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 비'는 없다

[이슈 인사이드 | 문화] 김재희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김재희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빠른 속도의 드럼에 맞춰 신디사이저가 깔리기 시작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박자를 타기 시작할 것이다. ‘테이크 온 미~ 테이크 미 온~’이란 후렴구 멜로디를 듣는 순간 ‘아, 이 노래!’라고 외치지 않을 이는 없을 것이다. 노르웨이 3인조 밴드 ‘아하’가 1985년 선보인 히트곡 ‘테이크 온 미’다. 무려 36년 전 노래지만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13억 회에 달한다. 시간이 흘러도 생명력을 잃지 않았음을 숫자가 증명한다.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은 것도 이 노래가 촉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아하의 전성기를 목격하진 못했지만 테이크 온 미라는 노래는 익숙했기에 ‘아하는 어떤 밴드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아-하: 테이크 온 미’ 팻말이 붙은 극장 안으로 들어서면서 ‘몰랐던 아하의 히트곡들을 실컷 감상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퀸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재현한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러 극장에 가면서 느꼈던 그런 흥분이었다.


안타깝게도 아하의 연대기를 그린 이 다큐에 등장한 음악 중 필자가 아는 노래는 테이크 온 미뿐이었다. 실제로 아하는 첫 정규 앨범 수록곡인 테이크 온 미 이후 이렇다할 히트곡을 내놓지 못했다. 테이크 온 미로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한 아하는 데뷔 직후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고, 이들의 이후 커리어는 자신을 뛰어넘기 위한 도전으로 점철됐다. 성과는 좋지 못했다. 아하는 테이크 온 미 이후 다신 빌보드 1위곡을 만들지 못했다. 다큐에서도 이들은 테이크 온 미를 넘어서는 곡을 끝내 만들지 못한 데 대한 자괴감을 털어놓는다.


휘몰아치는 히트곡들의 향연은 없다. 그럼에도 이 다큐를 끝까지 집중해서 보게 만드는 힘은 아하가 보여주는 뚝심이다. ‘반드시 테이크 온 미를 뛰어넘는 곡을 만들게 될 것이다’라는 주문에 가까운 확신으로 아하는 곡을 만들고 또 만든다. 성격이 제각각인 세 사람은 때론 얼굴을 붉히며 다투다가도 결국 연습실에 모여 합주를 하고 화음을 쌓는다. 보컬 모텐 하켓은 다큐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수 외의) ‘플랜 비’를 생각해본 적은 없다. 플랜 비는 현재의 길이 틀렸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확신의 아하에게 플랜 비란 없었다.


밤을 새며 공부하는데 성적은 나오지 않는 친구를 보는 듯한 짠함이 들 정도로 아하는 인기의 하락 속에서도 ‘이 길이 맞다’는 확신으로 묵묵히 걸어간다. 테이크 온 미만큼 성공한 곡은 만들지 못했지만 40년 간 음악을 놓지 않은 이들은 콜드플레이가 매 인터뷰마다 ‘영감을 준 밴드’로 꼽고, 2015년까지 앨범을 낼 정도로 롱런하는 밴드가 됐다. 불안하지만 확신을 갖고 한 우물을 파면 최상의 결과는 아닐지라도 그 언저리에는 도달한다는 것, 그리고 ‘왜 그때 포기했을까’라는 때늦은 후회는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몸소 증명한다.


취재를 하다가도 처음 가졌던 확신이 숱하게 흔들린다. ‘이 취재원을 컨택할 수 있을까’, ‘과연 인터뷰에 응해 줄까’. 고민 속에 결국 마감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고집을 굽힌다. 확신의 자리에 의구심이 파고드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의구심이 파고드는 순간에 대비해 끊임없이 플랜 비를 마련한다. 의심 속에서도 한 곳을 향해 걸어가는 아하의 모습은 너무나 쉽게 현실과 타협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확신을 가져도 괜찮다’는 위안을 안긴다. 테이크 온 미를 뛰어넘는 곡은 나오지 않았지만 아하는 테이크 온 미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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