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절대 악으로 상정하는 보도 경향 극복해야"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 언론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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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남북교류 활성화를 위한 언론회의’와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로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 언론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남북교류 활성화를 위한 언론회의’와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로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 언론토론회’가 열렸다.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군사행동까지 예고하면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강경 대응을 보이면서 남북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언론이 이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선제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17일 ‘남북교류 활성화를 위한 언론회의’와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 언론토론회’에선 언론계·학계 전문가들이 모여 북한 보도에 있어 언론의 성찰과 책무 등을 논의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지금 국면이 매우 엄중하지만 아직 무력 충돌 단계는 아니기 때문에 너무 조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걱정스러운 건 언론 보도다. 이미 북한이 대남 삐라를 뿌린다든지 개성공단에 북한군이 들어간다든지 하는 보도가 많이 나왔는데 지금의 상황에 대해 언론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몇 년간 쌓아왔던 것들을 내부에서 악화시키거나 허물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선악 개념에서 북한을 절대 악으로 상정하는 보도 경향을 극복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오늘의 사태가 초래된 원인은 우리 정부가 4·27 판문점 선언의 기본 합의사항인, 전단지 살포 금지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 탓으로만 돌리기보다 우리부터 합의를 철저하게 준수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미사일, 방사포 등 북한의 군사 훈련 행위를 언론이 어디까지 도발로 또는 통상적 훈련으로 볼 것인지도 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전 장관은 “지금은 북한이 UN 제재 위반이 아닌 포사격 훈련이나 순항미사일 시험을 해도 북한과 무슨 협력을 하느냐는 비난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며 “제재 위반은 규탄하되 통상훈련은 우리가 위협으로만 보고 그에 대비하면 된다고 본다. 그런데 정부가 강경 대북 여론을 눈치 보다가 사회적 분위기가 대북정책을 전개하기엔 그 문턱이 크게 높아진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 전 장관은 이와 함께 △언론과 이른바 전문가집단의 오보 카르텔 형성 △‘가짜뉴스’의 양산 △현실에선 줄었지만 언론에는 ‘변함없는’ 북한도발 △일부 언론의 ‘묻지마’ 식 북한 보도 관성 지속 등을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사실에 기초하고, 사실관계가 부족할 땐 상식과 논리적 정합성에 바탕을 둔 보도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에선 언론의 비판 보도가 부족했다는 문제 제기도 나왔다. 신준영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사무국장은 “이런 사태가 발생하고 나서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생각해봤다. 언론의 역할을 묻는 자리이니 얘기를 해보면 결국 대북 정책이 제 갈 길을 잘 가고 있는지, 성공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언론의 엄중한 비판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며 “좀 더 강력하게 대북정책에 문제를 제기하고 정책 방향을 바꿀 정도로 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언론계가 그 부분에 대해서도 성찰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만 토론회에선 북한 보도의 현실적 한계를 피력한 전문가들도 많았다. 표언구 SBS 남북교류협력단장은 “남북교류협력단장으로선 장관님 말 등에 100% 동의하지만 지난 25년간 기자 생활을 생각하면 북한 보도의 경우 특히 오보와 특종은 한 끝 차이었다”며 “취재 대상의 불확실성, 또 정보원을 특정할 수 없다는 점 등 북한 취재엔 어려운 부분이 많다는 점을 좀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김현경 MBC 통일방송연구소장도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북한 뉴스는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시장”이라며 “이 때문에 저질 상품이 팔리는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은 “김정은 사망설 때도 정부가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을 불러 상황만 잘 설명했으면 정리가 됐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노력 없이 언론 탓만 하니 언론에 모든 짐을 맡기는 기분”이라며 “한편으로 기관이나 학계에서 언론에 전문성을 키우라는 얘기를 많이 하지만 실제 언론사가 체계적으로 북한 전문가를 키우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소장은 그럼에도 언론이 계속 전문가를 키우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용현 교수도 “전문기자가 주요 언론사에 최소 한두 명 정도는 있어야 북한 보도에 무게 중심을 잡아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표언구 단장은 “북한 문제에 있어 기자나 전문가들이 정치권보다 더 확증편향이 심한 것 같다”며 “선입관을 버리기 위해 심도 있는 학습과 토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맹찬형 연합뉴스 통일언론연구소 부소장도 “한국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PD연합회가 함께 만든 ‘평화통일과 남북 화해 협력을 위한 보도 제작 준칙’이 있다. 이를 언론계에 좀 더 알리고 다시 기본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상기시킬 필요가 있는 것 같다”며 “결국 언론이 할 수 있는 건 합리적 의심과 추론인 것 같다. 그래야 언론이 북한 보도에 있어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가 민간 교류를 중시해야 하고, 특히 남북 언론이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맹찬형 부소장은 “정부가 북미 대화 촉진에 전력을 쏟으면서 민간 교류가 뒤처졌고 언론은 그 중에서도 목록 저 아래에 있다는 얘길 들었다”며 “만약 민간 채널이 살아 있었으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이렇게 막막하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북측 관영 매체들의 단선적인 구조와 우리의 복잡한 언론 지형이 나란할 순 없겠지만 정부가 언론 교류 역시 남북관계에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종필 기자협회 남북통일분과위원장(내일신문 정치팀장)도 “2017년 기자협회가 ‘전쟁 반대 평화통일 염원’ 시국 성명을 낸 적이 있다. 이처럼 언론은 대중보다 반걸음 앞서가는 책무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북한과 대화와 소통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비정치적인 문화체육 분야에서 남북 언론이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도록 정부가 노력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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