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성,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언론 다시보기] 정은령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장

정은령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장

▲정은령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장

1월28일 SBS <끝까지 판다> 팀의 월성 원전 관련 단독보도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내용 못지않게 취재과정에서 검증한 자료를 공개한 방식이었다. 취재진은 검찰의 산업통상자원부 직원 3명에 대한 공소 사실과 이들이 삭제한 파일 530개 목록을 누구나 접근해서 확인할 수 있도록 SBS 뉴스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취재 기자는 앵커와의 대화 말미에 “해당 내용은 검찰이 아닌 적법한 통로로 입수했다는 점을 분명히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언급했다. 최근 몇 년간 특히 검찰 관련 보도를 둘러싸고 취재경위에 대해 뉴스 이용자들이 “빨대” 등의 단어를 동원하며 적대감에 가까운 의심을 품어온 것을 직시한 발언이었다. 취재자료 공개는 SBS의 경우가 예외적인 것은 아니다. 오마이뉴스는 19·20대 국회의원 499명이 9년간 지출한 정치자금 4090억여원을 전수분석해 의원별로 정치자금의 사용일자, 금액, 사용처 등을 정리했고, 시민 누구나 그 내역을 PDF로도 확인할 수 있도록 인터넷에 게시했다. 뉴스타파는 후원회원들에게 국회, 정부, 대법원 등에 근무하는 고위공직자 재산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와 뉴스타파의 자료가 법으로 보장된 정보공개에 의해 취득된 것이라면, SBS의 경우는 정보공개청구로는 접근할 수 없는 자료다. 양자의 공통점이라면 둘 다 취재과정에서 획득한 정보를 투명하게 뉴스 이용자들에게 공개했다는 것이다.


온라인 기반 24시간 뉴스 생산환경이 언론에 가져온 변화는 속보성의 강조, 기자 노동 착취라고 할 만한 물량공세에 그치지 않는다. 취재규범도 변화된 환경에서 재정의되고 있다.


현재 뉴스 제작 환경의 특징은 뉴스의 생산자와 소비자, 전문가와 아마추어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튜버들이 기자들과 섞여 사건현장을 취재하고, 실시간으로 결과물을 공개하는 상황에서 인터넷 공간에는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도 기자들이 취재한 버전과 유튜버들이 취재한 버전이 동시에 떠돌아다닌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이 스스로 말하게 한다”라는 객관주의의 고전적인 금언만으로는 뉴스 이용자들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보도하면 내용을 보고 판단하면 되지, 구차하게 경위를 왜 밝히느냐는 기자 중심의 발상은 뉴스 이용자들과의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기자들은 왜 유튜버와 다르게 사실을 보도한 것인지, 왜 기자의 취재가 유튜버의 것보다 신뢰할 만한지를 뉴스 이용자들에게 설득해야 한다. 기자인 나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이 사실을 취재했으며, 왜 나의 증거가 다른 증거보다 믿을 만한지 그 정당성을 밝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당신의 일을 보여주라(Show your work)”는 것은 취재 투명성이 무엇인지를 압축한 조언이다. 어디까지 어떻게 공개해야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느냐는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취재과정을 드러내면 취재 독립성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염려도 있다. 그러나 취재과정의 불투명성을 정당화하는 이런저런 구실들이 그렇지 않아도 방법론적으로 체계화되어있지 않은 한국 언론의 ‘검증 규범’을 더욱 취약하게 한다. 언론학자 제인 싱어는 취재과정을 투명하게 드러냄으로써 기자와 뉴스이용자는 “상호 의존적인 진실의 설명자”가 된다고 했다. 기자가 투명하게 드러낸 취재과정을 납득할 수 있을 때, 뉴스 이용자들은 보도내용을 신뢰하게 된다. 그 신뢰가 궁극적으로는 취재결과를 보호한다.

정은령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장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