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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치를 지지해달라” 후원제 실험… 언론사 숨통 틀 대안될까

국내 언론 디지털 후원제 명암

최승영 기자2019.08.16 11:18:04

“…우리 저널리즘은 정치적 상업적 편견에서 자유롭고, 자본이나 주주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1달러라도 가디언을 후원해주세요.”(가디언 후원 안내문 중)


영국 대표 종합일간지 가디언은 지난해 20년만의 흑자(매출 한화 3402억원, 영업익 12억원)를 기록했다. 지난 2016년 10월 디지털 후원 모델 도입 3년만의 성과였다. 지난해 11월 기준 가디언은 일회성 기부자 60만명, 인쇄 및 디지털구독자 23만명, 멤버십 회원 및 정기 기부자 34만명 등 총 117만명의 후원자를 확보했다. 후원 수익이 광고 수익보다 많은 기이한(?) 구조다.


‘후원 모델’은 언론사 브랜드와 존재 가치를 지지하는 독자에 전적으로 기반한다. 구독이 최소한 상품(콘텐츠)과의 교환을 전제한다면 후원은 일방적인 지원과 연대를 부탁한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비즈니스 모델은 사실 국내 언론에서도 꾸준히 존속돼 왔다. 뉴스타파와 오마이뉴스는 국내 후원모델의 유의미한 사례다. 특히 최근엔 프린트 기반 매체인 ‘시사IN’과 ‘한겨레21’, ‘경남도민일보’ 등이 잇따라 후원제를 도입했다.


가디언급 매체조차 주 수익모델을 바꿔야 하는 게 미디어산업의 현실이다. 여기에 국내 언론은 ‘디지털 뉴스 유료화’가 불가능한 토양에 놓여 있다. 국내 언론산업에 ‘후원제’가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지, 일종의 비즈니스 모델 실험의 장이 된 이들 언론사에 관심이 쏠린다.


국내 언론에서도 후원제는 아주 낯선 형태의 비지니스 모델은 아니다. 기존 인터넷 기반 매체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이 시도는 최근 프린트 기반 매체로 확장된 모양새다. 독자에게 상품 교환이 아닌 언론사 브랜드와 가치에 대한 지지를 부탁하는 이 모델이 국내 언론계에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사진은 현재 후원제를 시행 중인 국내 매체 (왼쪽부터) 뉴스타파, 시사IN, 한겨레21, 오마이뉴스, 경남도민일보의 안내문.

▲국내 언론에서도 후원제는 아주 낯선 형태의 비지니스 모델은 아니다. 기존 인터넷 기반 매체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이 시도는 최근 프린트 기반 매체로 확장된 모양새다. 독자에게 상품 교환이 아닌 언론사 브랜드와 가치에 대한 지지를 부탁하는 이 모델이 국내 언론계에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사진은 현재 후원제를 시행 중인 국내 매체 (왼쪽부터) 뉴스타파, 시사IN, 한겨레21, 오마이뉴스, 경남도민일보의 안내문.

◇국내 후원모델 1세대 뉴스타파와 오마이뉴스의 현재
국내 매체 중 ‘후원 모델’로 가장 괄목한만한 성과를 낸 곳은 뉴스타파다. 뉴스타파는 포털 뉴스 전재료, 비정기적 영화수익 일부를 제외하면 재원 대부분을 일반 시민들의 ‘정기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이달 초 기준, 뉴스타파의 정기후원자는 3만여명이다. 여태껏 1회라도 후원한 인원은 7만명이 넘는다. 정기후원자만 4만2000여명에 달하던 시기도 있었다. 박대용 뉴스타파 뉴미디어팀장은 “최근 ‘윤석열 청문회’를 거치며 많은 후원자가 빠져나가고 또 새로 들어왔다. 현재 이전보다 3000명 정도 빠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현재 뉴스타파의 경영상황은 안정적인 편이다. 후원자들이 가장 많이 내는 금액은 1만원 정도. 회원규모가 확보돼 매달 약 4억원은 고정적으로 확보된다. 자체 플랫폼 내 모든 콘텐츠는 모두가 무료로 이용가능하고, 유튜브 등에도 광고를 붙이지 않는다. 후원금이 총 47명의 인건비와 콘텐츠 제작비로 직접 이어지는 구조다. 일반 시민들의 후원만으로 유지되는 매체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오마이뉴스도 ‘후원 모델’을 도입해 온 대표 매체 중 하나다. 오마이뉴스는 언론사 중 ‘정기후원제’를 가장 먼저, 또 오래 유지해 온 범주에 든다. 2009년 7월8일 월 1만원을 후원하는 유료회원 10만명을 목표로 ‘10만인클럽’을 론칭하고 정기후원제를 출범했다. 이달 9일 기준 ‘10만인클럽’ 회원수는 9634명이다. 가장 많았을 땐 정기후원자 수가 1만1000명에 육박했다. 요즘에도 기사마다 붙는 원고료 개념의 후원엔 매월 200여명 가량이 참여한다. 다만 아직 수익 상당 부분은 광고에 의존하고 있다.


