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언론계보다 미래가 불투명한 곳이 어디 있나?"

[기자협회 창립 57주년 기획] 기자라는 '업'이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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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기자

 

“기자라는 일의 매력이 없어진 거죠.”


21년차 기자인 최진순 한국경제신문 기자는 저널리즘이라는 ‘업’의 본질, 언론의 혁신이 지향해야 할 방향성에 대해 줄곧 설파해왔다. 그런 그의 눈에도 요즘 언론계에서 잇따르는 기자들의 ‘이탈’은 심상치 않아 보인다. 그가 속한 신문사에서도 최근 기자 여럿이 퇴사했다. 이직과 결혼, 공부 등 이유는 다양했지만 뒤집어보면 이곳엔 ‘비전이 없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사정은 다 비슷하다. 매체 규모를 막론하고 젊은 기자들의 ‘줄퇴사’는 언론계의 공통된 고민이다. 인력 이탈은 꾸준한데 경력 기자 채용은 이를 채우기 역부족이고, 신입 공채도 해를 거르기 일쑤다. 한국기자협회 세계일보지회가 지난달 초 성명을 내고 “이제는 주요 부서마저 데스크/팀장 적임자를 찾지 못하는 지경”이라며 회사 측의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한 이유다.

 

기자사회에 부는 퇴사와 이직 바람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다만 과거엔 기자들이 어느 정도 연차를 쌓고 특정 분야의 경력이나 전문성을 인정받은 뒤 대기업과 같은 안정된 직장으로 옮기는 게 일반적이었다면, 최근 퇴사하는 기자들은 연차가 앞당겨졌고 스타트업으로 가거나 변호사, 노무사 같은 전문직을 꿈꾸는 이들이 많아졌다. 스타트업은 성장 가능성 못지않게 불확실성도 큰 곳이니 ‘왜 하필?’ 이렇게 물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곧장 반문할 것이다. “언론계만큼 미래가 불투명한 곳이 어디 있다고?”


4~5년차, 기껏해야 10년차 전후의 기자들이 퇴사한다고 하면 예전에는 예의상 한번 잡아보기도 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조금만 더 버텨보자”며 토닥이기도 했다. 요즘은 그랬다간 “왜 이러세요?” 하는 싸늘한 시선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기자를) 평생 할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중앙 일간지 7년차 기자인 A가 말했다. 그의 동기 몇 명도 이미 회사를 떠났다. 부장도 그에게 말하곤 했다. 대학원 가서 공부해서 교수하라고.

잃어버린 자부심 낮아지는 자존감

기자가 ‘폼나는’ 직업이던 때가 있었다. 기자만큼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일도 흔치 않았다. 기자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있었고 모임과 출장의 기회도 많았다. 이를 통해 사회에 일정 부분 기여한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것이 기자가 누리는 특권이라면 특권이었다. 대기업과 비교해 급여가 낮더라도, 초과근무시간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더라도 견딜 수 있는 이유였다. “그런 특권 같은 게 다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제 기자실은 그저 책상에 불과한 곳이 됐죠.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경제지 13년차 기자인 B의 말이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촉매제가 됐을 뿐, 기자들을 둘러싼 환경은 이미 상전벽해 수준으로 변했다. 정부 부처나 기업 같은 주요 출입처들은 더이상 기자를 매개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기자 패싱’도 철 지난 논란이다. 유튜버나 블로거 등 1인 미디어가 기자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는 세상이다. 정보를 독점하는 매개자로서의 기자는 더는 존재할 수 없게 됐다. 그런데도 언론사 수는 꾸준히 늘어났고, 기자 수도 많아졌다.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 맞춰 언론사들이 ‘디지털 혁신’을 부르짖었지만, 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은 결론은 결국 ‘조회수’였다.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겠다며 조직개편도 해보고 유튜브나 팟캐스트 등 뉴미디어에도 뛰어들었지만, 비용이 드는 투자 대신 기자를 ‘갈아 넣어’ 조회수, 페이지뷰(PV)를 높이는 손쉬운 전략을 택했다. 대부분이 기자 지망생일 인턴들을 투입하고, 온라인 전담 기자를 따로 두거나 자회사인 닷컴으로 ‘외주’를 줬다. 급기야 조선일보가 만든 조선NS처럼 아예 온라인 뉴스 공급을 전담으로 하는 자회사까지 설립됐다. 온라인 담당 기자들은 아침점심저녁으로 기사를 막는다고 “기사 세끼”라고 자조적으로 부른다.


PV는 연봉 협상의 기준으로 활용되고, 기자들 역시 ‘성과’를 나타내는 지표로 인식한다. 중앙일보 노조가 지난달 노보에서 ‘네이버 많이 본 뉴스 페이지뷰 1위’와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한 것도 이런 인식에서다. 잘 훈련된 ‘디지털 전사’들은 급여 등 조건이 더 좋은 곳을 찾아 움직이고, 아예 IT기업 등으로 이직을 노리기도 한다. 이런 고민은 일선기자들까지 내려왔다. 중앙 일간지 주간지팀 C기자는 “이직을 생각할 여력이 안 되는 기자들조차 그런 생각을 할 정도”라며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했다.

