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수사 공보준칙 개정을 추진하면서 피의사실 공표에 관한 논란이 다시금 불거지고 있다. 법무부는 최근 ‘인권 보호를 위한 수사 공보준칙’을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으로 바꾸는 안을 마련했다. 규정에 따르면 형사사건의 경우 기소 전까지 혐의사실이나 수사상황 등의 내용 공개가 일체 금지되고, 이전보다 공개 금지 정보가 늘었다. 특히 공인이라도 ‘피의자가 명시적으로 동의하는 내용의 서면을 제출하는 경우’만 피의자 소환 촬영이 가능하다거나 구두브리핑을 이전보다 제한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검찰 취재 기자들의 우려가 큰 상황이다.
이미 검찰 출입 기자들은 취재에 상당한 타격을 입고 있다. 본래 검찰 조직이 폐쇄적이라 정보 확인이 어려웠지만 최근엔 “수도꼭지가 잠겼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취재가 힘들어졌다.
방송사 A기자는 “압수수색의 경우 4~5년 전에는 컴퓨터, 휴대폰 등 압수물이 무엇인지 정도는 아주 대략적으로라도 알려줬다. 그런데 최근엔 검찰이 장소만 알려주고 있다”며 “그것도 수사관이 투입되면 직원이나 주민 등 목격자가 생기기 때문이다. 최근엔 압색을 몇 군데 했고 압수물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기자들이 다 투입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환자의 경우엔 그동안 핵심 인물 서너 명 정도는 언제 오는지 알려줬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없어 기자들이 중앙지검 1층에 다 서 있다”며 “공보준칙 개정이 되면 잘못된 사례로 꼽힐까봐 그런지 취재가 빡빡해졌다”고 했다.
종합일간지 B기자도 “예전엔 어느 정도 취재를 해오면 검찰에서 사실 확인이 가능했다”며 “그런데 지금은 쉽게 확인이 안 된다. 수사팀 관계자를 만나는 것도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만남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부 기자들은 이 때문에 오보가 더욱 양산된 측면이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법무부가 수사 공보준칙 개정을 추진하면서 피의사실 공표에 관한 논란이 다시금 불거지고 있다. 규정에 따르면 공개 금지 정보가 늘어나고 이전보다 구두브리핑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검찰 취재 기자들의 우려가 큰 상황이다. 사진은 지난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 당정협의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법무부가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훈령으로 시행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종합일간지 D기자는 “표현의 자유나 국민의 알 권리 등 헌법적 가치와 피의사실 공표 문제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이 문제는 훈령이 아닌 입법의 영역에서 다뤄져야 한다”며 “위헌 논란이 생기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어서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법무부 장관이 임의로 만들 수 있는 훈령에, 헌법적 가치를 규제하는 내용을 집어넣어 시행하겠다는 발상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이번 개정안에 담긴 내용에 대해서도 문제 삼았다. 방송사 E기자는 “보통 기소가 이뤄지고 난 다음엔 수사에 대한 적절한 브리핑이 이뤄져야 하는데 초안을 보면 그것 자체도 막아놨더라”며 “또 공인이라 할지라도 서면으로 동의하지 않으면 촬영 자체를 못하게 한 것도 경악스러웠다. 공인의 개인 권리에 너무 무게를 둔 나머지 국민의 알 권리를 지나치게 고려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아무리 엄격하게 공보준칙을 규정한다 하더라도 결국 취재라는 행위는 공문 등의 정식 절차를 거쳐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에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당위성엔 공감 VS 검찰도 감시받아야
다만 그동안 수사기관이 수사를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피의사실을 상세히 공개하거나 그로 인해 피의자의 인권이 과도하게 침해된 경우들이 있어 이번 개정안의 당위성에 대해선 공감하는 기자들도 있었다. C기자는 “검찰 내부에서도 피의사실 공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며 “굳이 안을 바꿀 필요까진 없지만 문제 제기에 대해선 어느 정도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의사실 공표 자체가 언론의 단독 기사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단독 경쟁이 언론사 간의 취재 경쟁으로 흘러가면 좋겠지만 검찰에 의지한 단독 경쟁으로 가는 경우들도 있었다. 단독 경쟁이 피의사실 공표를 불러일으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대부분의 기자들은 국민의 알 권리가 더 우선한다고 봤다. E기자는 “아직 수사 단계인 내용이 유출된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순 있지만 이건 개인의 관심사나 개인의 이야기에 대한 취재가 아니”라며 “거의 대부분 공적 사안, 공적 인물에 대한 취재다. 수사 진행상황을 통해 제기된 의혹을 파악하려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A기자도 “명백한 망신주기, 개인정보 유출은 안 되겠지만 그게 아닌 선에서 점진적으로 개선하면 될 것”이라며 “그래야 검찰이라는 권력, 또 수사상황도 언론의 감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독자들의 관심이 기소 전에 쏠려 있다는 점을 언급한 기자도 있었다. 종합일간지 F기자는 “언론과 검찰이 함께 이런 환경을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회 분위기상 피의자가 기소되면 대부분 유죄라고 결론을 내려버리고 독자들 관심도 사라진다”며 “우리 회사를 포함해 사법농단 재판 진행 상황을 꾸준히 쓰는 언론사가 몇 군데 있는데 클릭 수가 거의 안 나온다. 안희정과 같은 극소수 재판을 제외하곤 기사를 써도 국민들의 관심이 없어, 도대체 어떤 방향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G기자는 “검찰이 정보를 흘려서 수사를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간 적도 있고 언론도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워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했던 경우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확실한 건 인권 문제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라며 “양쪽의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한데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인지 모르겠다. 공보 규정뿐만 아니라 피의자 인권을 위해 검찰 수사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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