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언론' 후원은 빠지고 '정부 광고' 배분만 남나

여당 '미디어 바우처법' 발의
정부 광고비 2500억 집행 기준, 국민이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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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이 통과되면 신문, 인터넷신문, 뉴스통신, 정기간행물 등 2500여억원의 광고비를 집행하기 위한 기준을 국민들이 정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28일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참여를 통한 언론 영향력 평가제도의 운영에 관한 법률안’, 일명 미디어 바우처법을 대표 발의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미디어 바우처법은 국민이 일종의 ‘투표권’인 미디어 바우처를 통해 언론사를 평가하고, 그 결과를 집계해 다음 해 정부광고 집행기준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만 18세 이상의 국민에게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전자바우처’를 지급해 선호하는 언론사나 기사엔 ‘미디어 바우처’를, 선호하지 않는 언론사나 기사엔 ‘마이너스 바우처’를 사용케 한다는 게 골자다. 특정 언론사의 정부광고비 독식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바우처 상한제’를 설정하고, ‘가짜뉴스’를 보도한 경우 바우처를 환수하는 조항도 함께 담겼다. 오는 9월 법 통과 이후 내년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고, 방송매체를 비롯한 다른 미디어에 확대 적용하기 위해 관련 작업도 진행 중이다.

 

지난달 28일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당 및 친여 의원 22명은 ‘국민참여를 통한 언론 영향력 평가제도의 운영에 관한 법률안’, 일명 미디어 바우처법을 발의했다. 미디어 바우처법은 국민이 일종의 ‘투표권’인 미디어 바우처를 통해 언론사를 평가하고, 그 결과를 집계해 다음 해 정부광고 집행기준으로 활용하겠다는 내용이다. 사진은 김승원 의원과 장경태, 유정주 민주당 의원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미디어 바우처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방송매체가 빠지고 인쇄매체 중심으로 이번 법안이 발의된 이유는 한국ABC협회의 부수공사 문제 때문이다. 최근 ABC협회가 부수공사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공사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했고, 언론 생태계가 온라인 중심으로 급격히 변화하며 부수공사가 언론 영향력을 평가하는 지표로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이번 법안이 발의됐다.


다만 ABC협회 부수공사의 대안으로 해당 법안이 나온 탓에 언론계에선 그동안 논의했던 미디어 바우처와 이번 법안이 여러 지점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재원의 경우 애초 국고 출연이나 언론진흥기금 일부 투입, 포털 사업자 등으로부터의 추가 징수 등이 미디어 바우처 재원으로 거론됐지만 미디어 바우처법에선 추가적인 공적 재원 없이 정부광고 집행기준으로만 바우처를 언급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선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은 “국민들이 신뢰하는 언론사에 바우처를 후원하고 그것이 그대로 언론사의 재정적 도움으로 연결돼야 하는데, (법안은) 광고주의 집행 기준으로서만 바우처를 활용한다”며 “바우처 제도의 취지에서 한 발 옆으로 빠져 있는 모양새라 상당히 아쉽다. 당장은 정부광고 예산을 재원으로 시작하더라도 추후 별도의 재원을 마련해 실제 국민들이 언론사에 후원할 수 있는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으론 정책홍보 목적이 있는 정부광고 예산을 그대로 바우처 예산으로 쓰는 건 논리적 비약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마이너스 바우처로 ‘선악구도’ 우려... ‘가짜뉴스 보도땐 환수’ 조항도 논란

마이너스 바우처와 가짜뉴스 환수 조항 등이 법안에 담긴 것 역시 원 취지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됐다. 바우처는 ‘나쁜’ 언론사에 대한 부정적 피드백이 아니라 ‘좋은’ 언론사에 대한 긍정적 피드백이라는 점에서 뿌리 깊은 언론 불신 문제를 다소나마 해결해줄 수 있는 제도로 평가됐다. 그러나 법안은 미디어 바우처 총액의 1/4에 해당하는 금액의 마이너스 바우처를 이용권자에게 지급함으로써 ‘나쁜’ 언론사에 대한 부정적 피드백을 허용했다. 최종 수급액 역시 미디어 바우처에서 마이너스 바우처를 뺀 금액으로 산정한다고 적시했다.


전대식 전국언론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콘텐츠에 찬반이 어디 있나. 의견도 있을 수 있는데 마이너스 바우처로 절대악 절대선 구도가 만들어질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정파성이 강한 곳에 재원이 가고 중도 언론은 오히려 설 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 현재 여론 지형에 마이너스 바우처는 답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가짜뉴스를 보도한 경우 바우처를 환수한다는 조항 역시 문제시됐다. 법안은 가짜뉴스에 대해 ‘정정보도 신청이 인용되는 경우’로 명시했지만, 허위조작정보가 아닌 단순 오류나 실수로 인한 정정보도에도 적용될 수 있어서다.


다만 김승원 의원실은 “정정보도가 다 가짜뉴스가 아닌데 과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어, 이 조항은 법안 심사 과정에서 다시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매출 큰 매체들, 바우처 상한제 걸려

바우처 상한제와 관련해서도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법안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매출액 기준에 따라 그 이상인 사업자는 미디어 바우처 총액의 0.5%, 그 외 사업자엔 1%까지만 바우처를 받을 수 있도록 제한했다. 지난해 인쇄매체에 지급됐던 정부광고비 2500억원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전자는 12억5000만원, 후자는 25억원까지만 정부광고비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추가 재원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지만 만약 기존 정부광고비 수준 그대로 적용된다면 지난해 기준 상위 20위 언론사에 집행된 정부광고비는 최소 반 토막이 난다. 게다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매출액 기준이 2000억원으로 논의되는 것을 감안하면 동아 중앙 조선 매경 한경의 경우엔 정부광고비가 거의 1/6로 줄어든다. 이 때문에 만약 법이 통과되면 이들 언론사에서 법인 ‘쪼개기’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한편 주요 언론사들이 독식하던 정부광고비에 상한이 생기면, 이 틈을 타 신규 언론사들이 대거 설립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김선호 책임연구위원은 “대규모 언론사의 경우 상업광고로도 상당 부분 재정을 충당할 수 있기에 상한제는 공적 자원의 재분배, 형평성의 관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중소 규모 언론사들이 과거보다 정부광고를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서 신규 언론사들이 영업 목적으로 많이 설립될 수 있고, 또 시장에서 잘못 신호가 읽히면 이들이 독자들이 원하는 어뷰징성 기사만 생산하는 등의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 현실적인 타당성 검토를 더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법안이 가진 장점이 크다며, 더 다양한 논의를 거쳐 실현가능성을 높이자는 목소리도 컸다.


최영묵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학부 교수는 “현재 정부광고를 발행부수 등을 통해 집행하는데 근거가 굉장히 취약하고 자의적”이라며 “명확하고 투명한 기준에 의해 정부광고를 집행하려면 국민이 직접 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가뜩이나 주류 언론이 국민에게서 멀어지며 확증편향만 강화되고 공적인 이슈나 함께 풀어갈 문제를 논의하지 않게 됐는데, (이 제도를 통해) 변화를 줄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봉현 한겨레신문 저널리즘책무실장도 “정부광고와 바우처를 연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고 더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면서도 “이때까지 나온 (법안) 중에선 독자들이 주체가 돼 언론사의 품질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법안에 장점이 많은 것 같다. 더 많은 논의를 통해 실현 가능한 쪽으로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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