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가 풍부해지려면 더 많은 유색인종, 여성, 대도시가 아닌 곳에 사는 사람들, 어린 기자들 그리고 미국인이 아닌 기자가 필요합니다. 전략적으로도 더 많은 해외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고, 젊은 독자를 유입시킬 수 있습니다.” 지난 2017년 1월 뉴욕타임스가 낸 ‘2020보고서’에서 편집국의 최우선 과제는 다름 아닌 ‘다양성’이었다. 보고서를 만든 2020그룹은 뉴욕타임스가 세계 최고의 기자들을 고용하고 있지만 충분치 않다면서, 다양성을 보유한 편집국 구성원을 받아들인다면 양적으로 풍부하고 질적으로 깊이 있는 기사를 만들어 많은 독자를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이 지나 2020년이 된 오늘, 한국 언론계에서 뉴스룸의 다양성은 아직도 생소한 영역일 뿐이다. 언론 산업이 점차 어려워지고 신뢰도가 추락하면서 기사 내용이나 일하는 방식이 변화해야 한다는 요청은 쇄도하고 있지만 뉴스룸 인력을 다양하게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은 거의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다양성 면에서 큰 변화가 없는 정보원과 뉴스룸 구성원, 또 실제 사회와 뉴스룸의 격차에서 이 무관심은 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9 한국언론연감(잠정수치, 2018년 반영) 자료에 따르면 언론 산업에 종사하는 기자직 총 3만1364명 중 남성은 68.5%, 여성은 31.5%를 차지했다. 2016, 2017년과 비교해 여성 기자 비율이 늘어나고 있지만 행정안전부의 2018년 주민등록인구현황에서 여성 50.1%, 남성 49.9%로 여성이 앞서 있는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성별뿐만 아니다. 지역이나 학력, 연령에서도 기자와 실제 사회는 다른 분포를 보이고 있었다. 지역의 경우 전국의 인구 분포는 경기도와 서울특별시에 44%, 그 외 지역에 평균 3%대로 분포돼 있지만 기자들은 서울과 경기에 71.3%로 몰려 있고 그 외 지역엔 평균 1%대로 퍼져 있었다. 특히 서울에만 60.8%의 기자들이 집중돼 있었다.
학력의 경우에도 기자와 실제 사회는 큰 격차를 보였다. 신문 기준 기자의 90.9%가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 소지자였지만 고용노동부의 2018년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에선 근로자의 42.9%만 대졸 이상이었고, 40.4%가 고졸 이하의 학력을 갖고 있었다. 연령도 언론사 근무가 가능한 20~50대를 기준으로 놓았을 때 전체 사회 구성보다 30대와 40대의 비율이 각각 8.9%, 8.2% 높고 반면 20대는 12.2%, 50대는 4.8% 적은 결과가 나왔다.
실제 사회와 뉴스룸의 차이가 뉴스 생산 과정이나 결과물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물론 문제는 없다. 그러나 보도를 보면 비율의 차이는 그대로 뉴스 결과물에 드러난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18 미디어 다양성 조사에 따르면 2018년 1~9월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의 메인 뉴스에 나온 정보원의 성별 비율은 남성 74.4%, 여성 25.6%로 기자의 성별 비율과 유사한 수치를 나타냈다. 연령의 경우엔 고령층 쏠림 현상이 심해 50~69세가 정보원의 55.7%를 차지했고, 30~49세가 25.9%, 70세 이상과 15~29세는 각각 9.3%, 8.2%의 비율이었다. 15세 미만은 1%에 불과했다.
