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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온 포털·IT출신 양극화… 간부 아닌 실무자들은 차별 여전

외부 수혈된 ‘비 기자 전문가’들의 빛과 그림자

김고은 기자2019.08.16 10:30:18

지난 2015년 중앙일보가 이석우 전 카카오대표를 영입하자 언론계 이목이 집중됐다. 언론사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디지털 전략을 외부 인사에게, 그것도 포털 권력을 대표하던 인물에게 맡긴다는 것에 안팎에서 기대와 우려의 시각이 교차했다. 이때를 전후해 언론계에 포털 등 IT 기업 출신의 전문 인력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시대적 소명으로 여겨졌던 ‘디지털 퍼스트’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외부 수혈’ 차원이었다.


비슷한 시기 언론계를 떠나 포털로, IT 기업으로, 혹은 스타트업 창업으로 제 길을 찾아 떠난 기자들과 달리 역으로 뉴미디어에서 올드미디어로 들어온 이들은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 다양한 직군을 형성하며 언론사 조직문화에도 미묘한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들의 등장, 그리고 시대의 변화는 기자(와 PD)가 만드는 기사(콘텐츠)의 질을 넘어 그것이 서비스로 구현되고 작동되는 방식에 대한 고민까지 이끌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다양한 직종, 직군에서 일하는 사람들 간의 협업이 중요하다는 인식의 변화까지도 어느 정도는 이뤄진 상태다. 하지만 이전에 경험한 조직문화도, 일하는 방식도 전혀 다른 기자와 ‘비기자’로 통칭하는 IT 전문 인력들은 여전히 갈등과 불만이 상존하는 가운데 시행착오를 겪으며 서로의 간극을 좁혀가는 중이다.



◇포털·IT 출신 인사 적극 영입, 하지만…
우진형 조선일보 디지털전략실장은 지난 6월 노조와 한 인터뷰에서 조선일보에 들어와 특이했던 경험으로 사령장을 받은 일을 꼽으며 “사회생활 하면서 사장님께서 주시는 사령장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의 모든 사원이 당연하고 익숙하게 거치는 절차를 독특하게 생각할 정도로 우 실장이 경험한 사회생활과 조직문화는 언론사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NHN 연구개발 이사, SK커뮤니케이션즈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지낸 우 실장은 IT, 기술 전문가로서의 경력을 갖고 있다. 이석우 전 대표만 해도 짧게나마 기자 경력이 있지만, 우 실장은 언론과는 무관한 이력의 기술 전문가다. 조선일보가 그런 외부 IT 전문가를 국장급 자리에 영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 실장의 사례처럼 언론사의 디지털 전략을 책임지는 자리에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것이 더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한국일보의 고주희 디지털전략부장도 원래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네이버에서 일하다 지난해 다시 영입됐고, 안경모 미디어플랫폼팀장도 IT 기기 리뷰 매거진 CNET(씨넷)과 이데일리 미디어전략팀장을 거쳐 경력으로 입사했다. KBS는 지난 2016년 디지털서비스국장을 개방형 직위로 공모해 SK컴즈와 삼성전자 출신을 영입하기도 했다. 책임자는 내부 기자들이 맡고, 실무 인력만 필요에 따라 외부에서 충원하던 방식과는 달라진 것이다. 그만큼 언론계 전체, 혹은 언론사 내부에 작지 않은 변화가 있었던 셈이다.


