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보도 논의를"... 국민일보 내부 목소리 분출

노조의 공개 비판 후 공론화 움직임
편집·종교국 차원서 표현자제 협의
주니어들 "관련 보도기준 마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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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동성애 관련 보도에 대한 자성과 논의를 촉구한다.” 국민일보 노조가 지난 12일 자사의 동성애 관련 보도를 지적하며 낸 성명의 한 대목이다. 노조 성명은 국민일보의 동성애 관련 보도가 저널리즘 원칙을 훼손해왔다는 첫 공개 비판이었다.


앞서 국민일보는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 때 성소수자 혐오 표현을 쓴 보도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문제가 된 보도들은 지난 7일 <이태원 게이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 다녀갔다>와 지난 9일 <“결국 터졌다”...동성애자 제일 우려하던 ‘찜방’서 확진자 나와>였다. ‘게이클럽’, ‘찜방’ 등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표현이 실렸고, 성소수자들이 아웃팅을 우려해 더 음지로 숨어들어 코로나19 방역에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전국언론노조 국민일보지부는 지난 12일 성명에서 “국민일보는 동성애 관련 보도를 하면서 동성애에 대한 우려를 넘어 혐오를 부추기는 보도를 해왔다는 비판을 자주 받았다”며 △논란이 된 보도에 대한 회사의 공개적인 입장표명 △동성애 보도에 대한 논의 촉구 및 국민일보 기사에 대한 심의·평가 제도적 장치 등을 요구했다.


국민일보는 종합일간지면서도 ‘사랑’ ‘진실’ ‘인간’이란 사시에서 보듯 종교지의 성격을 함께 지니고 있다. 편집국과 별개로 종교국이 있고, 종교국 기자들은 종교섹션인 ‘미션라이프’를 제작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국민일보는 동성애에 보수적인 논조를 보여왔다. 국민일보가 이번 사안뿐만이 아니라 매년 퀴어 축제 등 성소수자 혐오 표현 기사로 비판받아 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논란으로 편집·종교국 국장단 차원에서 표현을 자제하자는 정도의 협의가 이뤄졌지만,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동성애 관련 보도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고, 보도 기준을 마련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국민일보의 주니어급 A 기자는 “연차가 어린 기자일수록 부끄럽다는 반응”이라며 “취재현장에 있는 기자들만 해도 이번 사안이 인권 이슈로 묶이다 보니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져 자괴감이 크다. 회사가 공개적인 입장을 내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B 기자는 “저널리즘 관점에서 해당 보도가 방역에 실질적 도움이 됐는지, 소수자들이 가지고 있는 허약한 보호막들을 우리가 마음대로 침해할 수 있었던 건지 의문이 든다”며 “흐지부지 넘어가선 안 된다. 이번 계기를 통해 동성애 관련 보도가 어느 수준이 돼야 할지 원칙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국민일보 노조는 요구 사항을 회사에 전달했고, 회사는 노조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길 국민일보 노조위원장은 “노조가 초점을 맞춘 건 보도 문제다. 동성애에 관한 표현, 관점, 시선을 민감한 상황임에도 아무 고민 없이 썼다는 것”이라며 “국민일보 특성상 종합지, 종교지 양쪽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의 원칙과 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종합지의 가치를 갉아먹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국민일보가 동성애 보도뿐만 아니라 보도 전반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 그건 노조도 마찬가지”라며 “이 문제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심의 제도나 논의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기자들 사이에선 사안을 바라보는 인식 차이가 존재한다. C 기자는 “회사가 과연 결론을 낼 수 있을지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기자들도 많다”며 “회사가 그동안 논란이 됐던 사안마다 조용조용 넘어가는 것들이 많았다. 여전히 국민일보의 동성애 보도를 응원해주는 독자들이 더 많고, 비판은 일부 의견이라는 고참 기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구성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절충안을 만드는 게 과제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D 고참 기자는 “동성애 보도 건과 관련해 노조 익명 게시판에서 뜨거운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며 “공감할 수 있는 보도의 방향, 수준이 뭔지를 토론을 통해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서로 너무 토론이 없었는데, 이번이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박지은 기자 jeeniep@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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