직업이나 소수자에서도 뉴스는 실제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통계청의 2018년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보면 전문가와 사무종사자는 각각 20.5%, 17.8%이고 그 뒤를 단순노무 종사자(13%), 장치·기계조작 및 조립종사자(11.6%), 판매종사자(11.3%) 등이 이었지만 뉴스에선 전문가(32.4%)나 1.4%에 불과한 관리자(38%)가 정보원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그 결과 평균 11%를 차지하고 있던 단순노무종사자나 장치기계조작종사자, 기능종사자 등은 거의 뉴스에 드러나지 않았다. 국내거주 이주민이나 장애인 역시 각각 인구의 4.4%, 5%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뉴스에선 0.4%, 0.3%로 실제보다 낮게 재현되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축적한 경험을 통해 사고한다
전문가들은 점점 복잡해지고 파편화되는 사회를 대변하기 위해서라도 언론사가 뉴스룸 구성원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언론 스스로 고립되는 것을 막는 방법이자 시대와 독자의 변화에 맞춰 다양한 저널리즘을 선보일 수 있단 이유에서다.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방법으로는 간부급 여성 비율을 늘리는 등 뉴스룸 내 성 평등 구현이 꼽힌다. 젠더 이슈들이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보다 재빠르게 조직의 젠더 감수성과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홍남희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은 “‘미투(metoo)’ 보도와 관련해 10개 언론사 여성 기자들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다. 결론은 중년 남성 간부 중심의 언론사 조직에서는 여성 관련 이슈를 중요하게 판단하지 않고, 발제 단계서부터 탐사보도 조직 구성까지 그런 의사 결정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었다”며 “데스크 회의에 여성 기자가 단 한 명도 참석하지 못하는 언론사도 많더라. 여성 기자들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젊은 기자의 비중이 늘어난 것뿐 뉴스 생산에 여성 기자의 의견이 반영되는 수준은 미미하고, 이 때문에 여전히 뉴스에 성차별적, 여성 혐오적 시각이 반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학력이나 배경, 성별 등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도입해 좀 더 다양한 구성원을 포용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었다. 블라인드 채용은 현재 지상파 방송사 등 일부 언론사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종합일간지 한 기자는 “가령 다문화 가정 등 우리 사회 소수자들의 얘기는 그들이 인구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율에 비해 뉴스에서 잘 대변되지 않는 느낌이 있다”며 “민간기업인 언론사에 소외계층의 채용을 강제할 순 없겠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문호를 개방할 필요가 있다. 의학이나 법조 등 특정 분야에서만 전문기자를 두려 하지 말고 소외계층을 더 잘 파고들 수 있는 특화된 사람을 채용하려는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조직 안에서 수평적 의사소통을 제도적으로 활성화해야 하며, 다양한 저널리즘을 수용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은 새겨들을 만하다. 다른 종합일간지 한 기자는 “뉴스룸에선 아직도 한국기자상 탈 만한 것들만 기사로, 콘텐츠로 인정해주는 경향이 있다. 구성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뉴스, 저널리즘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굉장히 한정적”이라며 “독자는 변하고 있고 사회가 다변화하면서 다양한 저널리즘이 용인되고 있지 않나. 뉴욕타임스만 하더라도 ‘스마터리빙’ 같은 코너를 통해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기사들을 쓰고 있는데, 우리 역시 좀 더 다양한 주제, 다양한 뉴스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2018년 12월 방송통신위원회가 발간한 ‘보도의 신뢰 하락 원인 분석과 책임 저널리즘을 통한 방송 보도의 신뢰성 확보 방안 연구’에서도 뉴스 주제를 크게 △상위 담론(권력 감시) △중위 담론(공중의 관심사) △하위 담론(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들의 권리 보호)으로 나눴을 때 한국 언론의 무게 중심은 지나치게 상위 담론에 몰려 있다고 지적한다. 연구자들은 “언론의 본질은 경청과 소통, 그리고 대변”이라며 “언론이 어떻게 공중의 의견을 청취하고 알리는가에 따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시민의 편에서 각계각층의 목소리에 고르게 귀를 기울이고 이들의 권리와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지면과 화면을 할애하면, 자연히 멀어져가고 있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관심을 되돌릴 수 있다”고 밝혔다.
시민에게, 프리랜서 기자에게 상시적으로 공간을 내어주고 수많은 외부단체와의 협업·제휴를 통해 뉴스 기획부터 제작, 유통까지 사회 구성원들의 참여를 끌어낸다면 다양한 저널리즘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의 조이여울 편집장은 “우리 모두는 자신이 속한 계층과 문화, 자신이 축적한 경험을 통해 사고하며 그것을 뛰어넘을 수 없다. 기자들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보도하려면 먼저 자신의 위치와 기자 집단이 점하고 있는 자리를 인식하고 다른 위치, 다른 경험, 다른 시선에 대해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일다는 여성과 장애인, 저학력층, 성소수자, 미성년자, 이주민, 환자 등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 노력한다. 언론들은 보통 유명인, 전문가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지면을 주지만 일다의 저널리즘은 다양한 목소리와 필자들을 ‘발굴’하는 일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언제부턴가 저널리즘을 논의하는 자리에 ‘먹고사니즘’이 가장 중요한 화제가 되어버렸지만 사람들이 언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누가 얼마를 버는가가 아니라 왜 언론이 있는지, 왜 필요한지일 것”이라며 “언론이란 무엇인지, 기자의 역할은 무엇인지 언론 스스로 물어봐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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