엠파스와 다음을 거쳐 2014년 KBS에 경력 공채로 입사한 이혜준 기획자는 “황무지 같았다”고 5년 전을 회상한다. 당시 모바일서비스 기획자로 입사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자 유일했다. 포털의 영향력이 커지고 디지털 플랫폼에 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외부 전문 인력의 필요성이 떠오르던 시점이었다. KBS가 보도본부에 처음으로 신설한 디지털뉴스국으로 입사는 했지만, 조직문화도 일하는 환경도 포털과는 전혀 달랐다. “다음에선 다 직접 하거든요. 뭔가를 만들려고 하면 내부에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가 다 있으니까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었어요. 조직문화도 자유롭고 수평적인 편이었죠.” 그런데 KBS에는 서비스를 기획해도 이를 구현해줄 개발자나 디자이너가 없었다. 무엇보다 자체적으로 서비스나 전략을 수립하는 일부터가 어려웠다. 게다가 방송 리포트를 만드는 기자들과 온라인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따로 구분돼 있거나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었고, 당시 여느 언론사가 그랬듯 디지털에 대한 홀대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당장 혼자할 수 있는 일부터 하기 시작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IT 기업의 뉴미디어 서비스 등을 정리해서 보고했다. 다음에선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었는데, KBS에선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내친 김에 사내 게시판에 주간 미디어 동향을 정리해서 올리고, 2016년부터는 방송기자연합회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방송기자’에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3~4년이 지나자 ‘그래도 많이 변했구나’ 새삼 느낀다. 이제는 디지털 인력도 많아지고, 보도국과 디지털뉴스국 간의 장벽도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개발자 등 전문 인력도 많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KBS는 방송 중심 회사이고, 그래서 디지털 분야에선 한계도 명확하다. KBS는 디지털 업무를 자회사(KBS미디어)에 위탁하거나, 외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해서 입찰 공고를 내고 심사를 거쳐 업체를 선정하고 나면, 이미 다른 데서 시작한 뒤예요. 구조적으로 늦을 수밖에 없어요. 디지털 기술이나 업무를 내재화하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동등한 대우’는 커녕 ‘보조’ 취급 느낌도
한국경제 ‘뉴스래빗’이 만 4년 가까이 비교적 ‘장수’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내재화’와 무관치 않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언론계와 포털을 두루 경험한 김민성 뉴스랩팀장의 독특한 이력이 있다. 김 팀장은 국민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뒤, 다음으로 이직해 뉴스편집을 하다 한경닷컴 기자로 돌아와 뉴스랩팀을 이끌고 있다. 한경닷컴의 ‘뉴스래빗’, ‘오디오래빗’ 모두 그의 팀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브랜드이자 서비스, 프로그램이다. 다시 강조하면, 그가 만든 것이 아니라 그의 ‘팀’, 나아가 그가 속한 조직이 함께 만든 것이다. 그가 포털에서 ‘협업’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어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예를 들어 네이버에서도 어떤 슈퍼 기획자 한 명이 기획부터 개발까지 다 하는 게 아니에요. 개발자도, 디자이너도, 전문 분야가 다 세분돼 있고, 필요한 능력을 가진 사람과 함께 일하죠. PM(Product Manager)이 존재하지만 동등하게 일해요. 그런데 언론사에선 기자가 바이라인을 독점하죠.”


개발자가 우대받고, 조직문화가 비교적 수평적인 포털이나 IT 기업 출신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언론사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들은 기자들이 자신을 어시스턴트나 오퍼레이터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한다. IT 업계 출신의 종합일간지 한 디자이너는 “같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주는 걸 가공해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며 “동등한 위치에서 봐줘야 하는데, 아직 텍스트를 우선시하는 문화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개발자나 디자이너들이 주체적이고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결국 ‘자기 생태계’를 찾아서 떠나기도 한다.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는 체념 때문이다. 최근 기자들의 IT 업계 이직이 잦아진 것에 비해 IT 업계에서 언론사로 오는 경우가 뜸해진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김민성 팀장은 “우리가 가지지 않은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을 우리 뉴스룸에 들이고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어떻게 보면 뉴스룸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권력을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개발자도 기자로…“그래도 조금씩 변하는 중”
최근엔 조금씩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한국경제는 뉴스랩팀의 개발자, 기획자, 프로그래머 등에게 데이터 에디터, 비주얼 에디터 등의 직책을 주고, 한경닷컴 취재기자로 등록했다. 취재기자니까 당연히 취재비도 받는다. 처음부터 ‘이들을 평등하게 대하지 않는 환경에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생각으로 경영진을 꾸준히 설득한 결과다. 김 팀장은 “디지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DNA를 가진 사람이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이 나가면 제로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역시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이 모두 기자 직군으로 등록했다.


기자가 전담해왔던 뉴스(콘텐츠) 기획과 제작 업무도 달라지고 있다. 경향신문이 지난달 선보인 인터랙티브 콘텐츠 ‘그 X는 사실 대단했다’는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직접 기획, 제작했다. 바이라인에 기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경향 관계자는 “그들이 아이디어를 냈고, 그들이 가장 잘 이해하고 자신 있는 형식으로 만든 것”이라며 “기자에 종속돼서 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기자와 비기자의 구분 자체가 의미 없어지고, 기자보다 더 뛰어난 능력자도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시스템으로 문제를 푸는 곳도 있다. 중앙일보는 기자와 비기자들의 이질적인 결합이 가져오던 갈등을 시스템적인 뒷받침을 통해 상당 부분 해결했다. 슬랙(slack) 같은 기업용 메신저를 활용해 업무 프로세스를 공유하고, 개발자나 디자이너 등도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다고 해서 갈등이나 불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분명 바뀌고는 있다. 특히 기자보다 개발자, 디자이너, 마케팅 기획자 같은 비기자 직종이 더 많은 뉴스랩국의 경우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협업하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 국장부터 인턴까지 모든 구성원들이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기자와 비기자의 직급 체계가 다른 데서 오는 혼란을 피하며 소통하기 위해서다.


김영훈 중앙일보 뉴스랩국장은 “시스템적인 뒷받침이 돼야 하고, 아울러 다른 영역에서 얘기하는 것에 대해 오픈하는 마인드를 키우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기자는 기사를 생산하는 프로세스가 익숙하고, 개발자는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걸 인정하고 이해하면 한 단계 나갈 수 있고, 의사소통도 훨씬 편해진다”면서 “방법론적으로 프로토콜이 정해져 있으면 방법론 위에 각 사람이 잘 올라타기만 하면 합을 맞추지 않아도 프로세스가 잘 진행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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