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했다'는 결과 받았지만… 응답없는 CJB와 대전MBC

[컴퓨터를 켜며] 박지은 기자협회보 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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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은 기자협회보 편집국 기자

▲박지은 기자협회보 편집국 기자

“매번 눈앞에 나와서는 죄송한 척하고 합의안에 동의하겠다면서도 하루를 못가 다시 입장을 번복하는 일이 매번 있었다.”(고 이재학 PD 유가족)


“국가인권위원회 권고가 나왔으니 당연히 대전MBC 측에서 당사자인 저에게 어떠한 답변이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기사를 통해서 대전MBC 입장을 알게 된 황당한 상황이다.”(유지은 아나운서)


지난달 대전MBC는 채용 성차별 관련 인권위 권고를, 청주방송은 고 이재학 PD 사망 사건 진상조사 결과를 받았다. 모두 이들 회사가 해당 사안에 책임이 있다는 결정이었다. 이번 발표로 그동안 고통 속에 살았던 피해 당사자들이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진 것도 잠시, 사측의 무책임한 태도에 이들의 사정은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  


청주방송 구성원들을 취재하며 알게 된 고 이재학 PD는 “누구보다 방송에 열의가 있고 정말 착했던 사람” 그리고 “모진 갑질을 많이도 당했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이재학 PD는 “후배들을 위해” 프리랜서로 일한 지 14년 만에 처음으로 처우개선을 요구했지만,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 통보를 받고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을 하다 지난 2월 스스로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다.


‘CJB청주방송 故 이재학 PD 사망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는 지난달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진상조사를 발표해 “이재학 PD의 사망은 청주방송의 일방적인 해고와 소송 방해 행위가 작용한 결과”라고 밝혔다. 이번 진상조사는 CJB청주방송 故 이재학 PD 대책위원회(청주방송 대책위)와 유가족, 전국언론노조, 청주방송 사측이 함께 참여해 나온 결과였다. 최종 절차로 이재학 PD에 대한 명예회복 방안과 청주방송 비정규직 고용구조 및 노동조건 개선 등의 이행요구안 합의가 남아있다. 하지만 지난 7일 최종 회의 무단 퇴장에서 보듯 청주방송 사측은 진상조사 결과 이행을 지속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유지은 아나운서는 대전MBC에서 ‘뉴스데스크’, ‘9시 라디오뉴스’ 등을 진행하다 프로그램 하차 통보를 받아야 했다. 유 아나운서가 지난해 6월 인권위에 채용 성차별 진정서를 접수하자 돌아온 결과였다. 지난해 10월 인터뷰를 위해 만난 유 아나운서는 “이대로 자신이 목소리 내기를 포기한다면 여성 아나운서 비정규직 고용 문제는 또다시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지난달 17일 대전MBC가 채용 성차별을 했다고 인정하며 “대전MBC가 1990년대 이후 채용한 정규직 아나운서는 모두 남성이고 1997년부터 채용한 15명의 계약직 아나운서와 5명의 프리랜서 아나운서는 모두 여성이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대전MBC에 여성 아나운서들의 정규직 전환과 손해배상 등을 권고하고 MBC에도 유사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역 방송국들과 협의하라고 주문했지만, 이들 모두 대책을 내놓지 않는 실정이다.


피해 당사자들은 사측에 권고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청주방송 대책위는 지난 6일부터 청주방송 사옥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고, 9일부터 국회 앞에서 릴레이 1인 피켓 시위를 시작했다. 오는 17일에는 진상조사 결과 이행 약속을 거부하는 청주방송을 규탄하는 총력 결의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는 지난 8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에 인권위 권고 이행에 나서라는 요지의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번 사안은 청주방송과 대전MBC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많은 방송사에서 성차별적이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채용 구조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청주방송 진상조사위는 “왜곡된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는 여러 방송사에서 동일하게 나타는 문제”라며 “지난 27년간 지상파 방송국은 외주제작 프로그램 편성 의무비율을 적용받았고, 방송국의 광고매출 감소와 연동되어 방송 산업의 비정규직이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두 방송사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태 해결에 나서는 것으로 방송사 내부의 불합리한 관행의 고리가 끊어지길 바란다.


jeeniep@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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