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보도, 이젠 확실하게 AS 해드립니다

조선일보 '바로잡습니다' 신문 2면에 상시 배치
KBS, 인터넷뉴스 수정·삭제 가이드라인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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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보도, 그냥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지난 1일 조선일보 1면에 ‘오직, 팩트’라는 제목을 단 안내문이 실렸다. 이날부터 조선일보 2면에 ‘바로잡습니다’ 코너를 배치한다는 내용이었다. 판결이 났다거나 기사의 당사자가 정정보도·사과문을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언론사가 먼저 나서서, 그것도 정기 코너로 자사 기사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선언에 언론계의 이목이 쏠렸다.


코너 배치 이유에 대해 조선일보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와 거짓 뉴스가 범람하는 소셜미디어 시대에 철저한 사실 보도만이 언론의 존재 가치”라면서 “언론은 사실과 다른 보도를 했을 때 이를 신속히 바로 잡을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코너 운영 원칙으로는 ‘잘못을 바로잡고 사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보를 낸 경위까지 밝히겠다’, ‘보도 후 오래 지난 시점에 정정 보도를 게재하는 경우 이유를 밝히겠다’ 등을 내걸었다. 언론사로선 멋쩍고 부끄럽게 여겨온 일이다.


조선일보가 지난 1일자 1면에 게재한 ‘바로잡습니다’ 코너 신설 안내문. 이날부터 조선일보 2면에 오보를 정정하는 코너가 정기적으로 배치됐다.

▲조선일보가 지난 1일자 1면에 게재한 ‘바로잡습니다’ 코너 신설 안내문. 이날부터 조선일보 2면에 오보를 정정하는 코너가 정기적으로 배치됐다.


조선일보가 이런 인식을 깨고 정정 보도에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엔 미디어 환경 변화가 있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어 기성언론의 위상은 떨어지고 있고, 생존까지 위협받는 상황이다. 선우정 조선일보 뉴스총괄 에디터는 “올해 창간 100주년을 맞아 세계 언론인과 언론학자를 취재한 ‘진실의 수호자’를 연초에 기획·보도하는 과정에서 ‘사실 보도만이 언론의 존재 가치’라는 원칙을 재확인했고, 정정 강화는 이를 위한 기초 중 기초 노력이라고 판단했다”며 “쉽게 말해 스스로 틀린 것조차 정정하지 않는 언론이 소셜미디어와 다른 점이 무엇이며, 이 시대에 무슨 존재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잡습니다 코너에 실리는 내용은 조선일보 독자서비스센터를 통해 접수된 독자의 의견과 지적, 언론 비평 매체 보도, 출입처와 취재원의 직간접적 항의 등을 바탕으로 한다. 편집국 국부장단이 이 가운데 ‘팩트가 틀렸거나 팩트 전달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잘못’을 선별해 정정보도로 내보내는 과정을 거친다. 선우정 에디터는 “장기적인 목적은 크로스체크와 반론을 한층 더 강화해 언론 상품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며 “언론의 자체 점검은 권력 감시라는 언론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라고 말했다.



최근 조선일보뿐 아니라 언론사가 자사 보도를 되짚고, 공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하는 모습은 하나의 흐름이 되고 있다. 한겨레신문의 ‘윤석열 검찰총장 별장 접대 의혹 기사’에 대한 공개 사과문(5월)과 저널리즘책무실 신설(3월)도 대표적인 사례다.


이봉현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실장은 지난 4월 책무실의 역할을 설명하는 칼럼에서 “동료들과 신뢰를 되찾는 노력을 하면서(…)취재보도준칙과 공정성, 투명성, 정확성 등 저널리즘 원칙에 비춰 한겨레 콘텐츠를 모니터링하고 그 내용을 알릴 생각”이라며 “‘책무’를 뜻하는 영어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도 공적인 일을 하는 이가 자기 일을 시민들에게 ‘설명할 책임’을 말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기사에 설명을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언론사 신뢰도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신문협회 산하 신문발전연구소가 지난해 3월 공개한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미디어참여센터·뉴스신뢰프로젝트팀의 연구에 따르면, ‘취재 과정 부연 설명’ 박스를 덧붙인 기사가 그렇지 않은 것보다 언론사 신뢰도 평가 항목 12가지 중 11가지에서 더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KBS는 지난 4월 인터넷뉴스 수정·삭제 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기사 내용의 오류가 있을 경우 본문에 ‘알립니다’를 명시 하고 수정 사항을 설명한다.

▲KBS는 지난 4월 인터넷뉴스 수정·삭제 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기사 내용의 오류가 있을 경우 본문에 ‘알립니다’를 명시 하고 수정 사항을 설명한다.


같은 맥락에서 KBS도 지난 4월9일 인터넷뉴스 수정·삭제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설명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기사 내용의 오류, 그래픽·자막 오타, 인명·직책 오기, 앵커멘트나 방송사고 등 문제가 있을 경우 본문에 ‘알립니다’ 또는 ‘바로잡습니다’를 명시하고 수정 사항을 설명한다. 황동진 KBS 디지털뉴스제작부장은 “과거에도 수정 사유를 적시한 적이 있지만 담당자나 상황에 따라 기준이 달랐다. 이번에 관련 조항을 손보면서 공식적으로 시행하게 된 것”이라며 “뉴스의 투명성을 강화해 언론 신뢰도를 제고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속보가 중요시되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실수 또는 오보는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 언론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으로 ‘사후 관리’가 부각되는 이유다. 한편에선 과거 심의실처럼 회사 차원의 보도 평가 기구가 신설돼 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때 주요 종합일간지 대부분에 심의실이 있었지만, 현재는 서울신문과 동아일보 등만 운영하고 있다.  


최진주 전국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장은 “속보 경쟁 속에서 실수나 함량 미달, 사실 관계 확인을 충분히 거치지 않은 기사가 나갈 가능성이 커졌다. 사후적이라도 빨리 고치고 뉴스 고객들에게 설명해야 한다”며 “기자들의 자치적인 활동인 노조 민실위 외에 심의실 등 회사 차원의 기사 품질 관리 기구가 매우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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