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결의(歷史決議)

[글로벌 리포트 | 중국]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결의(決議)의 사전적 의미는 ‘의논한 뒤 나온 결정’이다. 중국 공산당은 결의과 결정을 분명히 구분한다. 결의는 토론과 표결이라는 형식을 갖춰야 하며, 상부의 결의는 하급 기관에서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결정은 굳이 상술한 조건을 갖추지 않아도 의사권을 가진 개인과 기관이 임의로 정할 수 있다.


공산당은 결의가 결정보다 훨씬 더 큰 권위성과 지도성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결의 내용은 공식 문건으로 작성된다. 주제와 문서가 작성된 시간을 명시한 뒤 본문의 경우 결의를 진행하게 된 이유와 결의 사항, 결론 등을 순서대로 적어야 한다. 중국에서 다양한 정책과 경제·사회적 이슈에 대한 ‘결정’은 많아도 ‘결의’는 희소하다. 엄중함의 크기가 다른 역사 문제에 관해서라면 더욱 그렇다.


올해로 중국 공산당이 창당 100주년을 맞았다. 지난 100년간 공산당이 ‘역사 결의’를 채택한 건 두 번에 불과하다. 모두 생사와 존망의 기로에 섰을 때였다는 게 공산당 당사(黨史) 속 주장이다. 첫 사례는 1945년 6기 중앙위원회 7차 전체회의(6기 7중전회)에서 이뤄진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다. 중국 공산당은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통해 5년 임기의 중앙위원회를 구성하는데, 6기 7중전회는 6차 당대회에서 구성된 중앙위원회가 임기 중 7번째로 개최한 전체회의라는 의미다.


19세기 후반 이후 태평천국과 의화단, 변법자강 운동과 신해혁명 등 중국 내 근대화 노력은 예외 없이 실패했다. 대안 세력을 자처한 공산당도 1·2차 국공 합작 실패와 극심한 노선 투쟁으로 위기를 겪고 있었다. 1943년 당 주석직에 오르며 최고 권력자가 된 마오쩌둥(毛澤東)은 1945년 역사 결의를 통해 소련식 교조주의와 결별하고 중국 독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국난 극복을 위해서는 사상과 노선 통일을 이룰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두 번째 역사 결의는 1981년 11기 6중전회에서 나왔다. 대약진 운동과 인민공사 설립, 주자파(자본주의 노선 추구) 척결에 이어 문화대혁명으로 이어지는 마오의 독재 여파로 중국은 3류 국가로 전락할 위기였다. 마오 사후 실권을 장악한 덩샤오핑(鄧小平)은 ‘건국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에서 마오가 일으킨 문화대혁명을 좌경 편향 오류로 규정했다. 마오의 신적 지위를 붕괴시킨 사건으로, 중국이 개혁·개방을 추진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두 차례의 역사 결의에서 실사구시를 중시하는 중국 공산당의 전통이 확립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기실 권력의 정점에 서길 원했던 마오와 덩의 정치 행위였을 뿐이라는 게 다수 의견이다.


다음달 8~11일 열리는 19기 6중전회에서 세 번째 역사 결의가 채택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당의 100년 분투의 중대한 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결의’라는 긴 이름의 결의안 초안에 대한 심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역사 결의 채택을 주도하고 있다. 마오는 공산당이 창당된 1921년부터 1945년까지, 덩은 신중국이 수립된 1949년부터 1981년까지의 역사 문제를 청산한 뒤 자신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렸다. 시 주석도 마오와 덩의 뒤를 따르려 한다. 지난 100년의 질곡을 넘어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이제는 시진핑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걸 대내외에 과시할 심산이다.


단, 지금은 권력 투쟁과 노선 갈등, 계파별 견제가 횡행하는 시대가 아니다. 지난 10년에 걸친 대대적 숙청과 정지 작업으로 시진핑 1인 체제가 어느 때보다 공고하다. 앞선 두 차례의 경우처럼 권력을 다지기 위해 전대(前代)의 과오를 비판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시 주석 스스로도 “(개혁·개방) 전후의 30년은 서로 부정할 순 없다”고 천명한 바 있다. 마오와 덩 집권기의 성취를 강조하며 내부 결속을 다지고 휘황한 중국의 미래를 노래하는 식의 역사 결의로 귀착될 가능성이 높다.


개헌을 통해 임기 제한을 없앤 시 주석은 내년 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할 전망이다. 3차 역사 결의 역시 장기 집권을 자축하는 사전 세리머니 성격이 짙다. 의도는 빤히 알겠는데, 21세기 들어서도 역사가 권력자의 입맛대로 재단되는 현실을 지켜보는 게 못내 불편하다.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