저는 출입처나 취재원이 자산이 됐어요. 혹독한 기자가 되는 것도 좋죠. 저도 제 사진 때문에 회사를 관둔 분도 계시고, 영원한 숙제일 거예요. 다만 기자들이 종종 얘길 들어줘야 하는 자리서 딴짓을 하거나 대접받는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 착각은 하지 않았으면 해요. 기자를 관두고 나면 그런 예의들로 지낸 세월 전체를 평가받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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