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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워킹맘 앵커 고군분투 책에 담아… '내 자리는 내가 정할게요'

[인터뷰] 김지경 MBC 기자

김고은 기자2020.06.17 16:04:38

시작은 미약(?)했다. 정치팀 기자로 야근을 밥 먹듯 하던 어느 날, 난데없이 토요일 아침 뉴스 앵커로 부름을 받고 낑낑대며 의상 피팅을 하다 ‘앵커 중에 77사이즈는 정말 없는 거야?’라는 울분 섞인 의문을 품은 데서 모든 것은 시작됐다. 이 ‘부조리’를 전해 들은 지인들은 킥킥대며 글을 써보라고 권했고, 그렇게 시작한 글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내 자리는 내가 정할게요’는 김지경<사진> MBC 기자가 평일에는 정치팀 기자로, 주말에는 아침 뉴스 앵커로 일하며 좌충우돌, 고군분투한 경험을 담은 책이다. 애초 카카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던 당시 ‘77사이즈 아줌마의 앵커 도전기’였던 제목이 다소 도발적인 선언으로 바뀌게 된 사연은 이렇다.



첫 의상 피팅에서 상처받고 다이어트에 도전했다가 3일 만에 실패한 뒤, 앵커로서 김 기자가 처음 맞닥뜨린 도전은 바로 ‘자리’ 문제였다. 중년 남성-젊은 여성 앵커의 조합만큼이나 남녀 앵커가 각각 화면의 왼쪽과 오른쪽에 서는 자리 배치가 ‘관행’처럼 여겨지던 때였다. 첫 리허설에서 ‘오른쪽 자리’로 안내받은 김 기자는 같은 초보 앵커인 후배 기자가 “남자 앵커이기 때문에” 화면 왼편에 서서 그날의 주요 뉴스를 전하는 메인앵커를 맡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후배와 동료, 가까운 선배들도 자리 문제를 꼭 제기하라고 거들었어요. 아무래도 남자 앵커가 선배고 여자 앵커가 후배면 문제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좋은 선례’를 만들어달라고 하더군요.”


요구는 받아들여졌고, 변화는 이내 물꼬를 텄다. 몇 달 뒤 KBS에선 최초로 40대 ‘여기자’가 메인앵커에 낙점됐고, MBC는 이달 말 개편에서 아침 뉴스 앵커에 역시 40대 중반의 여성 기자를 기용했다. 처음 뉴스 진행을 시작하며 가졌던 “다른 40대 여성 앵커의 등장을 막는 일만은 없도록 하자”는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김 기자는 “이런 발탁이 이례적인 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커다란 변화의 시작점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그 길에 ‘여자 앵커와 남자 앵커의 자리를 바꾸자!’고 했던 내 요구가 아주 작은 돌멩이 하나쯤은 됐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3개월만 버티자’ 했던 뉴스 진행은 1년을 더 넘겨 지난달 끝났다. ‘한미 동맹’을 ‘한미 동생’으로 발음하고, 뉴스 특보 진행할 때를 가장 아찔한 순간으로 꼽은 그는 “앵커는 내가 잘하는 영역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영광이었고, 많이 배운 감사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더는 ‘토요일 새벽 3시 기상’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정치팀 기자로서 주말에 출근하는 것이나 16년차 기자로서의 일상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자다 깬 아기가 울면서 엄마 대신 할머니를 찾아도 “담담하려 애쓰”고, 가끔은 “뭐 하나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휘청이는 워킹맘이지만, 바로 그래서 “이 책이 다른 워킹맘들에게 공감과 위안을 주길 바란다”고 했다. 낄낄 웃음이 나올 만큼 솔직하고 재미난 이야기와 수화통역사나 기상캐스터, 리포터 등 뉴스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동료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관심은 덤이다. 그리하여 그는 세상의 모든 ‘언니’들을 향해 이렇게 위로와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우리 죽지 말고 잘 살아남자. 세상이 조금씩은 계속 바뀌겠지.”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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