이용신 오마이뉴스 과장은 “‘노동자나 민중을 대변하는 언론’에 대한 열망을 생각하면 후원제는 분명 유효하고 (재정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는 방식”이라면서도 “개인적으로 광고 섹터를 대체해 이것만으로 기성매체가 유지되긴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최근 후원제 도입 잇따라 나선 프린트 매체
최근 1~2년 내 시사주간지와 지역일간지 등 일부 매체도 잇따라 후원제를 도입했다. 경영 측면에서 유의미한 성과(“광고와 구독 매출이 100이라면 한 자리 수 정도”)를 낸 곳은 없다. 아직까진 빠지는 구독자수를 벌충하는 보완재 정도이지만 진성독자 확보란 ‘배수의 진’으로서 의미는 작지 않다.


시사IN은 2016년 하반기부터 현재까지 약 18개월 간 후원제를 운영해왔다. 지난 6월30일 기준 정기후원자는 648명. 일시후원자까지 포함하면 전체 후원 규모는 1103명까지 증가한다. 고제규 시사IN 편집국장은 “누적 후원금액이 1억은 넘은 거 같다. 전체매출로 보면 크지 않지만 기존에 없던 액수라 가능성을 보고 있다”고 했다. 1~2만원 후원이 대부분이지만 지난해 연말 일시금으로 500만원을 낸 후원자도 있었다.


한겨레21 역시 후원제를 도입, 약 4개월 가량을 운영해 온 상태다. 당초 연말까지 100~200명 선 정기후원자를 확보하려 했지만 이미 목표를 이뤘다. 현재 정기후원자 수는 약 250명으로 일시후원까지 합친 총 후원 횟수는 1200여건이다. 류이근 한겨레21 편집장은 “대부분 언론사는 주식회사면서 동시에 사회적 공기(公器)로 역할하며 간극이 존재하는데 (후원제는) 약간 ‘이상’같다. 광고와 달리 댓가가 없다. ‘너흴 응원해, 너흰 필요해’라는 게 전부”라면서 “월 100만원씩 후원하는 분들을 보며 응원하고픈 매체에 큰 돈을 낼 준비가 된 분들은 있는데 그런 매체가 많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었다”고 했다.


경남도민일보는 지난 5월 창간 20주년을 맞아 후원제를 론칭했다. 2~3년 간 콘텐츠 부분 유료화 실험 등을 진행했는데 효과가 미미하다는 판단에 후원제로 방향을 틀었다. 현재 1만원 이상 정기후원자수는 210여명이다.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이사는 “종이신문 받아보는 습관이 안 된 사람에겐 구독신청이나 신문이 매일 쌓이는 거 자체가 부담이다. 받아보는 건 부담스럽지만 무료로 봐서 미안한 마음을 가진 분들을 겨냥한 것”이라며 “연매출액 60억 언론사에서 현재까지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1000명(후원)까진 가능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매체 브랜드 파워와 외부 정치환경...후원제 성공 조건
현재 후원제를 도입한 국내 언론사들은 매체명 자체가 브랜드 파워를 갖췄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단순히 발행부수나 규모 등을 떠나 창간배경에서부터 어떤 스토리를 보유하고 있거나 분명한 정치적 지향을 드러내온 매체가 ‘후원제’를 도입한 상태다.


다만 후원모델의 성장에는 브랜드 파워와 더불어 정치환경의 변화라는 외적조건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뉴스타파의 경우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확보된 정기후원자가 현재까지도 핵심후원 규모를 이룬다. 2012년 1월 언론노조 기금으로 4명이 간신히 수개월을 운영한 뉴스타파는 후원계좌를 열라는 시민들 종용을 받은 끝에 7000명 후원자를 확보하고 그해 7월 시즌2를 시작했다. 12월 대선 후엔 2~3주만에 2만여명 후원자가 늘었다. ‘해직기자’의 리포트와 수차례 엠부시(잠복) 인터뷰로 각인된 매체 이미지가 후원으로 전환된 것이다. 실제 가장 후원자수가 많았을 시점 역시 영화 ‘공범자들’ 상영 직후로 외부환경과 관련이 있었다.


