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70개 분석한 '코로나 취재파일'… "기자들도 공부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인터뷰] 한세현 SB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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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을 읽은 것 같습니다.’ ‘몇 년간 본 기사 중 최고의 기사인 듯.’ ‘하나의 기사를 쓰기 위해 많은 논문을 찾았던 시간과 노력에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지난 16일 올라온 SBS 취재파일에는 위와 같은 훈훈한 댓글이 100개가 넘게 달렸다. <충격과 공포를 넘어...‘코로나 바이러스’를 생각한다>라는 제목의 이 기사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엇인지, 바이러스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쉽고도 자세하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기사를 쓴 한세현<사진> SBS 기자는 대학에서 수의학을 전공한 수의사로, 대학원에선 동물이 병에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연구하는 ‘병리학’을 전공했다. 현재는 국토교통부를 출입하고 있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파편적으로 다뤄지는 바이러스 문제를 바라보며 철학과 관점을 담은 기사를 쓰고 싶은 마음에 이번 취재파일을 작성하게 됐다. 한 기자는 “전문적인 얘기를 쉽게 풀어써야 하는데 또 너무 쉽게 써버리면 전문가들이 일반화할 수 없다고 지적할까봐 외줄타기 하듯 기사를 썼다. 취재파일 뒤에 인용 논문을 붙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며 “정확하게 쓰기 위해 한 줄을 인용할 때마다 논문 후보군 7개 정도를 놓고 그 중 가장 적합한 걸 차용했다. 줄여가는 과정이 참 힘들었는데, 결국 70개가 넘는 논문 중 딱 30개를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기자가 학술적 이야기를 취재파일로 쉽게 풀어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연말 SBS 창사특집 <라이프 오브 사만다>에 맞춰 치타의 일생에 관해 쓴 기사나 경제학 관점에서 바라본 서울 집값 기사도 그가 치열하게 공부한 끝에 내놓은 글이었다. 때론 수의학 전공을 살리고, 때론 MBN 기자이자 경제학 박사인 아내의 자문을 빌리면서까지 그는 관점과 철학을 담은 기사를 쓰고자 했다.   


그가 학문적인 내용을 기사로 쓰는 데는 근원적인 이유가 있었다. ‘기레기’ ‘기렉시트’ 같은 단어가 홍수처럼 넘치는 데다 ‘기자들 무식하니 공부 좀 하라’는 비아냥거림이 많은 요즘, 기자들도 공부 많이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한 기자는 “언론인의 위상이 하락하고 사회적인 인지도가 떨어지는데 그 이미지를 바꾸고 싶었다”며 “기자의 가치가 온당하게 평가받아야 이 사회가 건강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제가 쓴 기사가 기자의 가치를 높이는 데 이바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런 기사를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한 기자는 기자라는 직업이 너무 좋다고 했다. 수의사의 길을 선택하기보다 기자가 되고 싶다는 일념에 2010년 SBS 공채시험에 응시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SBS 합격 이후 박사 과정을 함께 밟으면서 병리학을 선택한 것도 모두 기자 생활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였다. 한 기자는 “병리학은 정말 학문에 뜻 있는 사람들이 전공하는데, 성적이 C나 D라 한동안 별명이 ‘CD 플레이어’였던 제가 한다고 하니 다들 경악하더라”며 “지도 교수도 황당해하다 제가 평생 기자로 살 거라 하니 광우병을 전공하라고 말씀해주셨다. 2014년에야 겨우 학위를 딸 수 있었지만 전염성 있는 질병을 공부한 덕에 이번 코로나19에 관해서도 기사를 쓸 수 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의 공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의 국양 총장과 최성균 박사, 경북대 수의과대학의 박진규, 한지은 교수의 배려로 그는 주말이나 휴가 때마다 연구실에서 고가의 장비를 사용하며 여러 연구를 하고 있다. 덕분에 지금까지 SCI급 논문 6편과 KCI급 논문 2편을 게재했다. 논문에 실린 소속엔 당연히 ‘SBS’를 먼저 기재한다. 한 기자는 “연구자들이 기자를 무시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 꼭 소속을 SBS 기자라고 먼저 적는다. 앞으로도 학교나 연구소로 가기보단 기자로 은퇴하는 게 제 꿈”이라며 “제가 은퇴할 땐 후배들이 ‘기레기’가 아닌 ‘기자님’ 소리를 듣는 세상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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