고민은 ‘나중에’ 성장은 ‘알아서’

이런 상황에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이 끼어들 틈이 없다. 언론사 익명게시판이나 ‘블라인드’ 앱 등엔 “배울 게 없다”는 등 회사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지만, 대개는 ‘뒷담화’ 수준에 그친다. 가뜩이나 토론 문화가 부족한 뉴스룸 내부에서 이 문제가 진지하게 다뤄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코로나19로 기자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벌어진 지금은 더 그렇다. “개인을 키울 생각은 않고 방목하고 있다”는 주니어 기자들과 “우리 때는 눈동냥 귀동냥으로 배웠는데 일일이 가르쳐줘야 하냐”는 ‘선배’ 기자들의 인식차만 더 커지고 있다.


사내 재교육 등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도 소홀하다. 사비를 들여 공부하겠다고 휴직을 신청하면 “어디 좋은데 가려고 그러냐”고 ‘의심’한다. 선택지는 점점 좁아진다.


“의미를 찾고 있는 것 같아요.” A기자의 말이다. “나한테 리워드가 돼야 하는 거죠. 내가 성장하면 회사도 같이 성장하는 거고, 나의 성장 없이 회사의 성장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가진 것만큼 회사에서 인정을 안 한다고 느끼니까 다른 방안을 찾아 나서는 거죠. 자유와 책임을 부여해주면 될 거 같은데, 그게 왜 어려운 걸까요?”


3년차인 C 기자는 시간이 나면 한국언론진흥재단이나 외부 기관에서 진행하는 재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동료 기자들끼리는 “뽕 맞으러 간다”고 한단다. 그는 “저널리즘 교육을 받으며 살아있음을 느낀다”며 “본업에서 해소가 안 되니까 자꾸 ‘부’에서 찾게 된다”고 했다.

 

자기 일의 의미를 찾고 있다는 대답은 이른바 MZ세대 기자들에게서 공통으로 들을 수 있었다. 굵직한 기획 기사로 상도 여러 번 받은 중앙 일간지 4년차 기자 D. 그는 이전에 있던 부서에서 “‘워딩’으로 쓰는 기사, 비슷비슷한 기사”들을 주로 쓰면서 기자를 관둘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지금은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게 되게 즐겁구나 하는 걸 느껴요. 모두가 똑같이 쓰는 기사를 쓰지도 않고,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생각보다 결과도 잘 나오니까 뿌듯하고요. 앞으로도 스스로 발제할 수 있는 부서에서 사람들 대부분이 공감할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싶어요.”


올 초 중앙 일간지를 퇴사하고 뉴미디어 스타트업으로 옮긴 E기자의 말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E기자는 취재 방식이나 기사 스타일을 바꾸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 위해 회사에 제안도 해보고, 타사 기자들과 연구 모임을 꾸려 공부도 해왔다. 그러나 “안에서 바꾸려고 노력했는데, 속도가 느리고 불확실하더라”고 그는 말했다. “마지막으로 있었던 데가 법조팀이었는데, 각 사에서 손꼽는 기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훌륭하고 실력 있는 기자들이 만들어낸 기사들이 거의 판박이라는 데서 답답함을 느꼈어요. 일부 단독이 있었지만 대단한 특종이거나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사라기보다 속보성 기사나 갈등을 부추기는 기사가 많았거든요. 거기에 대해 아쉬움이랄까, 안타까움과 고민이 들었어요.”

‘생존’만 남은 각자도생의 시대

굳건한 광고·협찬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 독자의 신뢰를 얻지 않고도 생존 가능한 기형적인 구조 속에서 기자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 기자사회의 결속력도 예전 같지 않고, 어떻게 살아남는지는 각자의 몫이 됐다. B기자는 “기자로서의 자부심이나 자존감보다 생존이 시급하다”며 “매체 이름표고 뭐고 다 떼고도 굶어 죽지 않을 수 있는, 절실한 문제만 남았다”고 했다. “13년차쯤 되니 크게 불만이 없으면 남아 있고 싶다는 사람이 더 많은 거 같아요. 우리 또래는 회사에 더 바라는 게 없거든요. 나를 적절히 괴롭히고 적절한 월급을 달라 이거죠. 매체 브랜드와 관계없이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는 게 더 절실해진 거 같아요. 선배들처럼 이제 출입처 많이 안 옮기고 전문성을 키울 타이밍이 된 거죠.”


A기자도 틈틈이 자기만의 콘텐츠를 채워가며 견디는 중이다. “버티면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연차가 높아지면 회사 안에서 내 지분이 생길 테고, 날 덜 건드릴 정도의 위치가 되면 더 많은 걸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중에 기회가 왔을 때 펼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어요.”


C기자도 아직 미련이 남아 있다. 그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주52시간이 문제겠냐. 노예처럼 일할 수도 있다”고 했다. “불태워야지 미련이 남지 않을 거 같아요. 갈증도 있고요. 아직 애정이 있는 거겠죠? 여한 없이 일해보고 싶어요.”


최진순 기자는 “기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광고·협찬 모델은 너무나 강력하고 여전히 따뜻하며, 이를 “돈독한 유대감 형성”으로 오해하는 경영진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돌파구를 찾는 젊은 기자들, 독자와 소통하며 신뢰를 쌓고 팩트에 충실하면서도 독자가 반응할 콘텐츠를 만드는 기자들, 그런 사람을 도와주는 사회적 모델이 있어야 합니다. 기자들의 중단 없는 실험을 보면 아직 희망이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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