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가게 사장님들이 들려준 진솔한 이야기, 나도 모르게 눈시울 붉어져"

[지역 속으로] 배재흥 경인일보 기획콘텐츠팀 기자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 취재기

지난해 12월 안산의 한 바버샵을 소개하며 시작한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 연재가 지난달 16일 뒷이야기를 담은 스물한 번째 기사로 막을 내렸다. 사진은 3회차에 나온 수원 진천생고기 김은순 대표.

시인 유병록은 <안간힘>이라는 책에서 ‘나는 이제 위로를 찾아서 한 발을 내딛는다’라고 썼다. 시인의 글처럼 백년가게 시리즈를 연재한 지난 10개월은 나에게 ‘위로를 찾아서’ 떠난 여정이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비범한 사람을 다룬 기사는 많다. 찰나의 흥미를 끌고자 자극적인 언어로 도배한 기사도 넘쳐난다. 백년가게 시리즈는 반대로 보통 사람이 주인공이다.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30년 넘게 자신만의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경기도·인천 지역 소상공인들의 이야기다.


보통 사람의 평범한 일상도 세월로 쌓이니, 귀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코로나19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수많은 자영업자들에게 이들이 앞서 걸어온 길을 보여주고 싶었다. 직장인인 나 역시 백년가게 사장님들의 꾸준한 모습에서 진한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역신문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도 생각했다.

배재흥 경인일보 기자


누군가에겐 백년가게 시리즈가 단순히 가게를 홍보하는 기사로 읽힐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역신문이기에 지역의 인물과 업체를 소개하는 건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여지곤 한다. 실제로 “인터뷰를 하면 돈을 내야 하는 거냐”고 묻는 사장님들도 여럿 있었다. 누군가는 신문사라는 이야기에 바로 전화를 끊기도 했다. 상처로 남을 때도 있었지만 지역에 뿌리내린 신문이 정작 지역민들과 괴리되어 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지난해 12월 안산의 한 바버샵을 소개하며 시작한 ‘소상공인 롤모델 백년가게’ 연재가 지난달 16일 뒷이야기를 담은 스물한 번째 기사로 막을 내렸다. 사진은 18회에 소개된 남양주 호평열쇠도장 김광종 대표.


20명의 백년가게 사장님들이 들려준 저마다의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수원의 한 전통시장 안에서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는 부부를 만났을 때다. 이곳 사장님은 아픈 몸을 이끌고 “옛날에 먹던 고기 맛이 생각나서 왔다”던 옛 단골손님을 떠올리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오산에서 80년 역사의 소머리국밥집을 경영하는 모자는 “꾸준히 오는 분들을 생각해 한 자리를 계속 지키고 싶다”며 더 많은 손님을 받으려고 가게 위치를 옮기거나 메뉴를 다양화하지 않는다고 했다. 남양주에서 열쇠업을 하는 한 사장님이 과거 ‘칼’을 품고 다닐 정도로 절박했던 상황을 회상하며 흘린 눈물과 인천에서 한복집을 하는 어느 모녀가 지금까지 고생한 서로를 다독여 주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이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잠시나마 어지러운 현실에서 벗어난 기분이었다. 이들의 때 타지 않은 순수함은 돈을 벌기 위한 욕망이 들끓는 세상에서 발견한 낭만처럼 느껴졌다.


백년가게 시리즈는 디지털로 변화하는 언론 환경에서 지역신문이 할 수 있는 하나의 도전이었다. 정형화된 신문 지면에서 탈피해 온라인으로만 연재했고, 보다 유연한 문체로 독자들이 읽기 편한 기사를 만들고자 했다. 기사뿐만 아니라, 유튜브 영상도 함께 제작했다. 바버숍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며 인터뷰를 하고, 음식점에 갔을 땐 별안간 먹방을 찍기도 했다. 모든 게 처음이었던 터라 좌충우돌했지만, 지역신문에도 읽을거리, 볼거리가 많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평가할 순 없지만, 기사든 영상이든 앞으로 더 나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겠다는 믿음도 생겼다.


백년가게 연재를 마치고 나니 세상이 바뀌었다. 이젠 ‘위드 코로나’란다. 우리의 일상도 차근차근 원래 모습으로 회복할 테다. 경인일보가 만난 백년가게 사장님들뿐만 아니라 전국의 소상공인들도 들뜬 마음으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위로가 필요한 당신이라면 우리 주변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제자리를 지킨 가게에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우리가 기다리던 위로는 그곳에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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