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란 무엇인가

[이슈 인사이드 | 문화] 김재희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김재희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10년간을 이어온 영화 ‘더 트립’ 시리즈가 ‘트립 투 그리스’(2020년)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아쉬움과 함께 ‘왜 마지막 여행지가 그리스일까?’라는 물음이 피어났다.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7관왕의 영국 국민배우 스티브 쿠건이 동갑내기 영국 코미디언 롭 브라이든과 함께 6일간의 미식여행을 떠나는 ‘더 트립’ 시리즈는 2010년 ‘트립 투 잉글랜드’를 시작으로 ‘트립 투 이탈리아’(2014년)를 거쳐 2017년 ‘트립 투 스페인’까지 이어졌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순으로 진행된 이들 여행의 마침표는 그리스에서 찍혔다.


그리스를 고른 데 대한 궁금증은 10년간 영화를 연출한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인터뷰에서 해소됐다. 그는 여러 매체에서 “두 사람의 마지막 여행을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인 오디세이아의 여정처럼 짜고 싶었다”고 했다.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10년에 걸쳐 고국 그리스로 돌아온다. 10년간 여행에 나섰던 쿠건과 브라이든이 여행을 마무리 짓는 것이 오디세우스의 귀향 여정과 비슷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먼 길 돌아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는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영국이어야 마땅하지만 두 사람은 각기 다른 곳에서 여행을 마친다. 쿠건은 예기치 못한 아버지의 죽음으로 하루 일찍 고향인 영국 맨체스터로 돌아와 헤어졌던 아내의 품에 안기고, 브라이든은 함께 여행을 하기로 한 아내와 그리스에서 만나 입맞춤을 나눈다. 쿠건은 영국에서, 브라이든은 그리스에서 아내를 만나는 엔딩을 통해 영화는 사랑하는 이가 옆에 있는 그 곳이 ‘집’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 메시지는 브라이든과 그의 아내가 나누는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여행은 어땠냐” 묻는 아내에게 50대 중반에 접어든 그는 다소 지친 얼굴로 말한다. “끔찍하게도 긴 여행이었어.” 그런 그에게 건네는 아내의 말은 포근하다. “이제 다 끝났어. 당신은 이제 집에 왔잖아(You are home).” 그리스 어느 바다 위에서 아내를 껴안은 브라이든은 어느 때보다 ‘집에 왔다’는 기분을 절감했을 것이다.


11일 개봉하는 영화 ‘싱크홀’도 ‘집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대출금을 최대치로 끌어 모아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주인공 동원과 그의 집들이에 초대된 회사 직원들은 갑작스레 발생한 싱크홀로 500m 깊이의 구덩이에 빠진다. “집 없는 놈은 결혼도 못 한다”며 신세한탄을 하던 김 대리와 인턴 은주는 싱크홀에서 사선을 넘나들다 호감을 싹틔우고, 극적인 탈출에 성공한 뒤 결혼한다. 재밌는 건 커플이 집들이를 하는 영화 마지막 장면이다. ‘대체 집이 어디 있냐’며 한강공원을 헤매던 회사 동료들 눈에 들어온 건 강변에 세워진 레저용 차량(RV) 한 대. 웨딩사진으로 벽이 빼곡한 RV가 이들의 신혼집이었다.


아등바등 돈 모아 3억원에 조금 못 미치는 신축 빌라를 어렵사리 장만하는 동원의 이야기로 막을 연 영화가 바퀴 닿는 곳 어디든 집이 되는 RV에 몸을 싣기로 한 신혼부부의 이야기로 끝이 난다. 집 한 칸 마련하는 게 인생의 목표였던 이들은 하루아침에 땅으로 꺼져 버린 집을 보며 인생에서 진정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을 것이다. 한 끼에 400유로씩 하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른 바다에 몸을 맡기는 호사를 누렸음에도 사랑하는 이 옆에서야 ‘비로소 집에 왔다’는 안도를 느꼈던 쿠건과 브라이든처럼 말이다.

 

김재희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