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위원회가 창립 40주년을 맞아 지난 27일 개최한 정책토론회에서 이석형 위원장은 “중재위원 증원, 열람차단청구권 도입은 반드시 이번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특히 열람차단청구권에 대해 “피해자와 언론사 권익의 조화로운 실현”이라고 강조하며 “기사 자체를 삭제하는 게 아니니 언론의 입장도 배려할 수 있고, 다른 일반인들이 열람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이니 피해자 권익도 보호되는 절묘한 권리의 균형”이라고 설명했다.
기사 열람차단청구권을 명문화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데, 민주당 전임 지도부가 ‘가짜뉴스 3법’으로 묶어 우선 처리를 강조할 만큼 의지를 보였던 법안이다. 아직 법적인 근거가 마련되기 전인데도 언론중재위 조정 과정에서 이미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어 최근 3년간 기사 열람·검색 차단을 통해 피해가 구제된 비율이 30%가 넘는다. 온라인상 보도에 대해선 정정이나 반론 보도보다 기사삭제 등의 ‘신속한’ 피해구제를 원하는 신청인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27일 토론회에서 차기현 광주지방법원 판사는 “실제 재판을 해보면 기사를 삭제해 달라는 청구가 많다. 정정, 반론이 아닌 기사 자체가 인터넷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는 걸 현장에서 느낀다”며 “피해구제 방법으로서 열람차단청구권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문 기사나 방송 보도에 대한 정정·반론엔 인색하다는 평을 듣는 언론이 인터넷 기사에 대해선 수정이나 열람·검색 차단에 상대적으로 쉽게 응하는 경향도 있다. 기사를 아예 삭제하는 것과는 달라 부담이 덜 하다는 게 나름의 이유인데, 실질적으로 이용자들이 문제가 된 기사에 접근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열람차단의 효과는 기사삭제와 거의 같다. 게다가 문제 있는 보도를 눈에 보이지 않게 차단하는 데 그쳐 버리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기록으로 남길 기회가 사라지고, 그럴 이유도 없어진다.
구본권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은 “언론이 영향력과 책임성을 갖는 기본은 결국 기록인데, 기록이 보존돼 있지 않으면 책무성을 요구하기 난감해지는 상황이 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그는 “열람차단이 아니라 기사의 원본을 보존하면서도 기사가 마구 검색되고 유포되는 상황을 제한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추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차기현 판사는 “보도의 내용이 공적 사안이고 사실 여부 그 자체가 공적 토론을 요하는 내용이어서 단순히 삭제하는 것으로 끝나 버리면 공론장 활성화에 저해된다고 판단될 땐 반론과 정정보도로 해결하고, 순수하게 사생활에 관한 것에만 한정해서 기사삭제나 열람차단이 가능하도록 중재법에 명시”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언론중재위가 최근 발간한 학술지 <미디어와 인격권>에 게재된 ‘디지털 시대 피해구제수단으로서 기사삭제 및 열람차단에 관한 연구’(박아란, 김현석) 논문도 “문제가 된 기사에 정정보도문이나 반론보도문을 함께 실어서 원고의 침해된 인격권을 회복할 수 있다면 기사삭제는 후순위 수단으로서 작동되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한 바 있다. 논문은 또 언론사 등이 기사삭제나 열람차단에 대한 자율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논문은 “어떤 경우에 어떤 절차를 거쳐서 누가 삭제나 열람차단을 결정할 것인지를 규정해두는 것은 언론사 외부로부터의 부당한 삭제청구에 대해 언론 자유를 지키기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언론사 내부에서의 부당한 압력으로부터 기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작동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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