달리 말하면 최근 후원제를 도입한 언론사들은 일정규모 후원자 이상부턴 온전히 콘텐츠 파워로서만 후원자를 늘려야 하는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이들 매체는 모두 정치적으로 ‘진보’이거나 적어도 대중에게 현 정부여당과 일치하는 성향으로 인식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1세대 후원매체 역시 현재 후원자수를 정체 또는 감소세로 말하는 건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용신 과장은 “2016년 11월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졌을 당시 후원자가 급증했다. 그러다가 2017년 5월 대선을 기점으로 하락세가 도드라졌다. 현재도 빠지는 걸 들어오는 숫자가 보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치환경과 무관한 후원제 운영
뚜렷한 정치적 성향 등 정체성은 후원자군을 담보한다. 하지만 기성 언론 등 규모가 큰 매체일수록 후원자군의 성향은 불균질해진다. 현재 후원모델을 도입한 진보성향의 중소매체에서조차 후원독자가 “진보 가치”와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중시하는 성향으로 미묘하게 구분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박대용 팀장은 “회원수가 많아지면 기대사항도 다양해진다. 인권이나 국제보도를 해달라는 요구가 나와서 관련 채용을 했다. 회원이 늘어나면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자연히 구성원도 느는 구조”라면서 “우린 좌우가 아니라 수직으로, 아래 99명을 위한 목소리를 담는 곳으로 봐달라고 해왔지만 모든 회원이 같은 생각으로 후원자가 될 순 없다”고 했다.


언론사에 대한 후원금 일면이 ‘정치 후원금’ 성격이라면 또 다른 면은 ‘NGO 기부’와 유사하다. 특히 사회부 성격의 프로젝트나 인권·지역성·역사 등 당위적 가치를 주요 아이템으로 삼는 중소매체라면 정치성향과 무관한 후원모델로 존립할 수 있을 것이란 시선도 있다. 문제적 인물을 중심으로 사회문제를 조명하는, 후원모델 기반 매체 ‘셜록’이 대표 사례다. ‘양진호 보도’ 같은 사안은 시민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한다’는 효능감을 줌으로써 후원을 유도할 수 있다. 더불어 젠더 매체 등 강력히 결집된 지지층이 존재하는 논쟁적 이슈를 다루는 매체 역시 후원모델로 가능성이 점쳐진다.


지난해 언론재단이 발간한 ‘크라우드소싱 저널리즘-뉴스후원의 가능성과 한계’(김영주 등)에 따르면 실제 2018년 7월까지 펀딩에 성공한 저널리즘 프로젝트 주제 중 ‘사회/교육’ 부문이 34건, ‘역사’가 12건으로 가장 많았다. 후원모델로 유지하는 중소매체를 생각한다면 유념할 결과다.

◇기성 매체 도입을 위한 전제조건은?
후원모델을 도입한 언론사 실무자들은 기존 독자와 맺은 관계부터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앞선 언론사들의 사례처럼 자신이 지지하는 언론사에 대한 후원 수요는 현재로서도 분명 확인은 된다. 지난해 언론재단이 낸 <미디어이슈-2018년 한국 디지털 뉴스 지형을 읽는 7개 지표>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대상 22개국 중 ‘좋아하는 언론사가 비용을 충당하지 못한다면 기부에 참여하겠다’는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29%)이기도 했다.


다만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과 스킨십을 하지 않으면 후원자는 유지되기 어렵다. ‘독자편집위원회3.0’ 1·2기 운영을 통해 후원자와 실시간 소통을 하고, 콘텐츠까지 만들어 본 류이근 편집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부분 미디어 종사자들에게 있는 나쁜 DNA가 독자를 무시하는 거다. 자기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에게 이렇게 갑질을 하는 제조업체가 있었을까. 직접 만나보면 수준이 높고 세상에 관심 많은 분들이다. 목소리 낼 채널이 없었을 뿐이고 들어주지 않으니 침묵한 거였다. 그 눈높이에 맞추려 콘텐츠 질이 올라간다. 왜 후원하는지를 들으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어떻게 하든 독자를 만나라고 하고 싶다.”


일각에선 몇몇 콘텐츠에 따라 후원자수가 급감하는 사례를 들어 후원모델의 위험성을 거론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박대용 팀장은 이처럼 말했다. “온갖 욕이 달리고 살해협박이 있을 때도 있지만 뉴스타파 내에선 그분들을 성가셔하거나 귀찮아하지 않는다. 광고기반 매체가 아니라 태도가 다르구나 느낄 때가 있다. 회사가 존재하도록 하는 근원을 힐난하지 않는 거라고 본다. (윤석열 보도 후) 후원자 중 약 10% 가량이 빠졌지만 90%는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매 순간 촉각을 곤두세우고 말하지 않는 메시지가 뭔지 예민하게 살피려 한다. 한 시간씩 통화하며 자료입수부터 취재전말까지 다 설명할 때도 있다. 광고기반 매체에서 이런 식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국내 후원모델 도입실험은 이제 막 2라운드를 맞았다. ‘40~50대 후원자가 많다’, ‘프린트 매체의 경우 기존 구독자와 후원자가 상당수 겹친다’는 정도를 제외하면 후원자의 정체도 명확지 않다. 1세대 후원매체는 시민들 요구에 언론사가 조응해 성립할 수 있었다. 이제 언론사가 시민들에게 내민 손은 또 다른 관계맺음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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