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보도 사과', 등 떠밀리듯 지면 구석서 하는 관행 탈피

해당 보도 관계자들 한 달여 조사
언론학자·전문변호사에 검토 맡겨

"늦게라도 독자와 내부 구성원에게
경위 자세히 설명해야하는 점 공감"

  • 페이스북
  • 트위치

한겨레는 지난 22일자 1면 사이드 톱과 2면에 회사명의 입장문<사진>을 게재했다. 지난해 10월11일 보도한 ‘윤석열 검찰총장 별장 접대 의혹’ 기사에 대한 사과문이었다. 2400자 분량의 사과문에는 보도 경위, 취재·보도·사후 대응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 게이트 키핑 재정비 약속 등이 담겼다. 이를 통해 한겨레는 “취재보도준칙에 비춰 이 기사가 사실 확인이 불충분하고 과장된 표현을 담은 보도라 판단했다”며 “정확하지 않은 보도를 한 점에 대해 독자와 윤 총장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윤 총장 별장 접대 의혹’ 기사는 지난해 보도 당시 한겨레 안팎으로 큰 파장을 낳았다. 해당 기사는 의혹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후속 보도도 나오지 않으면서 오보 논란이 불거졌다. 독자들의 비판과 함께 사내에서도 문제 제기가 있었다. 그러나 어떤 조치도 이뤄지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한겨레는 올 초 사장 선거를 치렀고, 지난 3월23일 신임 사장이 취임했다.


새 사장 체제 출범 직후인 4월2일 ‘윤석열 관련 보도 조사 TF’(팀장 백기철 한겨레 편집인)가 꾸려졌다. TF는 한 달여간 관계자들을 조사해 보고서를 작성한 뒤 언론학자와 언론전문 변호사에게 검토를 맡겼다. 이렇게 나온 최종 보고서를 바탕으로, 의혹 보도 7개월 만에 독자와 윤 총장에게 사과한 것이다.


TF 간사를 맡은 이봉현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실장은 “논란이 컸던 보도인 만큼 늦게라도 독자와 내부 구성원에게 보도 경위를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며 “특히 신임 사장이 취임하면서 ‘신뢰 회복’을 중요한 경영방침으로 확립했고, 이를 위해 오보나 잘못한 부분에 대해 확실히 정정하고 사과하는 문화를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당시 보도에 관여했던 당사자들도 이런 인식에 공감한 덕분에 TF 조사에 적극적으로 임했다”고 덧붙였다.


한겨레가 내놓은 이번 사과문은 한국언론의 관행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보통 사과·정정 보도문은 언론중재위원회를 거치거나 언론사가 소송에서 패소했을 때 타의로 실리는 경우가 많다. 그마저도 지면 귀퉁이에 작은 크기로 배치되는 게 대부분이다. 반면 한겨레는 자체 팀을 꾸려 조사에 나섰고, 사과문도 첫 보도와 같은 지면(1면)에 같은 크기로 게재했다. 한 종합일간지 편집국장 출신 간부는 “우리가 사과나 정정보도에 인색한 것은 사실이다. 잘못한 일을 뭉개거나 얼렁뚱땅 넘어가곤 했다”며 “자체 조사를 통해 스스로 오류를 인정하고 1면에 사과문을 배치한 한겨레의 조치는 과감하고 용기 있다고 평가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다만 한겨레가 보고서 전문을 공개하지 않은 점, 사실 확인이 불충분했고 후속 보도 준비가 미흡했는데도 과도한 표현을 써가면서까지 기사를 급하게 낸 이유, 취재·보도 과정에서 책임자가 누구였는지 등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또한 현재로선 한겨레가 법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1면에 사과문을 게재했다는 의심의 눈초리도 피하기 어렵다. 보도 직후 제기된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며 취재기자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윤 총장이 ‘한겨레가 취재 과정을 공개하고 공식적인 사과 입장을 같은 지면에 게재한다면 고소를 유지할지 재고하겠다’고 밝혔고, 실제 사과 나흘 만인 26일 고소를 취하했기 때문이다.


이재경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한겨레를 둘러싼 상황을 감안하면 이번 사과문은 법률적인 측면과 저널리즘 측면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사과문에 언급된 의사결정 과정이 보다 자세하고 명쾌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면서도 “솔직하게 잘못을 시인하고 1면에 기사형식으로 낸 점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기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걸 수치로 여기는 문화는 굉장히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실수를 바로잡는 것이 장기적으로 언론의 신뢰를 끌어올린다고 본다”며 “한겨레를 하나의 시범 케이스로, 전 언론사 차원에서 정정보도 강화 관행이 자리잡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김달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