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배제' 도입, 과잉규제이자 이중처벌"

['징벌적 손배제 타당한가' 긴급 토론회]
"언론 자유, 무한 자유 아냐" 주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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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피해에 최대 5배까지 배상 책임을 지울 수 있는 ‘상법 개정안(징벌적 손해배상제)’이 과잉규제이자 민·형사상 이중처벌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27일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등 언론 3단체 주최로 열린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타당한가’ 긴급토론회에선 언론 개혁은 필요하지만,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많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발제를 맡은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미권계에서 명예훼손과 관련한 징벌적 손해배상 인정이 가능한 것은, 다른 법령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수준이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라며 “반면 우리나라 법제에는 모욕죄 및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등을 두고 있어, 권력자 및 정부에 대한 표현의 자유 보장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없다. 게다가 개인이 유포하는 허위조작정보가 사회적 혼란을 상당히 가중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정안은 이미 자율적으로 팩트체킹을 하고 있거나 언론중재법 상 피해자 구제조치를 마련하고 있는 언론사 등을 대상으로 규제를 추가하는 것이라, 과연 허위조작정보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안일지 그 실효성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도 “형사처벌을 폐지하든가 위자료 현실화 등을 시행해본 다음에 여전히 문제가 생긴다면 징벌적 손배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보지만, 이번 상법 개정안은 고의와 중과실 등 더 폭넓은 범위에서 언론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어서 정청래 안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며 “전반적인 사회 요구도 있고 해 법안 통과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생각하는데 공직자, 대기업 등엔 적용하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을 추가해야만 한다. 헌법재판소나 대법원 판례만 봐도 공직자에 대해선 상당수 책임 입증을 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 역시 “가짜뉴스 대책을 언론 피해 보도 규정이 아닌 상인의 상행위 관련 규정에 넣어 해석의 여지가 굉장히 넓어졌다”며 “이미 대법원이나 헌재는 언론 보도에 따른 책임을 판단할 때 사실상 거의 악의에 가까운 정도의 특별한 고의를 새로운 요건으로 추가해 인정하고 있는데, 과실이 중과실이 되었으니 오히려 언론의 책임이 좁아진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 같다. 게다가 고의나 과실을 결정할 주체가 주로 정부나 힘 있는 기관이 되기 때문에 규정력에서 소수자와 현저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제도 도입에 따른 현장 기자들의 위축 효과를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동훈 기자협회장은 “기자들은 형사고소를 당하고 손해배상을 요구받으며 심지어 급여가 가압류되기도 한다. 승소·패소를 떠나 기자들 입장에선 소를 제기당하는 것은 물론 언론중재위에 불려가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이며 압박”이라며 “징벌적 손배제는 기자들의 정상적인 취재 및 기사작성 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다. 비단 권력 감시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호소에도 보도 이후 가해자의 항의와 법적 대응 등이 예상될 경우 기사쓰기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정암 매일신문 서울지사장도 “규모가 큰 언론사들은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중소 언론, 지역 언론에선 기자들이 소송에 개인적으로 대처해야 하고 손해배상이 나올 경우 기자가 책임져야 하는 구조다”라며 “5배까지 손배액이 커지면 결국 취재 보도 활동은 극명하게 제약이 될 것이고 사회적 약자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미디어언론상생TF 단장인 노웅래 의원은 “징벌적 손배제의 타깃은 언론이 아니라 ‘가짜뉴스’”라며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라 고의적이고 중과실인 경우에만 처벌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노 의원은 “문제는 기존의 법과 제도로 피해 구제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고의성 등을 판단하기 쉽진 않겠지만 그것도 세계 기준에 맞춰 준용한다면 얼마든지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며 “언론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지만 그 자유는 무한 자유여선 안 된다. 건강한 언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손배제를 도입해 ‘가짜뉴스’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실질적인 언론 피해 구제책이 될 수는 없다며, 보다 근본적인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아란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자꾸 이런 논의가 나온 배경에 대해 언론계가 자성하고 고민해야 한다”며 “정파적·편파적 보도에 문제가 제기되는 한편 미디어 이용자들도 편향적으로 뉴스를 소비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 언론도 이용자도 편향적이라면 언론이 먼저 나서서 자정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훈 기자협회장은 이와 관련 “언론개혁은 필요하다”며 △윤리강령·팩트체크 강화 등 언론계의 자정 △언론법과 제도 개선 △시민 대응 지원 등 삼박자를 통해 언론개혁을 수행하자고 제안했다. 양홍석 변호사도 “정정·반론 보도는 플랫폼 활성화 이전에 나왔던 제도인데 지금은 기사 유통 환경이 달라져, 플랫폼을 통해 피해 확산의 속도와 범위가 빠르고 넓어지고 있다”며 “재판 결과 승소를 하더라도 이미 피해는 입을 대로 입었기 때문에 실제 손해배상액이 적절한 피해 구제가 될 수 없다.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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